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쌀국수는 3/4박자, 한정식은 6/8박자, '1인용 식탁' [공연]

글 입력 2020.05.21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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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인문극장’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과학적, 인문학적, 예술적 상상력이 만나는 자리다. <2013년부터 빅 히스토리: 빅뱅에서 빅데이터까지, 불신시대, 예외, 모험, 갈등, 이타주의자, 아파트까지 매년 다른 주제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현상에 대해 근원적 질문을 던지며 함께 고민해왔다. <두산인문극장 2020>은 ‘푸드(FOOD)’를 통해 먹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살펴보고, 먹는다는 것이 지닌 의미들을 되짚어본다. 주제와 연관된 강연 8회, 공연 3편을 선보이며 다양한 관점으로 ‘푸드’를 살펴볼 예정이다.


 

“음식문화는 시간과 공간을 아울러 인간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는 하나의 지표다.”

 

‘삼시 세끼’라는 말처럼 음식은 적어도 하루 세 번 나와 마주친다. 배꼽시계는 정확히 5시간의 간격을 두고 요란하게 울려댄다. 메뉴를 선택하고, 어떤 것에 값을 지불하느냐를 관찰하다 보면 음식이 단순히 허기를 달래거나, 활동을 위한 에너지를 채운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된다.


고기를 먹지 않는 나의 선택은 윤리적인 신념 때문이기도 하다. 특별히 이 음식을 함께 먹고 싶은 이를 떠올리는 것은 음식에 맛 이상의 무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음식을 씹고 목구멍으로 삼킬 때면 그것과 결부된 온갖 것들이 함께 흡수된다. 곧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된다.

 

 

(홍보사진)연극_1인용 식탁.jpg

 

 

‘혼밥’이라는 단어는 몇 년 전부터 등장해서 이제는 서로에게 완전히 익숙한 단어가 된 듯하다. 혼자 밥 먹는 것이 모두에게 익숙하지 않던 시절, 당사자는 부끄러워했고, 지켜보는 이들은 수군거렸다.


나 또한 그 당시에는 얼굴이 화끈거렸던 경험이 하나 있다. 당시 살던 동네에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는 유명한 덮밥 집이 있었다. 항상 친구와 방문을 했었는데, 그날따라 그 덮밥이 계속 생각이 났다. 다행히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밥을 주문해서 기다리던 중이었다. “혼자 먹으러 온 거야? 나 같으면 굶겠다.” 또렷한 목소리가 귀에 박혔다. 밥알이 어떻게 넘어가는지도 모르게 식사를 마쳤다.

 

그 즈음 ‘혼밥’이라는 단어가 뉴스에서도 자주 언급되었던 것 같다. 그 단어가 생겨난 배경은 뭔지, 혼밥을 선택하는 이유가 뭔지, 각종 인터뷰와 사례를 담은 다큐멘터리도 나왔다. 그만큼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었던 듯하다. 그리고 다시 2020년, <두산인문극장 2020>의 첫 번째 연극, <1인용 식탁>은 ‘혼밥’을 이야기한다.

 

 

(홍보사진)연극_1인용 식탁_의기소침한 1인 식탁.jpg



시놉시스


직장생활 9개월 차, 갓 신입사원 딱지를 뗀 인용은 회사에서 이유 없이 따돌림을 당한다.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어서 나름 노력을 하지만 아무도 인용과 밥을 먹으려 하지 않는다. 의기소침해진 채 매일 꾸역꾸역 혼자 밥을 먹던 인용은 결국 ‘혼자 밥 먹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는 학원에 등록하기에 이른다.


짜장면, 파스타, 한정식까지는 혼자 먹겠는데… 고깃집에서 고기를 혼자 구워 먹기는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런 인용 앞에 혼자 먹기의 달인이 나타난다.


 

혼자 밥 먹는 방법을 알려주고, 혼자 밥 먹는 스킬을 연마하는 학원이라니. 그저 재밌다고 생각하면서도, 단지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나올 법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번득 든다. ‘혼자 밥을 먹고 싶은데 주변 시선이 고민이다’, ‘이 식당은 혼자 밥 먹기 적당한 곳인가요?’ 등의 질문은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꽤 자주 접했던 것 같다.


사실은 내가 지금도 여전히 검색해보곤 하는 것들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보아도 혼밥을 다루는 학원은 없었지만, 혹시 모르지. 어딘가에서는 소규모 과외 형식으로 혼밥 수업이 진행되고 있을지 모른다.

