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고백] #02. 이름, 그 두 글자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그 두 글자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글 입력 2020.06.02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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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주 지금 당장 일어나!” 화가 잔뜩 난 엄마의 목소리에 아침을 맞이했다.


힘겹게 몸을 일으켜 학교에 가던 중, 과 동기로부터 카톡이 하나 왔다. ‘태주야, 잘 지내? 다름이 아니라 네가 지난 학기에 00 수업을 들었다고 해서...’ 속으로 ‘얘는 이럴 때만 연락하네’라고 생각하면서도 드라이브에서 수업 필기를 찾아 동기에게 보내줬다.


교실에 도착해서 두리번거리자 교실 한구석에 앉아있던 친구가 손을 흔들었다. “태주야 여기야 여기!” 친구 옆에 앉아 책과 노트북을 꺼내자마자 마치 기다리신 듯 교수님이 들어오셔서 출석을 부르셨다. “김가연” “네” “김지현” “네” “김태주” “네!”


지금 시각 오전 9시 35분,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지 두 시간밖에 안 되었지만 이미 이름을 네 번이나 들었다. 매일 12시간 동안 한 시간에 한 번씩만 들어도 나는 평생 내 이름을 약 35만 번 듣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많이 들을 뿐만 아니라 많이 말하기도 한다. 우리는 ‘자기소개’를 하는 거의 모든 순간에 이름을 가장 먼저 말한다. 신입사원 채용 면접에서도, 대학생 새내기 환영회에서도.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거의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하나의 의례처럼 상대방의 이름을 묻고 자신의 이름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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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들어서, 많이 말해서라는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는 한 사람의 이름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부모님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아이에게 ‘딱 맞는’ 이름을 지어주기 위해 온갖 작명소를 드나들고, 성인이 되었을 때 자신이 자신의 이름과 안 맞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개명도 한다.


이름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 자체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름에 ‘과다한 의미’를 부여할 때 발생한다. 이름에 과다한 의미를 부여했을 때 한 사람의 이름을 통해 그 사람과 그의 삶을 규정지으려는 모습이 나타나게 된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때때로 나에게도 그런 모습이 보인다. 집에서 공부하다가 잠시 물을 마시러 나왔는데 텔레비전의 한 장면을 보고 당황한 적이 있다. 수많은 드라마, 영화, 심지어 강남 홍대거리에 5분만 서 있어도 볼 수 있을 법한 흔하디흔한 데이트 장면이었다.


뻔한 장면 속 뻔한 대화가 이어졌음에도 나는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부를 때마다 흠칫흠칫 놀랐다. “순신아 날씨도 이렇게 좋으니까 놀이동산 갈까?” 흠칫. “아 순신아 도대체 뭘 먹어서 이렇게 예쁜거냐?” 또 흠칫.

 

알고 보니 그 장면은 드라마 <최고다 이순신>의 한 장면으로, 드라마 여자주인공의 이름이 ‘이순신’이었다. 내가 여자주인공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놀랐던 이유는 내가 무의식적으로 이름으로부터 규정한 그녀의 이미지가 그녀의 실제 모습과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순신’이라는 이름을 통해 그 사람을 ‘리더십 있고 위풍당당하며, 힘 있는 사람’으로 단정 지었는데 해맑은 목소리로 대답을 하는 드라마 여주인공 ‘순신’이는 그 이미지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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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통해 자연스럽게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를 통해 그 사람의 성별, 모습, 목소리, 성격 등 ‘그 사람의 삶’을 단정 지어버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름이 그 사람을 대체할 수도, 온전히 대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단편적인 예시로 ‘김태희’라는 이름을 통해 아름다운 여성의 이미지를 잠시 떠올릴 수는 있지만 이를 통해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봐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에게 이름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이름이 곧 ‘나’인 것은 아니듯, 다른 사람의 이름도 곧 ‘그 사람’인 것은 아니다. 성은 부모님께 물려받으니 온전한 ‘내 이름’은 단 두 글자뿐인데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그 두 글자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누군가의 ‘이름’에 머무르기보다 그 이름을 가진 ‘사람’에 주목하고, 두 글자에 집착하기보다 그 사람의 솔직함, 활발함, 웃는 미소, 열정에 먼저 눈길을 주자. 분명 두 글자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보다 그 사람에 대해 훨씬 풍부한 이야깃거리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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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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