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때를 맞은 여자들은, 달린다 [도서]

피리부는여자들-3
글 입력 2020.06.01 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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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는

총 세 편의 글로 구성되었습니다.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더래요- 라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피리 부는 여자들을 따라가면 어떻게 될까? 나는 그곳에 가보고 싶다. 여자들이 만들어갈 광활한, 거울 없는 우주에서 어푸어푸 맘껏 유영하고 싶다. 여자들의 세상으로 이끄는 피리 소리 같은 책이 이 험난한 세상에 나왔다. “피리 부는 여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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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 부는 여자들 (이하 피리부)”는 여성 간의 생활, 섹슈얼리티 그리고 친밀성을 다룬다. “여자의 적은 여자”를 주창하며 여성 간의 연대를 편히 볼 수 없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자들의 모임은 무언가(아마도 남성이) 결핍된 것으로 여기는 이성애 과몰입 사회에서 이 책은 그야말로 신세계다.

 

그러나 터무니없지 않다. 그 신세계는 각자의 삶 어느 부분엔가 존재했던 세상이다. 나는 언제나 그 세계를 갈망하고 있었다. 피리 소리를 따르는 긴 행렬이 보인다. 언제부터 이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참으로 감미로운 소리다.


 

 

긴 행렬을 부르는 그림 (이민경)



이민경 작가의 글은 왜인지 순식간에 읽히지 않는다. 활자를 하나하나 따져 물어야만 그제야 내 안으로 들어온다. 들어온 활자들은 원래 내 것이었던 듯 금세 자리를 잡는다.


이민경 작가의 글을 읽고서야 나는 깨달았다. 나에게 가장 가까운 감각일수록 못 보고 지나친 것이 넘치기에 그렇게 얼버무리며 내 감각은 원래도 이리 둔하다고 포장한 적이 많기에 나는 그의 글을 그냥 지나치기가 힘들었다. 수능 비문학 지문을 읽듯이 하나하나 뜯어 읽었다.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고 그가 하는 모든 비유와 경험들을 흡수하고 싶었다.


그간의 삶이 지나쳐옴이었다면, 이민경의 글은 건너뛰었던 면밀함을 단숨에 정리해주는 시험 직전 족집게 강의 같았다. 나는 자꾸만 줄을 쳤고, 문장의 구성 성분을 나누었다. 입으로 곱씹고 필사하고 그가 그려내는 그림들을 따라 그렸다.


왠지 모를 조급함과 불안함과 부유함에서 오는, 발밑에 땅이 없다는 외로움은 사실은 내가 감각하고 꿈꾸는 모든 것들이 ‘그림’이 아니라 ‘헛된 망상’이라 치부한 데서 온 모양이었다. 그림을 그린 적이 없으니 어디에 걸어두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없었다. 나는 언제나 나의 망상에 대해 말하고 싶어 했고 늘 무언가를 주도하고 꾸며내고 싶어했다. 나는 언제나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을 계속해서 실현하고자 관찰하는 눈을 감지 않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나도 달리고 싶어하는 여자라는 걸 알았다.

 


때를 맞은 여자들은, 달린다. 들판을 가로질러 바다를 향해 달리다 뒤돌아 다른 여자를 응시하며 자신이 이 순간을 오래 기다려 왔노라고 말하며 웃는 여자같이 달린다. 그를 불안하게 뒤쫓던 여자는 묻는다. 죽음을요? 달리던 여자는 말한다. 달리기요.


여자들은 달리면 죽으리라 의심받고 달리고 싶어서 죽었다 추측되고 달리는 방편으로 죽으려 들 테고 죽고 싶지 않아 달리기를 시작하고 죽음을 감수하고 달리기를 이어간다. 이때 달리기란 시선이 주파하는 대로 몸을 움직이는 행위다. (p.110)



이 글의 첫머리에 서자마자 나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떠올랐다. 절벽이 끝임을 알면서도 달리는 여자들. 절벽의 코앞에서 등판의 옷깃을 붙잡고 뒤돌아보는 여자와 숨을 헐떡이며 달리기의 목적을 묻는 듯한 여자. 그래, 여자가 달리면 언제나 추측된다.


