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종교인의 바티칸에서 반나절 보내기 [여행]

지난여름의 바티칸 탐방기
글 입력 2020.05.21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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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떠난 첫 여행지 이탈리아. 그곳에 도착한 다음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시인 바티칸 시국에 가게 되었다. 어렸을 적 친구를 따라 일요일 아침 교회를 간 적도 있고, 종교를 가져볼까 하는 마음을 가져본 적도 있고, 할머니로부터 끊임없는 전도를 받고 있었지만 사실 나는 현재 어떠한 종교도 신념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바티칸에 가는 것은 너무나 설레는 일이었다. 첫 나 홀로 여행지의 목적지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도시이지만 전 세계의 정신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도시이기 때문이었다.


바티칸을 홀로 구경하는 것은 무리다 싶어 2년 전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온 엄마의 조언을 얻어 단체 투어를 신청했다. 여름휴가 기간 로마의 특성상, 어디든 사람이 무지막지하게 몰리기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점심시간까지의 투어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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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거리, 로마


 

낮과 저녁에는 그렇게 붐비던 로마의 새벽은 고요했다. 그렇지만 어느 도시나 그렇듯 출근시간의 지하철은 매우 붐비기 마련이었다. 항상 도시를 여행하더라도 느긋한 여행을 추구했던 나로서는 정말 생소한 경험이었다. 일하러 가는 로마 사람들 속에 여행을 온 외국인인 나.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지만 로마 사람들에게는 이게 일상이겠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국에 있던, 평상시의 나는 로마인과 더 비슷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항상 큰 짐을 들고 아침 일찍부터 공항철도를 타고 서울로 향하는 외국인을 보고 부럽다는 생각이 들곤 했는데, 로마 사람들도 나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하곤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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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시국 입장을 위해 늘어선 행렬



아침 일찍 도착했지만, 역시나 바티칸 입장을 위한 줄은 이미 붐비고 있었다. 전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은 다소 피곤한 듯 보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바티칸에 대해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기대가 없었으면 그 새벽부터 다들 일어나 준비하고 줄을 서진 않았겠지. '이 많은 사람의 수가 놀랍다'라는 나의 마음이라도 읽은 것인지, 가이드는 오늘은 정말 사람이 없는 편이라고 거듭 말했다.


아쉽게도 바티칸 입장 티켓은 내가 원하던 <아테네 학당>이 그려진 티켓이 아니었다. 티켓의 그림은 바티칸 안을 구경하고 투어를 듣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지만, 유럽에 도착하고 나서 어딜 가든 매번 커다란 규모의 성당과 교회를 보다 보니, 건물 자체에는 시들해지고 그림이나 조각 같은 작품에 더 관심이 있던 때라 아쉬움이 남았었다.


아무리 투어와 함께라도, 바티칸 안의 모든 작품을 반나절 안에 관람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에 핵심적이거나 한국인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작품을 중심으로 관람을 했다. 라파엘로의 그림을 비롯해 많은 작품을 관람하고 잠시의 휴식을 가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에는 가이드가 설명하는 모든 작품에 눈을 반짝이며 관람하며 설명에 집중했지만 잘 모르는 작품들이 계속해서 나오며 그 집중력은 끝까지 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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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콘>, 바티칸


 

휴식을 가진 후 여러 조각상을 관람하기 위해 이동했다. 유레카! 드디어 아는 작품이 나왔다. 사실 알다마다, 어렸을 적 닳고 닳도록 읽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보았던 조각상 <라오콘>이었다. 잘 모르던 작품들의 설명을 들으며 지쳤던 마음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10년도 더 전에 책으로만 보던 라우콘의 조각상을 직접 내 두 눈으로 보게 되다니.


