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상상과 해방 그리하여 자유로 -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 [전시]

글 입력 2020.05.29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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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삶의 모토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하나의 질문으로부터 여러 개의 다른 답변들이 도출되는 걸 지켜보면서 흥미로운 질문이라 생각하곤 했다.


요즘은 졸업을 앞두고 포트폴리오 전공 수업을 수강하고 있다. 덕분에 내가 추구하는 여러 가치 중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무엇인지, 나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어떤 단어를 고르고 싶은지, 이런저런 고민을 하게 되면서 다시 삶의 모토라는 단어를 곱씹어보는 중이다.

대학 4년의 중간 즈음에서 이 질문을 받았을 땐, 열정이라 대답했던 것 같다. 한 친구는 행복을, 한 친구는 재미를, 또 한 친구는 발전을 얘기했다. 단어들을 종합하면 결국 비슷한 의미로 통하는 듯하면서도 단어마다 분명 다른 지점들이 있다는 것이 이 질문의 묘미인듯하다. 그리고 졸업에 가까워지는 중인 요즘 내 삶의 모토는 ‘자유’다. 자유와 고민했던 단어들로는 상상과 해방이 있었던 것 같다. 가장 정확한 표현으로써 자유를 골랐다.


자유를 위해 상상하고 노력하고 또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자유이자 곧 세상의 자유, 세상의 자유이자 곧 나의 자유. 단어에 한 번 마음을 주고 나니 자유가 이미 내 것인 마냥 계속 읊조려보게 된다. 상상과 해방, 그리고 자유, 자유, 자유.


그리고 이번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에서, 붓을 통해 상식과 관습을 뒤집고 이를 통해 감정의 해방감을 선사하며 자유로 나아간 ‘생각하는 사람’ 르네 마그리트를 만났다. 어렵고 난해하다 여겼던 그림의 영역에서 글과는 다른 결의 상상과 해방을 경험했던 하루를 소개한다.

 

 


이미지로써 배반 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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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 후 가장 먼저 보게 된 건, 작품 <순례자> 앞에 서 있는 르네 마그리트가 담긴 사진 그리고 사진과 함께쓰인 그의 문장이었다. “나에게 있어 ‘세상’은 상식에 대한 도전이다”, 상식과 관습에 도전하는 방식으로써, 감춰진 본질과 진실을 불러내온 그의 ‘세상’에 대한 묵직한 상상과 함께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 관람을 시작했다.

첫 번째 ‘어바웃 르네 마그리트 존’에서는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작가와 작품 세계의 이해를 촘촘히 더해갔다. 마그리트가 직접 출연하는, 뢱 드 회쉬 감독의 영화 <마그리트, 또는 사물의 교훈(Magritte, or the Lesson of Things)>(1960) 속 대사들은 많은 질문거리를 남겼다.


“제목은 그림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그려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 아는 것”, 이는 곧 그림도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다고 여겼던 르네 마그리트가, 화가보다 ‘생각하는 사람’으로 불리고 싶어했다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이내 고개를 끄덕이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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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개의 시대별 챕터를 통해 그의 연대기와 작품들을 면밀하게 감상하던 길이 기억에 남는다. 고해상도의 디지털 이미지와 작품별 설명, 그리고 심도 있는 이해를 돕는 참고 영상을 따라 천천히 그를 느꼈다.


무엇보다 ‘낯설게 하기’ 또는 ‘데페이즈망(Depaysement)’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그의 표현기법에 깃든 이야기와 가치관, 그리고 방법적인 부분까지 구체적으로 들여다봄으로써 그와 그의 작품에 대한 이해와 상상의 범위를 넓혀갔던 경험이 뜻깊었다.

르네 마그리트는 ‘어떻게 그릴 것인가’라는 고민이 아닌 ‘무엇을 그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다. 그리고, 작품이 '어떤' 아이디어를 전달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곧 '어떻게' 생각의 틀을 깨고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나아갔다.

