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죽고 싶을 때마다 카페에 갑니다 [음악]

남에게 기댄 희망은 쉽게 사라진다
글 입력 2020.06.02 00:2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크기변환]2.jpg

 


때때로 죽고 싶었다.


신림역 한복판에서 쓰러져 사지가 뒤틀린 적이 있다. 그날은 유독 식은땀이 많이 났다. 평소 지나가던 길거리 냄새가 역하게 느껴졌고 꾸역꾸역하고 신물이 올라왔다. 결국 역에서 쓰러졌고 이성은 있지만 사지가 움직이지 않는 경험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쳐다봤고 그 중 친절한 시민 몇 분이 응급처치를 해주셨다. 과호흡으로 인한 사지 경련이었다. 손발이 꼬이고 팔이 이상한 방향으로 꺾였다. 아프기도 아팠고, 수치심으로 죽을 것만 같았다. 그래도 사람들이 도와줘서 살 수는 있겠다, 라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죽고 싶어 해놓고 진짜 죽을 것 같으니까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게 부끄럽기도 했다.

 

그 때, 전 연인은 그 자리에 있었다.


전까진 그와 연결되어 있는 기분이었다. 그와 차근차근 관계를 쌓아갔다고, 우리의 인연은 여러 다툼이 있어도 튼튼할 거라고. 그러나 그 날, 그는 나를 남보다 못한 취급을 했다.


쓰러진 상황에서 쭈뼛쭈뼛 내 주변을 맴돌고, 응급실에서 나온 직후에도 '바지 구경하자'며 옷가게를 방문했다. 왜 나를 그렇게 모르는 척 했냐고 물으니 "남들 눈에 띄기 싫어서"라고 답했다. 관계란 건, 종이 같았다. 수많은 이야기를 써내려 갈 수 있지만 불에 한 번 닿으면 순식간에 사라져 가는 거였다. 수년간 가장 정성들여 써내려 간 관계가 불타 버린 순간, 죽고 싶었다.

 

남에게 기댄 삶의 희망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는 거였다. 앞으로 그 사람과 또 쌓아갈 수 있을까, 난 누굴 믿어야 하는 걸까 무서웠다. 그래서 죽고 싶었다. 혼자 살아가기엔 내가 너무 나약하게만 느껴졌다. 라나 델 레이의 Love는 스스로를 약하게만 생각하는 나같은 젊은이에게 '그래도 사랑을 해라'라고 말하는 노래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오래된 노래를 흥얼거리며

드라이브하는 너희들, 나의 아이들아

과거의 일부이자 미래인 너희들이

수없이 교차하는 전파에서 헤매일 수 있겠지만

그런 것들이 너희를 미치게 만들 수도 있겠지

그래 가끔은,

그런 것들이 너희를 미치게 할 수도 있겠지만

 

어서 준비해, 깔끔하게 차려 입고

딱히 갈 곳이 정해져 있지 않아도 어디로든 나가

다시 일하러 가거나 카페로 향하거나

어디로든 괜찮아,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그것만으로도 너희의 젊은 생에, 사랑에 빠지기엔

젊은 생에, 사랑에 빠지기에 충분하니까

 

아이들아, 너희가 제일 잘나가는 세대들이야

이 세계는 부정할 수도 없이 너희의 것이야

이 세상의 너무 많은 것들을 보고 실의에 빠질 수도 있겠지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란다

그런 것들이 너희를 미치게 만들 수도 있다해도

그래,

그런 게 너희를 미치게 할 수도 있겠지

 

그러니 어서 준비해, 깔끔하게 차려입고

갈 곳이 정해져 있지 않아도 어디로든 나가

다시 일하러 가던지 카페로 향하던지

어디로든 괜찮아,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그것만으로도 너희의 젊은 생에, 사랑에 빠지기엔 충분하니까

젊은 생에, 사랑에 빠지기에 충분하니까 

걱정하지마, 착하지

 

그런 것들이 나를 미치게 만들 수도 있겠지

나를 미치게 할 수도 있겠지만

나도 나갈 준비를 해, 옷을 갖춰 입고

어디로 갈 지 정해져 있지 않아도 어디론가를 향해

다가올 미래, 닥쳐올 무언가를 위해

내가 완벽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괜찮아

난 아직 어리고, 사랑하고 있으니까

난 어리고, 사랑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마, 착하지

 



 


언젠가 세 살 어린 동생에게 "너무 누나 스스로를 나약하게만 보지 마세요"라는 말을 들었다. 속으론 '네가 뭘 알아? 당장 맞다이 뜨면 내가 지잖아'라고 생각했지만 곱씹을 수록 맞는 말이었다.


날 혼자 못있게 하고,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건 나였다. 나약하다고 믿어 온 나. 집에서 혼자 그 날 일을 곱씹고, 되풀이하고, 과장되게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약하고 고립된 인간으로 만들었다. 내가 가여워서 어쩔 줄 몰랐다. 그 날 이후, 스스로에게서 희망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우울할 땐 일단 카페로 갔다. 혼자든 둘이든, 여럿이든 친구들과 함께 카페에 가서 공부도 하고 수다도 떨었다. 학교 후문에 있는 카페들을 사랑했다. 그와 싸울 때도, 연애를 할 때도, 카페에 있었다.


혼자 널부러져 책을 읽기도 했고 달달한 음료들을 마시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혼자였음을 실감하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나 혼자서도 괜찮구나'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 이후론 우울하면 일단 카페에 가거나 일을 하거나 어쨌든 나갔다. 이젠 깔끔하게 씻은 후 차려 입고 밖으로 나간다. 집에만 있기엔 아까운 어린 나날이니까.


아직 사랑하기엔 충분히 젊으니까.

 

 

[김명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