 

‘인용’이 학원 전단지를 받고 곧바로 등록을 결심한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매일 먹는 편의점 김밥이나 간단한 샌드위치는 지친다. 요리를 해 먹는 게 가장 좋겠지만, 밖에서 해결을 해야 하는 때도 있는 법이다. 그렇다면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눈치 보이지 않는 메뉴가 아니라, 눈치 보지 않는 내가 되겠다!


학원을 등록하는 첫날, 수강생 중 절반이 수료를 하지 못하고, 그중 다시 절반은 재등록을 결심한다고 했다. 그게 가장 ‘보편적’이라고 했다. 누구보다 보편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 '인용'이다. 학원을 수료하고 나면 자신도 보편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홍보사진)연극_1인용 식탁_배우 단체.jpg

 

 

학원에서는 ‘리듬’을 강조한다. 쌀국수는 3/4박자, 한정식은 6/8박자… 강-약-약-중강-약-약, 메뉴들은 각자의 리듬으로 나아간다. 중간에 시선을 쏴주는 것도 잊지 않고. 연극 <1인용 식탁>은 식탁 위의 리듬과 함께 흐르는 음악 위에 관객을 태운다. 메트로놈 음향과 함께 무대를 빙글빙글 도는 배우들을 따라 내 시선도 박자를 탄다. 즐거운 연극이다. 학원 수업이 진행될수록 리듬을 놓칠세라 마음속으로 계속 되뇐다. 메트로놈 음향이 이어질수록 내 마음은 ‘인용’의 리듬을 응원한다.

 

“힘을 빼라. 고개를 돌리지 말고 똑바로 정면을 보라. 나의 리듬으로 상대방의 리듬을 끌어오라.”

 

<1인용 식탁>에서 ‘리듬’과 동시에 중요한 장치로 작용하는 것은 ‘복싱’이다. ‘인용’이 밥을 먹는 것은 한 편의 복싱 경기와도 같다. 마치 사각 링처럼 꾸며진 무대 위에서 ‘인용’은 매 순간 자신의 리듬으로 한 방을 날리고, 다시 물러났다가, 이리저리 박자를 타며 링 위에서 움직인다. 박자를 타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모습은 위태롭다. 금방이라도 상대의 박자에 휩쓸리며 쓰러질 게 뻔하다. 그에 반해 ‘인용’ 앞에 나타난 혼자 먹기의 달인은 다르다. 꼿꼿하고 단단한 자세는 누구에게도 휩쓸리지 않는다.

 

 

(홍보사진)연극_1인용 식탁_화기애애한 다인 식탁.jpg



<1인용 식탁>은 윤고은의 동명 단편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2010년 원작 발표 당시 생소했던 ‘혼밥’을 가르쳐 주는 학원이라는 기발한 소재로 주목을 받았다. 원작이 발표된 지 10년이 지난 2020년 현재 ‘혼밥’은 평범한 식문화로 자리 잡고 있으나 무리와 떨어져 홀로 하는 식사를 유별나게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따라 다닌다. <1인용 식탁>은 혼자하는 식사와 함께하는 식사가 동등한 식탁으로 공존할 수 있을지 묻는다. 한 식탁에서 여럿이 함께 하는 것만이 아니라 수 없이 많은 한 사람의 식탁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공존이 아닌지 질문한다.


 

그런데 학원을 이미 수료한 혼자 먹기 달인은 학원을 재등록했다고 했다. 사람들이 학원을 재등록하는 이유는 수료증을 따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학원 속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 보편에 속한다는 위안, 그리고 힘이 되었다. 내가 ‘혼밥’에 대한 부담감을 떨치고자 선택했던 여러 방법들에서, 나는 타인의 시선을 완전히 흘려보내는 법을 알아내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혼자가 아니라는 작은 위안을 얻곤 했다.

 

수료에 실패한 ‘인용’은 비로소 자신의 박자를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서서히 자신의 박자를 느끼고, 그 흐름대로 잽을 던지고, 자신의 속도로 밥을 먹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인용’을 따라 내 박자를 느끼기 시작했다. 박자를 온전히 느낄 때, 타인의 시선은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인용’은 천천히 꼭꼭 씹어 맛을 넘겼다. 자신의 박자대로.


서로 1인용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마지막 장면은 느슨한 연대를 느끼게 한다. 각자의 리듬으로 흘러가는 식탁은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떨어진 거리만큼 우리는 서로에게 위안과 힘이 된다. 1인용 식탁 속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단단한 잽을 던지는 중이다.

 

 

(포스터)연극_1인용 식탁.jpg





[장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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