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술가의 상실, 파스칼 키냐르의 소설 세상의 모든 아침 [도서]

상실에 대한 예술가의 태도를 파스칼 키냐르의 소설에서 찾다
글 입력 2020.05.21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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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키냐르의 소설 세상의 모든 아침은 상실과 예술가가 지향하는 근원에 대해 주목하게 한다. 음악가 생트 콜롱브 씨가 아내와 큰딸을 잃은 것, 큰딸 마들렌이 사랑을 잃은 것으로 상실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소설은 상실의 깊이를 남김없이 드러내면서 근원에 대한 예술가의 성찰을 곁들여 상실과 근원, 이 두 가지의 정신적 사유의 소재들이 충돌하게 하고 사유로 인해 발생하는 감정을 극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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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트 콜롱브 씨는 비올라 드 감바를 연주하는 예술가이다. 그는 왕의 그 어떤 회유에도 응하지 않고 외로이 자신의 음악에만 매진한다. 마들렌은 생트 콜롱브 씨의 제자와 사랑에 빠진다. 생트 콜롱브 씨가 종종 아내의 환각을 볼 때나 마들렌이 사랑에 빠져 있을 때 그들은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닫힌 상태의 자아에 머물러 행복감을 만끽한다.


닫힌 자아는 외부의 그 어떤 것도 보지 못하고 자신의 자아에만 몰두한다는 점에서 생트 콜롱브 씨가 비올라 드 감바로 자신의 음악에 집중하는 순간과 비슷하지만 닫힌 자아의 상태에서는 자아가 이입한 대상이 사라지면 견딜 수 없는 슬픔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다르다.

 


“당신은 죽었는데 어떻게 여기 올 수 있는 거요? 내 나룻배는 어디 있소? 내가 당신을 볼 때 흐르는 내 눈물은 어디 있소? 이게 정녕 꿈이란 말이오? 아니면 내가 미친 거요?”


“불안해하지 말아요. 당신 나룻배는 강가에서 오래 전에 썩었어요. 저곳 세상은 당신 배처럼 그렇게 견고하지 않아요.” (파스칼 키냐르, 세상의 모든 아침, 문학과 지성사, 2013, 91~92쪽)



그리고 찾아온 상실의 시간. 생트 콜롱브 씨는 소설의 시작과 함께 아내를 떠나보낸 뒤 아내를 환각으로 볼 때 마다 상실을 경험해야 했다. 마들렌은 마렝의 거절을 감내해야 했다.


생트 콜롱브 씨는 비올라 드 감바를 연주하면서 음악의 근원을 탐구하는 방법으로 상실을 견딘다. 마들렌은 마랭을 자신의 상실에서 다시 구해내며 현실과 반대되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죽음에 다가간다.


생트 콜롱브 씨의 상실은 작품 전체에서 작용하지만 마들렌의 상실은 작품을 두 부분으로 나눈다. 결정적으로, 마들렌이 죽었을 때에서 몇 해가 지난 시점이 되어서야 마랭은 남들에게 들려주는 음악 대신 음악의 근원을 탐구할 용기를 가지고 스승을 찾아간다. 그리고 음악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에 대해 스승과 이야기 나눈다.



언어가 버린 자들이 물 마시는 곳. 아이들의 그림자. 갖바치의 망치질. 유아기 이전의 상태. 호흡 없이 있었을 때. 빛이 없었을 때. (같은 책, 120쪽)



그의 스승이 인정한 바에 따르면 음악은 이런 것들을 위한 것이었다. 상실을 위해 존재하며 상실을 달래준다기보다 상실에 직면했을 때 주변을 돌아보면 언제나 곁에 있던 것이 바로 음악적 근원이었다.


마들렌은 마랭이 떠난 후에도 마랭을 놓지 않음으로써 상실의 상태를 지속하기를 선택했다. 반면 생트 콜롱브 씨는 아내의 환각이 나타났다 사라질 때마다 경험하는 상실의 환기로 정신적 고통을 겪기를 선택했다.


생트 콜롱브 씨는 그 과정에서 음악의 근원에 대해 탐구한다. 상실에 대처하는 마들렌과 생트 콜롱브 씨의 태도의 차이에서 예술의 근원을 탐구하는 것이 예술가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알 수 있다. 한편으로는 상실과 같은 비극에서만 그것이 가능한지 의문을 발견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시 오지 않는다. (같은 책, 112쪽)



사실은 하루 하루를 상실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항상 근원적 탐구에 대한 기회가, 그것을 예술이라 부를 수 있다면 예술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루의 상실을 직면한 밤과 이제는 상실을 받아들여야 할 아침은 다시는 같은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기 떄문이다.


생트 콜롱브 씨의 아내의 환각이 절대 같은 모습으로 같은 시간에 다시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마들렌에게 마랭이 지난 시절의 태도를 취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시 오지 않지만 상실은 똑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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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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