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전시장을 나와서도,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 [전시]

글 입력 2020.05.28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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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전시를 보러 갔던 이 날의 날씨는 유독 깨끗했다. 전날 비가 와준 덕인지, 하늘과 구름의 경계가 너무나도 선명한 날이었다. 같이 전시를 보러 간 언니는 하늘을 보며 "이거 르네 그림인데?"라고 말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동의하지 못했다.


"나에게 있어 ‘세상’은 상식에 대한 도전이다."라는 문구로 시작했던 르네 마그리트의 특별전. 그의 도전적인 정신은 이번 전시를 관람하는 나에게도 크게 다가왔다. 관람하는 내내 “왜?”라는 질문이 계속 따라다녔다.


 

인간혐오 크기조절.jpg

<인간 혐오>, 1942


 

황야의 들판 위에 놓여 있는 조각상 여러 개. 내가 가진 상식을 활용해 섣불리 판단해보면 이 조각은 커튼의 모양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 조각이 왜 여기에? 조각과 한 그루의 나무의 상관관계는 대체 뭐길래 함께 놓여있고, 이를 모두 아우르는 제목은 왜 ‘인간혐오’란 말인가. 이렇듯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다 보면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고, 쉽게 단정할 수 없었다.

 

애초에 창작자가 아닌 관람자가 다방면의 해석이 가능한 예술이란 것을 온전히 이해해보겠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긴 하지만, 마그리트의 작품은 그만큼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 특별전에서는 그러한 어려움을 보완할 수 있는 여러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다.


 

 

작품과 함께 르네 마그리트 자체를


 

앞서 언급했던 문구를 지나고 나면, 르네 마그리트에 대한 영상을 상영할 수 있었다. 그의 작품에서 제목이 차지하는 바가 얼마나 큰지는 다음 대사로 알 수 있었다.



“제목은

그림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닌

작품을 이어가는 것이다.”



창작자에게서 제목의 비중이 상당함을 인식하고 관람하는 전시는 단순히 작품 자체를 보고 넘기는 것이 아닌 부연 설명까지 꼼꼼하게 읽을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했다. 그래서 그런지 각 섹션마다, 작품마다 붙어있던 설명은 보다 친절하고 자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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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판넬 설명이 잘 안 보일 수 있음에 양해를 구한다. 상영됐던 영상 이후에 쭉 이어지는 그의 연대기 설명을 거치면 각 시대 혹은 그의 예술적 스타일의 변화에 따라 구분되어 작품이 펼쳐진다.


그중 내가 그의 특별전을 가장 보고 싶어 했던 이유이자 목적이었던 작품 <연인들>, 그리고 이에 영향을 준 어머니의 자살이 연대기와 입체 미래주의, 그리고 작품 설명에 연이어진다.


항간에는 르네 마그리트 자신은 어머니의 자살이 그의 작품세계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자신도 모르는 무의식의 영역이 작품에 반영될 수 있기에, 베일에 가려진 얼굴 모티프는 항상 이와 연관되어 해석되고 있다. 이러한 연관성 덕분에 한국에서 본 작품 <연인들>은 확실히 미국에서 본 것과 다른 느낌이었다.


실제 질감과 크기에서 주는 몰입은 단연 제외하고, 작품 자체의 예술성만이 아닌 작자의 세계와 연결되는 인간적 면모로 바라본 두 버전의 <연인들>은 내게 이전에 받았던 감명과는 분명 달리 다가왔다.


기대했던 작품을 보고 난 후에야 마그리트의 또 다른 작품이 유달리 마음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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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는 달이 한 개뿐이지만,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달을 본다."


 

타이틀 문구 아래로 모여있는, 달을 사용한 마그리트의 작품 모음이다. 세상에 과연 달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달은 모양에 따라 가끔은 초라해 보이기도, 경이롭게 보이기도, 숙연하게 보이기도 한다. 물론 감정은 각자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달리 반영된다.


삶 또한 마찬가지이다. 생을 영위하며 살아간다는 것 자체는 모든 이에게 주어진 세상의 과제이지만, 각자의 삶이 있다. 누군가와 비교할 수도, 비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자신만의 ‘목적’을 지닌 채 하루를 살아가는 것, 그게 마그리트가 말한 ‘달’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보여지는 것보다 생각하게 하는 것이라던 르네 마그리트. 작품을 보며 100% 확신으로 떠오르는 해석을 말하기보단 곱씹어 생각하게 되는, 그래서 이유 모를 위로받는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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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6일>, 1956


 

그 중, 가운데에 배치된 <9월 16일> 작품은 흥미로운 일화가 얽혀있다. 가장 위대한 락스타로 알려져 있는 데이비드 보위와 쌍벽을 이루는 영국의 뮤지션 마크 볼란에 관한 이야기다.


생전 그는 프랑스 투어 때 방문한 루브르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던 <9월 16일을> 보게되었고 그 앞에서 홀린 듯 계속 서 있었다고 한다. 결국엔 구매까지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며칠 뒤 1977년 9월 16일 차가 나무를 들이받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숨졌는데 그때 들이받은 나무와 초승달이 이 그림과 같았다고 한다.

