[Review] 세상의 모든 작가들을 위하여: 도서 '트라우마 사전'

글 입력 2020.06.06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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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사전_표지 입체.jpg

 

 

모든 사람은 인생을 한 번만 살아간다. 윤회설을 믿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설령 인생을 윤회하여 다른 삶을 살게 된다 한들 과거의 인생을 동일하게 반복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기에 자신의 인생은 딱 한 번만 산다고 말하는 것에 어폐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언제나 다른 삶을 동경해왔다. 아직 세상이 푸릇푸릇하게 예쁘게만 보였던 초등학생 때,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을 처음으로 읽었던 당시 받았던 충격이 지금도 생생하다. 인생의 매순간 선택을 하고 나면 내 인생은 내 선택으로만 가득 찰 것이고, 그 순간마다 내가 버려왔던 또 다른 선택지들은 끝내 내 인생에서 어떻게 펼쳐졌을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을 절감했던 것이다.


그래서 영화나 소설, 연극이나 오페라와 같이 또 다른 사람들의 삶의 편린들을 살펴보는 것은 항상 신기했다. 내가 저 상황에 처했더라면 내리지 않았을 결정을 내리는 캐릭터들을 보면서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판단하는 걸까 의문을 가져보기도 했고, 내가 원하는 것 이상으로 속시원하게 상황을 해결해내는 캐릭터들로부터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매번 드는 생각이 있었다.


"작가는 도대체 어떻게 이런 캐릭터들을 만들었을까?"


시대가 작가의 삶의 시대와 크게 이격되지 않은 경우라면, 실제 경험이나 소재를 바탕으로 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볼 법하기도 하다. 그러나 종종 현실과는 완전히 괴리된 듯 새로운 세계관을 가지고도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고 무서울 정도로 빠져들게 만드는 작품들을 보기도 한다. 단적인 예가 바로 해리포터 시리즈가 아닐까. 그 누구도 해리포터 시리즈를 보면서, 조앤 롤링이 실제 사례에 기반하여 이 작품을 썼으리라 상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호그와트가 혹시나 있다면 하는 망상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말이다.


어쩌면 나처럼 이런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았던 게 아닐까. 작가들을 위한 캐릭터 창조 가이드 책이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안젤라 애커만과 베카 푸글리시는 작가들이 좀 더 편하게 캐릭터를 만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도서 "트라우마 사전(The Emotional Wound Thesaurus)"을 집필했다. 정말 트라우마 사전의 백과사전이라 해도 될 정도로 다양한 트라우마들이 집대성되어 있는 책이다.

 

 


 

< 책 소개 >

 

이야기를 창작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책. 소설가, 영화·드라마 시나리오 작가, 웹툰, 웹 소설 작가 기성 작가는 물론 작가가 되고 싶은 이라면 누구에게나 도움을 주는 창작 바이블이다. 콘텐츠 과잉 시대에 어떻게 하면 자신의 이야기가 빛날 수 있을지, 생동감 있는 캐릭터를 선보일지 고민하는 작가들에게 《트라우마 사전》은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작가들이 믿고 보는 웹사이트 《A Writer's Helping Writers》의 운영자인 두 저자 안젤라 애커만과 베카 푸글리시는 매력적인 캐릭터에게는 항상 트라우마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상처는 캐릭터의 성격과 행동, 동기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창조자인 작가는 누구보다 그 상처를 깊이 파고들어, 캐릭터를 실존하는 인물처럼 복잡한 심리 층위를 가진 존재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요즘 불안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어"라는 말보다 '물어뜯은 손톱과 핏줄이 벌겋게 선 눈'이라는 묘사가 더 효과적인 것처럼, 이야기 속에서 '말하기'보다 '보여주'라고 저자들은 조언한다. 그렇다면 '보여주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 각종 트라우마의 디테일을 집대성한 이 사전이 그 방법을 안내한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트라우마 연구법을 알려준다. 먼저 앞부분은 캐릭터의 트라우마에 대한 개괄적 내용이다. 트라우마를 다루는 작가의 정서적 건강을 위한 자기 관리법을 섬세하게 안내하고, 캐릭터의 트라우마란 무엇인지, 이에 대한 파악이 왜 중요한지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뒷부분에서는 캐릭터가 겪을 수 있는 118가지의 트라우마 종류를 소개하고, 그로 인해 캐릭터가 겪는 감정과 행동은 물론, 상처를 악화시킬 만한 사건과 극복할 기회까지 주제별로 묶고 개념화했다. 친구의 배신부터 불치병, 가난과 테러까지 인간이 겪는 거의 모든 심리적 경험을 일목요연하게 다루고 있어, 작가들이 필요할 때마다 곁에 두고 캐릭터의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이는 데 사용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나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고 싶은가? 독자가 쉽게 감정 이입할 수 있는 공감도 높은 인물을 그리고 싶은가? 《트라우마 사전》이 당신의 상상력에 불을 지펴줄 것이다.