그는 일상의 사물을 낯선 곳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배치 이전의 과정은 사물에 대한 관찰이었다. 그는 사물의 외부적 요소와 상관없이 그 사물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질로부터 해결책을 찾으려 했다. 그리고는 그 본질을 살리기 위한 비현실적인 배치를 감행했다.


전시 관람의 이전, 낯선 배치와 본질을 드러내는 것 사이의 명확한 인과관계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나는 그림 몇 장을 통해 어느새 작품 너머의 세계들을 상상하는 중이었다. 낯선 배치는 그 사물로부터의 익숙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을 막았고, 그로부터 본래 사물이 지닌 진실을 한눈에 펼쳐 보여주었다.

 

 


빛의 제국을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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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밤과 낮이 함께 공존하는 풍경으로부터 우리는 경이롭고 매혹적인 힘을 느끼게 된다. 나는 이 힘을 ‘시’라고 부른다."


- 르네 마그리트 (René Magritte)

 


특히 마지막 챕터에서의 <빛의 제국>이라는 작품이 참 좋았다. 낮이면서 밤인 풍경, 밤이면서 또 낮인 풍경. 그의 말처럼 대조적인 두 공간이 공존하는 풍경은 경이롭고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한 사람의 양가적인 두 감정을 떠올리기도 했고, 같은 공간에서 같은 주제의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마음으로써 존재하는 중인 어느 연인을 떠올리기도 했다. 속절없이 화창하기만 한 낮은 공간과 빛이라고는 외롭게 놓인 작은 가로등이 전부인 쓸쓸한 밤의 공간이 함께하는 비현실적인 풍경을, 어딘가에서 마주친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이 작품은 27개의 시리즈로 구성되어있는 연작이다. 그리고 이번 특별전에서는 ‘마그리트의 헌신(The Consecration of Magritte)’이라는 챕터로부터, 27개의 시리즈 중 5개의 작품을 재해석하여 제작한 실감형 영상 기반의 체험물을 통한 <빛의 제국> 연작의 색다른 감상을 경험할 수 있었다.

명상적 공간의 차분한 조명과 음악 안에서 낮을 올려다보다, 깜빡이는 가로등에 다시 밤으로 시선이 내려앉았고 불이 켜진 창문으로부터 집 안의 사람들을 상상했다. 그렇게 하나의 거리를 걷듯 <빛의 제국> 연작을 거닐었다.

 

 


"우주에는 달이 한 개뿐이지만,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달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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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끝자락의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 존’에서는 작가 앙드레 브르통을 중심으로 시작된 프랑스 초현실주의와 마그리트가 속했던 벨기에 초현실주의자들의 예술적 특성을 비교하여 설명했다. 이곳에서, 대표적인 초현실주의자인 막스 에른스트, 호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 등의 작가들을 만났다. 그들의 문장 중에서 “초현실주의는 파괴적이지만, 우리의 시야를 제한하는 속박이라고 간주하는 것만 파괴한다”는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중 달이 소재가 된 작품들이 있었다. 이 또한, 평범한 사물을 디테일하게 그리는 법을 연구했던 그를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었다. 사물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질로부터 해결책을 찾으려 했던 마그리트답게, 그는 '하늘에 떠 있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빛' 과 같은 본질적인 속성으로써의 달을 표현했다.


또한, 진실은 역시나 낯선 배치에서 빛을 발했다. 나무 한가운데 달을 배치한 작품 <9월 16일>, 각자 다른 각도로 서 있는 세 남자 위로 각각의 달을 배치한 작품 <걸작 또는 수평선의 신비>는 내게 상상과 해방을 그리하여 자유를 선사했다.


그를 통해 세상의 달이 아닌 나만의 달을 상상했다. 그의 그림 속에 떠 있는 달들은 내 것 같았다. 르네 마그리트가 익숙함을 파괴함으로써, 나아가 새로운 배치를 행함으로써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메시지는 "우주에는 달이 한 개뿐이지만,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달을 본다" 였을지도 모르겠다.

오늘 그로부터 나만의 달을 띄우는 법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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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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