평소 같았으면 시야를 방해하던 모르는 아저씨에 조금 짜증이 날 만도 했지만, 작품을 보게 된 것만으로도 설레는 마음이 다시 되살아나 짜증이라는 감정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비현실 같던 막연한 바티칸행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그 설렘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 이후로 본 작품들이 더 유명하고 바티칸의 핵심을 이루는 작품이었기 때문일까? 지루함은 사라지고 점점 더 남은 투어가 기대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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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내 천장화


 

시스티나 성당 내의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화 <천지창조>나 <최후의 심판>같은 최고로 유명한 작품은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그렇기에 많은 작품을 일일히 사진으로 남겨두기보다는 그 순간에 충실해 눈에 담아두었었는데, 투어가 진행되며 계속해서 사람이 만든 공간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운 곳은 그냥 지나치기 아쉬운 마음에 사진으로 담았다. 최선을 다해 찍어도 사진에 그때 그 느낌을 온전히 담을 수는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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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학당>, 바티칸

 


가장 기대한 작품이고 마음에 들었던 작품인 라파엘로의<아테네 학당>과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아테네 학당>의 배경은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이지만 그리스 학자들을 그려 넣은 그림이었다. 라파엘로가 이 작품 속에 자신의 얼굴과 존경하는 인물을 몇몇 학자들의 얼굴로 그려 넣어 표현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최후의 심판>은 말할 것도 없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구약 성서의 내용을 그려 넣어 연속되는 그림의 내용도 좋았다.


하지만 이 작품들이 정말로 마음에 남은 이유는 종교에 대한 경이로움 때문이었다. 이렇게 웅장하고 넓은 벽과 천장에, 프레스코라는 어렵고 힘든 작업을 적용해 그린 그림들이라니. 포기하지 않은 것이 놀라운 수준의 그림들이었다. 물론 그들이 포기했다면 오늘날의 내가 여기에서 이렇게 볼 수 없었겠지만, 작가에 대해 인간 이상의 경외심이 드는 작품들이었다.


아무리 제자 혹은 조수들과 함께 한 것이라고 해도 어떻게 그런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었을까? 이들은 종교로부터 어떤 것을 얻었고 느꼈기에, 아무리 큰 보수가 걸려있었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 바쳐 가톨릭을 위해 이런 작품을 몇 개나 만들어낸 걸까.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종교와 사람이 가진 믿음의 힘이 피부로 와 닿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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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 바티칸


 

마지막 작품이었던 <피에타>. 아마 수많은 방문객들이 이곳을 방문하는 궁극적인 목적이었을 조각상이었다. 아직 점심시간 즈음이었지만 이른 새벽부터 시작된 투어로 너무나 피곤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에타>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훼손된 전례로 인해 멀리 있는 유리창 너머로밖에 볼 수 없어 아쉬웠다. 비록 투명한 유리창이긴 하지만 '막'이 주는 거리감은 실로 엄청나 이전 작품들보다는 감흥이 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가 신의 입장에서 조각한 것뿐만 아니라 신의 겸손을 깨닫게 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마음에 새길 귀감이 되어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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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내가 보고 있는 것들이 인터넷에서, 책에서 봤던 그것들이라는 것이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이었던 반나절. 투어가 끝나고 진짜 현실로 돌아왔을 때 전날 이루지 못했던 잠과 느끼지 못했던 비행의 피곤함들이 투어를 하며 쌓인 피로와 모여 한꺼번에 몰려왔다. 모든 계획을 철수하고 숙소로 돌아갈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우선 당장의 피곤을 없애기 위해 '교황님'도 즐긴다는 젤라또 가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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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브릿지>의 젤라또, 로마


 

바티칸 탐방을 마치고 혼자 길에서 먹은 아이스크림. 다들 무리 지어 있는 와중에 혼자 길에서 먹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쑥스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하지만 이 달콤한 젤라또 세 스쿱으로 인해 지쳐있던 상태의 나는 감동하고 경외심을 느꼈던 바티칸의 기억을 달콤하게 남길 수 있었다.


종교가 없던 내가 종교의 영향력을 눈으로, 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던 바티칸 탐방. 비록 몇 시간 남짓한 머무름이었지만 느끼는 바는 그 시간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비종교인들도 포함되는 사항이지만) 어째서 종교인들이 더 진실하고 정직하게 행동해야 하며, 존경을 얻는 이가 되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된 날이었다.

 

 

*모든 사진은 직접 촬영하였습니다.

 

 

 

에디터 홍혜민.jpg





[홍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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