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전시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들 [문화 공간]

예술과 전시는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다
글 입력 2020.06.04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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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에는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브람스? 내가 아는(사실 안 다기도 뭐 할만큼 그에 대해 아는 지식은 없지만) 그 음악가 브람스 말인가? 만약 실제로 우리가 저런 질문을 받았을 때, 거리낌 없이 "네."라고 명확히 답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너무나 익숙한 예술 장르인 소설의 제목에서 발견한 브람스는 그만큼 낯선 존재였다. 왠지 클래식 음악은 소설, 영화, 연극보다 멀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회화(painting)도 같은 이유로 멀게 느껴졌다. 내가 아는 미술가는 대부분 유명 외국 작가들인데, 거리와 비용을 생각했을 때 일상에서 잠깐 시간을 내어 전시관을 찾아 그들의 작품을 보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관심 있는 작품이나 작가의, 한국에서 기획된 전시만을 찾아다니는 일명 '편식가'였다. '내가 뭐 예술에 깊은 조예가 있는 사람도 아니니 나는 이 정도로만 전시를 향유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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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졸업이 성큼 다가오면서, 어느새 나보다 먼저 졸업을 하게 된 친구들도 있었다. 그렇게 졸업을 하는 친구로부터 처음으로 전시에 초대를 받게 되었다. 패션디자인을 전공한 친구의 전시였는데, '패션디자인은 어떤 방식으로 전시를 할까?'라는 궁금증 반, 처음으로 가는 친구의 졸업 전시회라는 설렘 반으로 갤러리에 방문했다.


몇 명의 친구와 함께 방문한 전시회는 처음 경험하는 듯한 전시였다. '패션 디자인이니까, 옷을 진열해 놓으려나?'라는 따분한 생각이 깨졌다. 회화 작품과 같은 단순 전시가 아닌, 영상 매체를 통한 전시회였다.


그 안에는 졸업하는 친구와 그 친구의 동기들이 일 년 내내 고민하고 창작한 활동들이 모두 들어 있었다. 콘셉트를 정하는 것부터 시작해 의상을 제작하고 수정하고 모델까지 소화해 영상이라는 매체로 1980년대 의상을 표현해낸 친구가 그야말로 '아티스트'가 된 순간이었다.


나에게는 동양화를 전공하는 친구가 있다. 역시나 평소에 동양화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지만, 친구의 화풍을 좋아하고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친구는 그림을 그리고 나서 종종 그 작품의 사진을 찍어 나에게 보내주곤 했다. 내가 친구의 그림이자 동양화를 향유하는 것은 딱 그 정도였다. 심지어 이 친구의 졸업 전시회는 내가 해외에 체류하는 동안에 진행되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친구의 작품을 감상할 기회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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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좋은 기회가 생겼다. 친구의 작품이 우수 졸업 작품으로 선정되어 졸업 전시의 이듬해인 올해 우수 졸업 작품전을 진행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4년 만에 처음으로, 실물을 보게 된 친구의 그림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으로 본 그림보다 실물의 그림은 훨씬 크고 웅장했다. 작은 휴대폰 화면 속을 꽉 채웠던 작품은 실제로 내 키의 반이나 오는 크기였다. 실제로 본 그림은 더 자세하고, 섬세했다. 그래서일까? '예쁘다, 잘 그렸다'라는 생각을 할 새도 없이, 내 머릿속에서는 작품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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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둘러보며 굉장하다고 느낀 작품은 친구의 작품뿐만이 아니었다. 다들 이런저런 풍경을 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커다란 캔버스에 그린 그림에 녹아있었다. 전시회를 방문하지 않고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단순히 해당 작품만을 보았다면 절대 몰랐을 감정과 감동이었다.


전시회 방문 후 그런 감정을 느끼고 나서, 내가 방문했던 미술관들이 생각났다. 어떤 목적이나 의의를 두지 않고 그냥, 오고 가는 거리에 있어서 방문했던 미술관들.

