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프로이트의 이론을 거부합니다.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 [전시]

나에게 있어 '세상'은 상식에 대한 도전이다. - 르네 마그리트
글 입력 2020.05.24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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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중간에 삽입된 텍스트를 좋아한다. 그전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가 흥미롭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멀티미디어형 전시지만 텍스트 양도 많아 사유하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마그리트가 자신을 철학가로 표방하고자 했던 만큼, 그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이목이 갔다. 많은 메시지 중에서도, 이번 전시는 단 한 문장으로부터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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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초입에서 삽입한 한 문장이 르네 마그리트의 철학과 이번 전시 전체를 집약해 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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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따르는 텍스트의 문장. 친숙하고 평범한 일상 사물들을 예기치 않은 환경 속에 낯설게 배치함으로써 상식을 부수는 등 사고의 일탈을 유도한다. 우리가 많이 들어봤던 데페이즈망이다.


마그리트는 자신의 작품에 특별한 해석 없이 자유롭게 즐기기 바람과 동시에 한 편의 시로 여겨지길 원했다. 아리송했지만 나름 결론을 냈다. 상식에 대해 끊임없이 도전했던 르네의 작품을, 저명한 전문가가 그럴듯한 해설을 도출해낸다. 대다수 공감한다. 어쩌면 해당 작품의 일반적인, 하나의 해석으로 고착화될 수 있다. 르네는 이를 우려한 게 아닐까? 한 작품이 하나의 해석으로만 이어진다면 르네가 그토록 기피했던, 현실 세계의 상식에 속하게 된다.




 

 

단락의 텍스트를 지나고 영상이 상영됐다. - 세상이 나를 속이고 있다는 불신이 생겼으며 새로운 시야가 트였다 - 작가의 에피소드다. 흥미로웠던 건 작품 제목을 명명하는 방식이다. 평소 작품을 창작할 때 붓질을 끝내는 것만큼이나 마 제목을 중시한다고 한다. 그의 말로는 그림을 평범하지 않게 만드는 제목을 명명해야 한다고.


친구들과 일요일에 모여 제목을 정한다. 작품 묘사를 계속해서 끄집어낸다. – 하나의 벽, 그 벽에 있는 활짝 열린 창문, 방 안을 보는 25명의 사람 –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방식이며 과정이다. 대화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과정이며 더 이상 묘사할 게 없을 정도로 묘사가 끝난다면 그 묘사로부터 하나 둘 멀어지기 시작한다. 기묘한 작업ㅡ을 거친 후, 제목이 완성된다.


인상적이었다. 그림을 평범하지 않게 만드는 제목이라면 제목을 짓는 순간 초현실주의 작품으로 거듭난다는 말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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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마그리트의 일대기다. 다른 무엇보다도 그가 초현실주의 노선을 타게 된 계기에 집중하고 싶었다. 일전에도 언급했듯이, 마그리트는 우연히 발견한 카탈로그로부터 충격받았다. 카탈로그에 실린 조르조 데 키리코의 <사랑의 노래> 복제화를 봤기 때문이다.


그리스 태생의 이탈리아 계 미술가 조르조 데 키리코는 예기치 못한 것이나 완전히 수수께끼 같은 것과 마주쳤을 때 우리에게 엄습해오는 낯선 느낌을 포착하고자 했다. 그는 전통적인 재현 수법을 사용해 기념 조각의 고전적 두상과 거대한 고무장갑을 황량한 도시 속에 결합해 놓고는 거기에 ‘사랑의 노래’라는 제목을 붙였다.


르네 마그리트는 <사랑의 노래>를 보고 “재능이나 솜씨, 모든 사소한 전문 수법들의 노예인 미술가들의 정신 습관과의 완전한 결별을 나타내는 새로운 시각”이라며 감상평을 남겼다.


르네 마그리트는 경험을 계기로 생애 대부분을 이 길을 추구해가는 데 바쳤고 꼼꼼하고 정확하게 그린 그의 수많은 꿈과 같은 형상들에 수수께끼 같은 제목을 달아 전시했다. 그것들은 바로 불가해하기 때문에 잊히지 않는 것이다. 다음 작품은 1928년에 그린 <불가능한 것에 대한 시도>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제목 하나만으로 초현실주의의 표어로 인용할 수도 있을 법하다.

에른스트 곰브리치(2017), 서양미술사, 예경, 589p

 


불가능을 시도하다_작품 앞에 서있는 르네 마그리트, 1928.jpg

불가능을 시도하다

_작품 앞에 서있는 르네 마그리트, 1928



미술가들이 이전에는 시도된 적이 없는 참신한 실험을 하도록 바로 단순히 본 대로 그려야 한다는 요구에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마그리트의 그림 속의 미술가(화가의 자화상이기도 한)는 아카데미의 기본 과제인 누드를 그리려고 하지만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마치 꿈을 꿀 때 그렇듯이, 현실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에른스트 곰브리치(2017), 서양미술사, 예경, 590