바다를 보기 위함인지, 겁도 없이 바다를 건너기 위함인지 아니면 절벽에서 떨어져 죽기 위함인지. 그 추측 속에서 여자들은 달리기 위해 달린다. 매서운 바닷바람 앞에서도 절대 눈을 감는 법이 없다. 더듬거리지 않고 한발 한발 정해진 대로 내딛는 걸음과 함께 그들의 시선은 이리 저리를 주파하지만 절대 동요하거나 흔들리는 움직임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생동하는 여자들이 모여 새로운 언어를 창조했으니 한시도 그로부터 눈을 뗄 수 없었음은 당연하다. 여자들은 적극 내달렸다. 주파는 겹겹이 쌓일수록 폭발에 가까운 열을 불러일으킨다. 폭발 한가운데에서 여자들은 자신을 포함해 여자를 사랑하는 법을 완전히 새로 배웠다. (p.111)



이민경 작가가 진행하는 ‘코로나 시대의 사랑’ 메일링 서비스를 구독했다. 메일링 서비스라는 딱딱한 말로 부르고 싶지는 않고, 전자 우편이라는 말이 이럴 때는 딱이다. 그의 언어로 가득 메워진 광활한 메일 창에는 그가 주파한 여자와 어디로 달려야 할지, 자신이 잘 달리고 있는지 묻는 여자들의 물음표도 간간이 보였다.


나는 눈을 뗄 수 없다는 말을 이제야 이해했다.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이 후광을 발하며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라, 이 활자들을 읽어 나가는 시선에서 나는 그 말을 발견했다.


자신이 무엇을 할 때 ‘안중도 없어’지는지 알게 된 여자들은 새로이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나는 오랫동안 사랑을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왔다. 사랑은, 여자를 해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떤 사랑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 사랑은 여자 간에서 주파 되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낸다.

 


남성이라는 매개 없이도 서로를 응시하는 방법을 알아낸 여자들은 오래도록 시간을 보내고도 헤어지고 싶지 않아 자꾸만 뭉쳐 다니고 거리낌 없이 집을 드나들고 헤어지고 난 뒤에도 곧장 통화했다. 눈이 맞으면 몸이 붙는다. (p.112)



나와 내 동네 친구들은 참 많이도 밤에 만났다. 잠옷 차림으로 나와 편의점에 가는 길을 빙빙 돌아 한 시간이 넘는 산책길을 만들어 냈다. 아이스크림을 고르는 손길은 찰나였고 편의점 의자에 앉아 파리를 쫓아내는 손날개짓은 합하면 하루가 족히 될 듯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매일 매초 서로에게 전화했고 서로를 응시했다. 때로는 대낮 동네 벤치에 앉아 닭강정을 입에 문 채로 엉엉 울기도 하고 영화를 보며 비빔면을 먹다 싸우기도 했다. 나는 그 순간에서 느꼈던 그 ‘뭉침’을 잊지 못한다.


자꾸만 그때로 회귀하게 되는 것은 내가 진실로 사랑을 믿었던 마지막 순간이 그때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여자들이 서로를 응시하고, 비밀스레 맞응시하고, 그 응시를 통해 연대와 응원을 보내던 순간들을 최근이 되어서야 다시 눈치챘다.

 

나는 이제 자꾸만 시선을 한곳에 두고 계속해서 달릴 것 같다. 활자를 조각 조각내어 읊조리고 여기저기서 이민경 작가의 글에서 본 낱말들을 찾아낼 것이다. 나는 피리 부는 여자들을 읽고 나서 너무나도 행복해졌다. 이 충만하게 차오른 묵직한 느낌을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꽤 오래갈 감각이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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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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