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거의 떠나온 상태에서 떠나오기'

글 입력 2020.05.21 09:5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글을 쓸 때 가장 어려운 건 읽는 이를 짜릿하게 만드는 세련된 문장 구조나 다양한 단어, 안정적인 문법의 숙지 여부 등에 있지 않다. 글을 쓰기 어려운 이유, 글을 잘 쓰는 방법과 직결되는 문제의 본질은 사실 글을 쓰는 기술과 무관하다. 눈에 보이는 문자의 나열은 결국 그릇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 무엇을 담아내는지, 글이라는 그릇에 담기는 내용이 중요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글로 정리해야 하는 것 자체가 참 난해한 일이다. 머릿속을 모호하게 맴도는 생각의 결을 잡고, 나조차도 잘 모르는 자신의 마음과 감정에 형태와 이름을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131.jpg

 

 

그런 점에서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글은 남다른 위상을 지닌다. 르포형 에세이의 대가인 이유가 있다. 르포는 보고 기사나 기록 문학을 일컫는 르포르타주에서 유래했다.


특정 사회 현상이나 사건에 대한 단편적 보도가 아니라 보고자가 자신의 식견을 배경으로 심층 취재하고, 사이드 이슈나 에피소드를 포함해 종합적인 기사를 완성해내는 일련의 과정을 포함한다.


그런 그의 글은 늘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담는다. 그를 바로 앞에 두고 설명을 듣는 것처럼 다이내믹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하물며 현장감이 전해질만한 종류의 글이 아니라, 그저 어떤 사물과 이야기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전개하는 데에 있어서도 놀라우리만치 강인한 힘을 보인다.

 

이번에 출간된 책 <거의 떠나온 상태에서 떠나오기>는 월리스의 글이 지닌 힘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5편의 에세이로 구성된다. 일리노이주 축제를 취재한 글로 시작해 그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미친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 촬영장 탐방기, 존 업다이크의 소설과 수학 장르 소설의 서평, 그리고 그가 미국 에세이 선정작을 고를 때의 기준을 세세히 알아볼 수 있는 글까지.


사실 그의 에세이는 장황하고 난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탄탄한 사고 체계를 바탕으로 대상의 허를 찌르는 질문을 꺼내며 그에 대한 자신의 답변을 풀어나간다. 그 과정이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창의적인 사고 방식과 몰입감을 극대화하는 섬세한 표현뿐 아니라, 아마 다양한 주제를 소화할 수 있는 풍부한 지식의 양에 근거할 것이다.


월리스는 영화 잡지의 제안으로 영화 비평 이상의 현장 일지를 전개하기도 했고, 정수론을 주제로 한 소설을 자신의 지식을 토대로 깊이 파악하고 한계를 지적해 과학 잡지 <사이언스>에 글을 게재하기도 했다. 한 사람이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이토록 심도 있는 사고를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놀란다.

 


131.jpg

 


특히 자전적 이야기나 소설이 아님에도, 독자인 내 입장에서는 잘 모르는 영화인의 이야기나 읽어보지 못한 소설의 서평이더라도 술술 읽혀나가는 점이 놀랍다. 읽기를 마칠 즈음에는 모든 내용이 마치 내가 보고 느낀 것처럼 생생하게 남아있다. 다만 전적으로 그의 시선과 생각에 고개 끄덕이며 읽어나가게 되는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그의 글에는 괴팍한 설득력이 있다. 결정자의 글이라 그런 것일지. 미국 최고 에세이 선정작을 고를 때 그가 심사 기준으로 삼았다던 '성실하고 전폭적으로 스스로 '결정자'가 되려고 시도하는 작품들'에서, '결정자'는 물론 좀 더 시사적인 의미를 내포할 것 같지만, 여하간 그런 결정자적인 자세의 글이란 인상을 준다. 섬세하고 굳건한 시선을 가진 그는 글에 담은 자신의 세계 속에 독자를 침몰시킨다.

 

이렇게 집착적인 글은 오랜만이었다. 월리스는 대상을 멀리서 관조하지 않는다. 다른 글을 읽다가 그의 글을 읽으면 놀라고 만다. 거울 앞에서 멀찍이 떨어져 자신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다가, 갑자기 현미경으로 내 손가락 지문 사이사이의 산맥을 짚어나가는 기분.


그의 글은 날카로운 송곳이나 메스같다. 대상의 안을 파고들어 숨겨둔 표정을 낱낱이 읽어내고 장기 하나까지 세밀하게 파악한다. 거의 떠나온 상태에서 떠나오기. 월리스보다는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제목에 담긴 한 문장을 통해 글이 지닌 힘은 무한하며, 이미 다 왔다고 생각했지만 우리의 글에는 늘 아직 더 갈 곳이 있다 정도로 이해하기로 했다.

 





거의 떠나온 상태에서 떠나오기
- David Foster Wallace Essays -


지은이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옮긴이 : 이다희

출판사 : 바다출판사

분야
문학>에세이

규격
138*214mm

쪽 수 : 288쪽

발행일
2020년 04월 17일

정가 : 15,000원

ISBN
979-11-89932-53-4 (03840)



 
 


[신은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59074
 
 
 
 

등록번호 : 경기, 아52475   |   E-Mail : artinsight@naver.com
발행인/기사배열책임자 : 박형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형주
Copyright ⓒ 2013-2020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