르네 마그리트가 초현실 노선을 타게 된 계기와 이후 행보다. 마지막 문장처럼, 그의 작품은 꿈과 같이 새로운 현실을 묘사한 것 같다. 물론 초현실주의는 프로이트 정신분석의 영향받아 무의식 세계, 꿈 세계를 지향하는 사조다. 필연적으로 르네 마그리트의 깨달음과 작품들에 연관 있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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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_작품 앞에 서있는 르네 마그리트, 1967


 

그러나 르네 마그리트는 프로이트 이론이나 특정 무의식 이론으로 자신의 작품을 해석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프로이트 이론에서 파생되고 영감받았던 예술 사조 일원의 작품이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이론을 거부했다. 필자 나름 유추한 결과, 서두에 서술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상기한 텍스트를 다시 살펴보면 "마그리트는 자신의 작품의 특별한 해석을 배제하고 자유로운 감상, 하나의 시처럼 여겨지길 원했다"라고 언급한다. 섹슈얼적 요소, 새, 중절모, 신사 따위의 상징 등은 작품에 흔하게 등장하지만 해당 작에 특별한 해석을 야기하는 요소가 아니다. 그저 꿈 세계에 속하는 하나의 요소일 뿐이다.


이미지는 강렬하고 즉발적이다. 시각 이미지를 수용한 순간 이후 감상과는 상관없이 같은 잔상이 뇌리 속에 박힌다. 그때 누군가 그럴듯한 해석을 내놓으면 이미지와 결부되어 대부분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수용돼, 특정 해석을 지닌 이미지가 돼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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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우리는 같은 시, 같은 텍스트라도 천차만별로 이미지를 떠오른다. 르네 마그리트는 바로 이 점을 주목한 게 아닐까 싶다. -언어보다 이미지를 중시했다는 것도 – 누군가 그럴듯한 해석을 내놓는다 해도 우리 머릿속에는 다른 이미지로 재구성되고 재창작된다. 저마다 각각의 감상 세계를 창조해내는 것이다.


르네 마그리트 하면 떠오르는 기법은 단연 데페이즈망이다. 평범한 일상 사물을 다른 곳에 배치하면서 상식을 깨부수는다는. 프로이트 이론으로 해석하는 건 결국 작품을 통해 깨부쉈던 상식을 다시 현실 세계의 상식으로 돌려내는 게 아니었을까?


전시에서도 언급됐던, 마그리트의 친우 루이 스퀴트네르의 언급이 부연 설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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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트의 메시지는, 감상자 개인의 머릿속에서 산발적인 감상 모두를 존중한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게 아닐까 싶다.


텍스트에서 많은 인사이트를 발견했다. 텍스트에서는 르네 마그리트의 메시지와 주변 인물들, 후대 평가 따위를 이용해서 궁금했던 것과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관을 유추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전시 중에서 가장 마그리트스럽게 감상했던 공간을 꼽자면 메인 테마라고 볼 수 있는 멀티미디어 룸이었다. 넓은 공간 전체가 미디어였고 작품이었다. 사방과 바닥에서 마그리트의 작품이 흐트러지고 사라지고 다시 생기고 겹쳤다. 처음에는 영상만 50분이라는 안내에 굉장히 지루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로 보니 그런 생각 싹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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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굉장히 감명받았던 '빛의 벙커'가 연상되는 구조였다. 배경음악과 이미지 영상이 적절하게 어울렸다. 처음 들어가자마자 넓은 공간과 작품의 움직임 배경음악에 압도돼서 하염없이 구경하고 있었던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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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공간 한편에는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들을 3D로 구현해서 직접 작품 속에서 서 있는 듯한 감상을 줬다. <골콩드> 같은 경우 나도 하나의 레이닝 맨이 된 듯한 기분이었으며, 발아래 그림자까지 묘사하는 디테일을 보여줬다. 일전에 관람했던 '더 뮤즈 : 드가 to 가우디에'서 보여줬던 작품 공간을 연상했는데, 이번 전시는 바닥까지 작품이 비쳐서 더 몰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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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거울, 1935, 캔버스에 유채, 19x27cm

 

 

전시회를 다녀왔더니 마그리트의 상식에 대한 도전에 대해 감화됐다. 평소 초현실이라는 어휘를 대강 비현실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으나, 마그리트의 초현실에 공감하면서 초현실에 대한 명확하게 이해하게 됐다.


전시는 원화가 아닌 프린팅이라는 데서 양해를 구한다. 르네 마그리트는 언어보다 이미지를 중시했고 작품을 감상하는 데 있어 복제품 또한 원작과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고 말한다. 르네 마그리트의 전시라면, 그의 가치관을 따라 우리 또한 그런 감상 태도를 견지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
- Inside Magritte -


일자 : 2020.04.29 ~ 2020.09.13

시간
오전 10시 ~ 오후 8시
(매표 및 입장마감 오후 7시 20분)

*
휴관일 없음

장소
인사센트럴뮤지엄

티켓가격
성인(만19~64세) : 15,000원
청소년(만13~18세) : 13,000원
어린이(만7~12세) : 11,000원
미취학아동, 만65세 이상 : 6,000원

주최
크로스미디어
지엔씨미디어

관람연령
전체관람가

 


[오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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