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이 아닌 이야기 [드라마]

글 입력 2020.05.31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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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개연성 없이 삽입되는 PPL과 어느 상황에나 사랑을 최고의 가치로 치부하는 이야기, 특히나 반복되는 어린 여자와 나이 많은 남자의 사랑 스토리, 이성애적 사랑 외에 LGBTQ 서사는 모두 무시하는 이야기까지. 무엇보다도 아이돌로 인해 자리를 잃어가는 배우들. 이 모든 것들이 계속 눈에 걸린다. 이외에도 한국 드라마를 보지 않는 이유는 셀 수 없이 많이 존재한다. 긍정적인 감정은 싹트면 관심을 줘야 자라나지만, 부정적 감정은 어느 순간 무성한 줄기를 이룬다.

 

부정적 감정이 혐오로 이어지기 전 한국 드라마 소비를 중단하고 해외 드라마를 본다. 달라질 건 없고 회피에 불과하다. 알고 있다. 하지만 나의 불편함은 한층 줄어든다. 그 드라마들은 적어도 사랑이 최고의 가치는 아닐 수 있음을 알려주고, 이성애적 사랑에만 몰두하지도 않는다. 수많은 배우, 가수가 출현하나 그들 모두 공정한 ‘오디션’이란 절차를 가진다. 이만하면 됐다기보다는 이 정도가 좋은 본보기로 시작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저 오락성에 불과한 드라마를 보면서도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나이지만 때론 그런 드라마를 통해서 더 나은, 더 좋은 사회를 꿈꾸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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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웹 드라마 ‘SKAM’은 나에게 더 나은, 더 좋은 사회를 꿈꾸게 해준다. 현재 시즌 4까지 진행된 이 작품은 청소년의 일상을 다룬다. ‘하이틴’으로 호명될 수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청소년이라고 해서 어른보다 더 가벼운 문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어린 너가 뭘 알아.” 이 말은 개인적으로 청소년 때 가장 싫어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고통은 나이에 따라서 오는 것이 아닌 그저 사람에 따라서 오는 것이 아니던가.

 

특이하게도 이 작품은 SNS와 유튜브를 이용해 실제 시청자의 시간과 동일하게 업로드된다. 기존 드라마는 일주일간의 간격으로 우리의 일상과 동떨어진 환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작품은 환상이 아닌 현실처럼 보인다. SNS를 이용해서 그들의 대화 혹은 사진을 업로드 하여 시청자가 이를 찾아볼 수 있다. TV 방영은 SNS와 유튜브 클립을 엮어서 보여주는 식으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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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에서 이 작품이 흥행하고, 인터넷에서 상당한 인기를 거두었다. 인기에 발맞춰서 작품의 판권이 미국,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 수많은 나라에 팔렸다. 각국은 자신의 국가적 스타일에 맞춰 재제작에 들어갔다. 각국의 SKAM을 보면 기본 서사는 비슷하지만. 디테일이 살짝 다르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노르웨이의 술이 이탈리아의 커피가 되고, 노르웨이의 루스 버스(졸업을 맞은 고등학생들이 몇 주간 버스를 빌려서 하는 파티)가 프랑스에선 동아리방으로 바뀐다. 나라에 따라서 드라마의 디테일이 어떤 식으로 바뀌는지 확인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각국의 특색이 모두 보인다. 이렇게 한 작품의 판권을 사간 행위는 각 모든 나라가 이 작품으로 더 좋은 사회를 이루길 바라는 작품의 메시지에 응답한 결과다.

 

현재까지 시즌 4까지 진행된 이 작품은 시즌마다 주된 주인공이 달라진다. 시즌 1은 ‘에바’, 시즌 2는 ‘누라’, 시즌 3는 ‘이삭’, 시즌 4는 ‘사라’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시즌 1의 에바는 사랑을 통해서 사랑만이 최고 가치가 아닌 자신의 옆에 있는 사람들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에바’는 그 그룹의 핵심 멤버이자 모두의 의견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시즌 2의 ‘누라’는 사랑을 통해서 자신의 편견을 지워 나아간다. 자기 자신에게 했던 편견과 타인에 부여했던 편견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의 감정에 조금 더 솔직하게 다가간다. 시즌 3의 ‘이삭’은 사랑함으로 커밍아웃을 한다. 격렬히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인정한다. 시즌 4의 ‘사라’는 사랑으로 종교와 현실을 융화할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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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시즌 3의 사라와 이삭의 대화다. 이슬람교인 사라와 커밍아웃한 이삭이다. 기가 죽어 있는 이삭에게 사라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종교는 혐오를 양성하지 않는다고, 혐오를 양성하는 종교는 거짓이라고’ 종교적 차원에서 누군가를 쉽게 혐오의 대상으로 간주해 버린다. 하지만 이슬람교를 포함하여 어떤 종교는 누군가를 싫어하란 명령이 아닌 누군가를 사랑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던가. 이 대사가 이 작품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대사라고 생각된다. 그 사람을 사랑하라고 그 사람이 어떤 모습이든 간에.


바람을 피운 에바, 조금은 쌀쌀맞은 누라, 자기 정체성을 깨닫게 된 이삭, 그저 히잡을 쓰고 다니는 것으로 욕을 먹는 누라까지. 그들에게 혐오의 시각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이 참된 사랑이며 참된 사회로 가는 길이 될 것이다.

 

흔히들 사회가 변화하면 사람들이 변화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반대다. 사회는 압정서 가는 것을 좋아하지만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러니 사회와 사람 간의 격차가 생기고 그사이에 부정 시각이 샘솟게 된다. 하지만 사람이 먼저 앞서간다면 어떤가. 사회는 저절로 사람들을 앞서고 싶다는 마음에 빠르게 뒤따라올 것이다. 부정적 시각은 줄어들고, 우리는 조금 더 좋은 사회를 꿈꿀 수 있지 않을까.


이 드라마의 장르는 ‘하이틴 로맨스’라고 치부할 수 있다. 이 드라마 처음 사랑받은 것은 시즌 3에서 이삭과 에반 사랑 이야기로 퀴어 사사를 전면으로 앞세워 화제의 선상에 올랐다. 하지만 이야기를 조금 더 파고 들어가면 이들의 최종 종착지는 사랑이 아니다. 오직 자신을 알아가는 것에 있다. 사랑은 조금 더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자신이란 존재를 표현하기 위한 한 가지 방식으로 존재한다. 한국 드라마처럼 자신의 꿈과 미래를 포기하면서 사랑을 쟁취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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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자신을 알아가면서 휘청거린다. 하지만 휘청거리는 만큼이나 그들은 더 깊게 뿌리 내리는 방법을 익혔다. 반성할 줄 모르는 어른을 선택하지 않고, 사고하는 어른이 되는 길을 택한다. 그 길에 수많은 눈물이 있겠지만, 기꺼이 그 길을 나간다. 이미 어른이 된 나의 시점, 이 드라마 속 인물들을 통해 사고하는 어른이란 꿈을 키우게 된다. 사고하는 어른이 되어 당당히 사회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모두 그 길에 같이 발맞춰 기꺼이 나아가주기를 바란다.


더 크게 한국 드라마도 이에 응답하기를 고대한다. 더 이상의 PPL 중심의 드라마가 사랑 중심의 드라마가 아닌 그 이상을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 해외 작품으로 참된 인간을 꿈꾸는 것이 아닌 한국 작품을 보면서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 현실을 그려내고 싶다.



[박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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