 

 


체험과 동시에 든 이번 전시의 고찰


 

줄지어 있던 작품의 행렬이 끝나면, 구름을 활용한 작품이 양 사이드로 반겨준다. 그리고 ‘아시아 최초 멀티미디어 체험형 전시’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체험 공간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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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제국 체험존 크기조절.jpg

 

 

실제 작품 <빛의 제국> 바로 옆에 작품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큰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전 작품이 꽤 촘촘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고, 사진 촬영이 가능한 전시였다 보니 동선이 조금씩 어긋남에 관람 순서 또한 살짝 혼란스러워지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체험 공간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는 순간 점차 사람들이 흩어져, 더욱 편히 즐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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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자동으로 인식되고 특수 효과가 동반되어 직접 자신이 작품 자체가 되어볼 수 있는 AR 포토존 또한 신선했다. 특히, 이곳에선 어린이 관람객들을 위한 발판까지 놓여있어 세심하게 관객을 위한 배려가 많이 느껴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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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전시 후반부에 천장을 제외한 모든 부문에서 그의 작품을 되새김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었다는 것이다. 곳곳에 배치된 의자에서 마그리트의 대표작과 그의 대다수 작품에서 쓰이는 중절모와 하늘, 파이프 등이 차례로 애니메이션 효과를 띄며 등장하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었다.


작품에 따라 변하는 조명과 잇따른 분위기 그리고 흘러나오는 클래식은 관객들의 감성을 효과적으로 자극했다. 어느 공간을 들어가던, 마그리트의 작품뿐만이 아니라 그 자체를 ‘생각’해볼 수 있도록 의자가 마련되어 있었기에 투영되는 것보다 그 이상을 상상하길 원했던 그의 바람이 반영된, 완전한 그의 특별전이었다.


 

초현실주의 크기조절.jpg

 

 

마지막으로 초현실주의 화가라는 타이틀에 맞게 대표적인 초현실주의자인 살바도르 달리, 막스 에른스트 등을 함께 소개한다.


미국과 일본의 전시에 두드러지는 한국 전시의 고질적인 특징 중 하나는 전시 주인공을 집중적으로 강조하기보단 한 카테고리 내 유명인들을 함께 소개하는 부분이 꼭 있다는 것이다. 이는 메인 화가의 특징을 분산시킬 수 있는 위험이 있는데, 이번 전시는 오히려 마그리트의 두각을 드러내며 집중에 보다 성공한 듯 하다.

 

초현실주의자의 양대산맥으로는 살바도르 달리와 르네 마그리트를 지칭하곤 한다. 작품과 화가의 유명세를 비교해봤을 때, ‘미친 화가’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이름을 날렸던 달리와는 다르게 상대적으로 작품으로 유명세를 치르던 르네 마그리트.


이번 전시에서 그의 작품을 관람하면서 '그'라는 사람에 대해 꽤 많이 알아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전시의 주된 목적이 작품 관람이기에 작자에 대한 설명은 다소 적거나 동떨어져 있기 마련인데, 그의 생각과 일생이 자연스레 잘 스며들었다.

 

모든 색을 사라지게 했던 초현실적인 공간은 올리퍼 엘리앗슨을 연상시켰던 것처럼, 전시 구조는 곳곳에 다양한 설치작품이 연상되었다. 구조와 더불어 각종 미디어를 활용했던 전시는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특성뿐만이 아니라 한국 전시 상황의 목적 또한 잘 지킨 것처럼 보인다.


재정적 문제에 따른 순수미술의 전시 목적을 다소 잃어가고 있던 상황 속, 미래 전시의 기대를 보여줌과 동시에 순수한 목적까지 잘 지켜낸, 중도를 잘 유지한 전시였다. 이번 전시는 이미 도래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속, 어떻게 예술을 현명히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관한 고찰 또한 눈여겨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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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육체와 정신 모두 유익하게 채워낼 수 있던 전시는 전혀 지루하지 않았지만, 내내 집중했던 탓에 어쩔 수 없이 지쳐버렸다. 하지만 내 머릿속은 온통 르네 마그리트라는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고 전시장을 나와 우리를 반겨주던 인사동 일대에 구름을 보고서는, 내가 먼저 외쳤다. “이거 르네 그림이잖아!”

 

 

(본 사진은 모두 직접 촬영하였습니다.)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

- Inside Magritte -



일자 : 2020.04.29 ~ 2020.09.13


시간

오전 10시 ~ 오후 8시

(매표 및 입장마감 오후 7시 20분)


*

휴관일 없음


장소

인사센트럴뮤지엄


티켓가격

성인(만19~64세) : 15,000원

청소년(만13~18세) : 13,000원

어린이(만7~12세) : 11,000원

미취학아동, 만65세 이상 : 6,000원


주최

크로스미디어

지엔씨미디어


관람연령

전체관람가

 


[박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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