 


 


생각해보면 항상 그랬다. 영화에서든, 소설에서든 혹은 그 외의 어떤 컨텐츠에서든 상처 없는 캐릭터가 없었다. 그 상처는 꼭 대단한 게 아니어도 된다. 작게는 가족 간에 사랑이 넘치지 않는다는 점에서부터 크게는 사랑하는 대상을 잃어 크게 비탄에 빠진 점까지 매우 다양한 범위의 상처가 꼭 있었다. 그래서 작품을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종종하곤 했다. '너무 과장된 거 아닌가?'


그런데 과장이 된 게 맞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과장이 될 수밖에 없다. 현실 그대로의 느낌을 살리려 한다면 현실에 있는 고루한 상황과 셈법까지 다 반영해야 하는데, 그러면 작품이 재밌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현실의 상황에서 재미없을 부분은 모두 과감하게 생략하고 재미있는 요소 그리고 재미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들을 극대화시킨 게 작품이니까 당연히 과장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동시에 캐릭터들이 입체적이면서도 단편적이라 느끼게 되는 대목도 여기에 있다. 실제 인생이라면 더 상황이 복잡했을 것이고 고려해야 할 요소도 많을 것인데, 작품 속의 상황이다보니 상황 속에서 주어지는 선택지가 캐릭터들에게는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


아주 재밌게 봤던 웹툰이 있다. 이미 연재가 종료된 지 꽤 지난, 네이버웹툰 <치즈 인 더 트랩>이다. 치즈인더트랩의 남자 주인공 유정의 행동들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로맨스릴러(로맨스+스릴러)라고 표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웹툰의 초반부에 유정이, 여자 주인공인 홍설에게 살갑게 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홍설의 플래시백에서 보이는 유정의 모습은 웃으면서도 선이 분명했고 냉정한 동시에 조금은 무섭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유정이 홍설에게 취하는 행동들을 보며 독자들은 '저거 속내가 있다'파와 '저거 순정이다'파로 나뉘어 매주 연재가 될 때마다 댓글창에선 의견이 분분했다.


나는 물론 순정이라는 데 한 표를 던졌다. 계절학기를 핑계로 방학 때 얼굴 보러 찾아오고, 같이 봉사활동할 계기를 만드는데 저게 애정이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그러나 그 봉사활동 하던 장소에서 유정이 홍설에게 사귀자는 말을 할 때, 유정의 반응은 다소 사랑에 빠진 남자라기엔 애매한 느낌이었고 홍설은 이에 약간 당황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였다. 거기서 또 많은 반응들이 나뉘었다. 저건 역시 사랑이 아니라는 반응과, 분명 과거에 상처가 있었을 거라고 보는 반응. 여기서도 나는 후자에 속했다. 나는 작가인 순끼님을 믿었으니까. 아니, 더 정확히는 저렇게 매력적인 유정이라는 캐릭터를 작가님이 그냥 쓰고 버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야기가 후반부로 흘러갈 수록,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 둘씩 밝혀지면서 유정의 트라우마, 홍설의 트라우마 그리고 백인하 백인호 남매의 트라우마가 모두 드러났다. 그들 모두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아버지의 낙인이었고, 부모님의 차별이기도 했으며 폭행으로 인한 상처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유정의 트라우마를 "트라우마 사전"의 내용을 바탕으로 살펴보자. 유정은 어릴 적 아버지에게서 위험하게 자랄 소지가 있다는 낙인이 찍혀버려서 "부모가 과잉보호한" 사례에 해당한다. 외동아들이 잘못 될까봐 유정의 아버지는 그의 행동을 통제하고 제약했다. 그리고 주변에 억지로 친구를 골라주었고(백남매의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했다. "트라우마 사전"에 따르면 이로 인해 잘못될 수 있는 부분을 몇 가지 제시하고 있는데, 여기서 유정은 '권력을 가진 자는 모든 사람을 지배하려고 한다.'와 '조심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나를 이용할 것이다.'라는 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자신의 외모와 부, 능력을 보고 접근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유정은 내심 지쳐하는 모습을 웹툰 곳곳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그래서 형성된 유정의 성격 특성은 '지배적이고 교활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외모나 부, 능력으로 사람들의 환심을 사는 데 능했고 상황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면 눈이 돌아버리는 모습들을 보였다. 특히나 홍설의 안전과 관련해서는 극적으로 변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그건 자신의 여자친구를 보호하려는 모습일 수도 있었겠지만 동시에 그의 성격적인 특성이 아주 극단적으로 표출된 상황이기도 했다.