 

러시아 여행을 하는 동안에 날씨가 너무 추워서 방문했던 미술관이 있다. 동네에 있는 정말 작은 미술관이었다. 러시아어는 한 글자도 읽을 줄 모르니, 혹시 일부러 찾아서 방문한 사람들이 있을지라도 나에게는 그저 이름 모를 미술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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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를 피해 들어간 김에 천천히 미술관의 전시장 안을 둘러보았다. 모두 생소한 작가이고 처음 보는 작품들이었다. 그러다 한 작품 앞에 멈춰 섰다. 흐린 하늘에 너무나도 아름다운 무지개가 피어있는 그림이었다.


설명도, 제목도 이해할 수 없는 말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림을 이해하는 데에 그런 것은 필요치 않았다. 아직도 가끔, 비온 뒤의 무지개를 볼 때 나는 그때 본 그 그림을 떠올린다.


외국에서 생활했던 때에도 비슷하지만 다른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길고 긴 여름방학, 이곳저곳을 방문하다가 살던 동네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 현대미술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방문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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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정보라고는 '현대미술관'이며, 토요일은 무료 개방을 한다는 것이 전부였다. 러시아에서는 추위에 지쳐 미술관을 방문했다면, 그곳에서는 더위에 지쳐 미술관을 방문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다. 미술관 방문의 이유가 러시아와 비슷한 듯 달랐던 것과 같이, 전시는 또 다른 이유로 나의 뇌리에 박히게 되었다.


입장한 전시관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작가들의 작품이 늘어서 있었다. 피카소, 앤디 워홀, 달리, 리히텐슈타인... 한 글자도 알아볼 수 없고 한 작품도 알아볼 수 없었던 러시아의 미술관과는 반대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여러 유명 작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 역시도 내가 전시를 방문하지 않았다면 하지 못했을 경험이었다. 관광지 한편에 있는 미술관에 그런 유명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니! 평상시에 조금은 알고 있고 남들이 가지고 있는 만큼의 관심은 있었지만, 그들의 작품을 찾아 전시관을 방문할 생각은 하지 못했던 작가들의 작품들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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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도 한 전시를 찾아 다녀왔다. 남산 근처에 위치한 '피크닉'이라는 전시관이었다. '명상, Mindfulness'를 주제로 한 전시였는데, 이 전시 역시 단순히 작품을 놓고 감상하기보다는 명상에 대한 작품들을 통해 직접 명상을 하고 마음의 안정을 얻는 전시였다. 체험형 전시는 초등학생 때 과학 체험과 같은 것 이후로는 처음이라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내 적응하고 작품에 직접 참여해 '명상의 힘'이라는 전시의 주제를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위의 경험들은 모두 내가 전시회를 방문하고 그것들을 향유함을 통해 얻은 것들이다. 그동안 내가 틀에 박아놓아둔 전시회, 그리고 그것을 통한 예술이란 무엇이었을까?


여러 전시를 우연히 방문하고 느낀 전시와 예술의 의미는 이것이다. 유명하고 거창한 것만 예술이 아니고, 예술은 고매한 이들만의 즐길 거리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전시회를 방문한 누구나 전시를 즐기고 작품에 대한 해석을 통해 어떠한 감정을 느낀다면, 그것이 전시와 예술의 완벽한 상호작용이라는 것.


그래서 전시회, 전시관이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닌 도서관 같은 존재가 되었으면 한다. 집, 학교, 직장 근처에 위치해서 누구든 언제나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곳 말이다. 전시된 작품들이 유명한 작품이 아니고 작품들의 작가가 유명한 작가가 아니어도 좋다. 그저 한 사람이 전시관 안에서 평안함 혹은 두근거림과 같은 어떤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 존재하면 된다. 우리에게 온갖 상상력과 감정을 느끼게 했던 도서관의 책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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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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