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계의 어지러움을 종이에 쏟아내는 일 [문화 전반]

기계가 세상의 일상을 지배해버린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글 입력 2020.05.2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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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계가 싫다. 우리가 여기까지 오게 해 준 기술과 그 기술로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는 기계가 싫은 게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이성을 잡지 못하게 하는, 중독을 유발할 수 있는 모든 게 싫다. 우리가 세탁기나 냉장고에 중독될 경우보다는 핸드폰, 유튜브, 여러 가지 인터넷 사이트에 중독될 경우가 훨씬 많고 대중교통만 타도 ‘사람들이 점점 인터넷에 미쳐 가고 있구나’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이 글은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전부 핸드폰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 너무 싫은 마음에 쓴 것이다. 사람이 아닌 기계 여러 개가 지하철에 앉아 거북목을 한 채 핸드폰에 빨려 들어가는 그런 상황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은 것 같았다. 아무에게도 관심을 가지지 않은 채 자신의 인터넷 세상에만 집중하는 그 사람들은 나중에 어떤 생각을 할까?

 

*

 

나는 지금 악에 관한 소설을 쓰고 있다. 무엇이 악이고 무엇이 악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의 문제에 관하여. 쓰면서 느낀 바는 악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는 가끔, 아니 매일 기계가 악과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한글 문서를 열어 공모전을 위해 노트북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기계에 익숙해져 제멋대로 움직이는 내 손가락은 변함없이 싫다.

 

나는 문학회 회장이다. 어쩌다 보니 동아리를 들어갔고 어쩌다 보니 인연이 닿아 회장직을 맡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학교에서는 동아리 지원금에 필요한 교수님 서명을 받아오라고 했다. 그때는 외출 금지 단계 전이라 마스크를 단단히 여미고 다음 날에 있을 실시간 강의 토론을 위해 주머니 한쪽에 토론 발제 종이를 넣은 채 다소 가벼운 무게의 몸을 지하철에 실었다.

 

손잡이를 잡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며 지하철의 긴 순간을 견뎌내고 외울 정도로 익숙해진 지하철 노선도를 몇 번이고 노려보았다. 발제 종이를 들여다보다 눈이 피로해 무심코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은 요즘 시대에는 각자의 자아 축소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스마트폰을 들고 고개를 박은 채 열중하고 있었다. 갑자기 화가 치밀어올랐다.

 

다른 사람은 딴짓하는데 나만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은 절대 아니었다. 어디론가 가기 위해서는 기계에 몸을 맡긴 채 나를 실어나르는 움직임을 억지로 느끼고 덜컹거리는 기계 소리를 고스란히 견뎌내야 하고. 올라타고 내릴 때조차 기계의 안내에 따르고. 내 힘으로는 아무 곳도 갈 수 없고. 방향이 정해진 채 달려야 하고. 그 안에서조차 기계에 지배되어 내 머리의 상상력을 제한당하는 사람이 된 그 순간이, 그 느낌이 미치도록 괴로웠다.

 

순간 지하철 문을 박차고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그러면 저기 앉아있는 멍한 눈의 수많은 사람이 스마트폰을 던지고 나를 봐줄까. 왠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에 상상을 그만두었다. 고개를 젓고는 내 오른쪽 주머니 속에 일부러 숨겨둔 볼록한 형체를 내려다보았다. 울룩불룩 참으로 못생겼다. 우웅. 그 순간 진동이 울렸고 울고 싶었지만 나는 주머니 속 기분 나쁜 물체를 꺼내 살려야 하는 운명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주머니를 잡고 꺼내는 순간 한 번 더 진동이 울렸다. 소름 끼쳐. 나도 내가 왜 이랬는지 알 수 없다. 악은 때때로 사람을 비정상적으로 만들어버리니까. 학교에 가서 교수님과 대화하고 잠시 친구를 만나 얼굴을 보고 밥을 먹는 모든 과정이 일상과 붕 떠 있는 듯 다른 세계에 있는 느낌이었다.


교수님께 메일을 드리고 답장이 오면 서둘러 손가락을 바쁘게 놀리는 그때 그리고 친구가 인스타그램 업로드를 위해 사진을 정성스럽게 찍는 그 순간. 취업은 컴공이 제일이라던데 이야기하는 친구의 입 모양도. 손을 흔들고 끔찍한 지하철에 다시 몸을 싣는 그 순간도 역시.

 

얼굴이 빨려 들어갈까 걱정되는 사람들을 두 눈을 가린 채로 또다시 지나 구석에 서서 문이 열리고 닫히는 횟수를 얼마나 세었을까, 어느새 기계에서 내릴 수 있게 되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만 나를 막으며 깜빡이는 신호등 그리고 인스타에 뭐 올릴까 고민하는 사람들 사이로 들려온 말은 나를 너무나 쉽게 무력감에 빠뜨린다. 걷다가 그대로 주저앉아 멍하니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사람들 역시 나를 쳐다본다.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지만 내 눈빛 역시 그렇다. 스트레스가 나를 타고 올라온다.

 

앉은 자리 그대로 가방을 뒤적여 노트 한 권을 꺼냈다. 낡았지만 스마트폰의 스크린보다 밝게 빛난다. 한 번 더 뒤적여 주머니에서 연필을 꺼내 입술을 뜯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모든 순간을 써 내려간다. 온몸으로 그 순간을 기억해 내고 몸을 비틀면서도 종이에 모든 것을 쏟아낸다. 그러면서 내일은 기계에 중독된 사람들이 조금 더 적겠지, 누군가는 기계와 거리를 두고 삶에 대해 생각하겠지, 생각하며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간다.

 

*

 

대중교통에서 책을 읽거나 가만히 쉬는 사람은 하루에 많으면 두 명이고 그마저도 보지 못할 때가 많다. 어떨 때는 고개를 들어 내가 탄 칸 전체를 보았는데 대략 40명 정도의 사람이 모두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아는 사람이 없을 때 찾아오는 그 적막을 사람들은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고 오히려 혼자 있는 시간을 어색하게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이렇게 핸드폰에 자신의 외로운 시간을 전가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기계에 수동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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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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