이런 유정이 훼손 당했으리라 예측 가능한 욕구는 '애정'과 '존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치즈인더트랩에서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사람들이 소시오패스가 아닐까 가슴을 졸이며 지켜보던 캐릭터 유정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홍설에게 물었다.

 

"이젠 내가 싫어?" 

 

작품의 말미에까지 유정을 의심했던 독자가 있었다 하더라도 여기에선 모두 함락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다시 한 번 생각하는데, 이게 사랑이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결국 유정은 최초에는 홍설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지만 점차 자신과 비슷한, 그리고 자신을 이용해 먹으려 하지 않고 성실하게 사는 홍설에게 끌리게 되는데, 이 과정을 작가님이 단 번에 보여주지 않고 유정과 홍설의 트라우마 그리고 다른 캐릭터들의 트라우마까지 엮어서 아주 천천히 풀어냈던 것이다.

 

Piece of cheese in trap.jpg



트라우마에 대해서 같이 하나하나 읽어나가다 보면 정신적으로 피로해지는 느낌이 든다. 그 상황과 감정을 상상하려고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지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치즈인더트랩 예시를 들었던 것처럼, 내가 직접 상상하려고 하지 않고 이전에 접했던 다양한 작품들 속에서 보았던 캐릭터들을 떠올리며 이를 통해 투사해보려고 했다. 모든 상황을 내가 상상하기에는 내 피로도가 감당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두에서부터, 안젤라 애커만과 베카 푸글리시는 밝혀두고 있다. 이 책을 마음이 편한 장소에서 보되, 감정적으로 힘들다면 필요한 만큼 휴식을 취하라고 말이다. 특히 직접 글을 쓰는 작가들은 글을 쓰고 나면 꼭 휴식을 취하고, 주변에 믿을 만한 사람에게 조언도 구해보라고 충고하고 있었다. 글을 쓰면서 다양한 상처들을 직접적으로 만지고 거기서 표출되는 기제들을 수없이 그려나가야 할 텐데, 정작 작가 스스로가 혼자라는 느낌에 매몰되어 버리면 그 상처투성이의 세계에서 벗어나기가 힘들 것이다. 이를 배려하기 위해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를 짚어주고 있는 것이 세심한 배려라 느꼈다.


*

 

작가를 위한 책이라고 표지에부터 쓰여 있는지라, 이 책은 정말 다양한 트라우마의 사례들을 집대성하여 작가들이 캐릭터를 창조해낼 때 참고하기 좋을 용도로 만든 책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트라우마에 대해 다루고 있고, 누구나 작든 크든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고 있기에 이 책을 읽다보면 자신의 트라우마와도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이를 진솔하게 마주하는 것은 분명 작가가 아닌 일반 독자에게도 자신을 제3자의 입장에서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현대에는 영화나 일반 소설뿐만이 아니라 웹툰, 웹소설 등 보다 가볍게 소비할 수 있는 수많은 컨텐츠들이 쏟아지고 있다. 웹툰이나 웹소설 같이 좀 더 가벼우면서 대중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작품에 도전하고자 하는 수많은 잠재적 작가들에게도 도서 "트라우마 사전"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도서 정보 >


도서명: 트라우마 사전 – 작가를 위한 캐릭터 창조 가이드

지은이: 안젤라 애커만, 베카 푸글리시

옮긴이: 임상훈

분  야: 글쓰기, 창작 작법

펴낸곳: 윌북

발행일: 2020년 4월 20일

면  수: 508

판  형: 152 * 220   

정  가: 22,000원

ISBN: 979-11-5581-266-2[03600]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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