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파도는 나를 다그칠 거 같다 - 파도를 걷는 소년

글 입력 2020.05.20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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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는 삶이 버겁다.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동시에 피곤하다. 중국인 엄마는 추방당했다. 출소했다고 반겨주는 이는 한 명뿐이다.


그는 거처와 일자리를 마련해준다는 구실로 불법체류자를 착취하는 일에 종사한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명함을 돌리며 친절하게 굴다가 돈이 궁하면 헐값에 다른 나라로 넘긴다. 수 역시 그들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처지임에도 그렇다. 약자가 약자를 약탈하는 구조임을 자각하지 못한다. 그런 걸 인식하기엔 어깨에 짓눌린 삶이 너무 무겁다. 사는 게 우선이다. 삶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낄 겨를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돈을 모아 추방당한 엄마에게 가야한다.


그래서 수는 잔뜩 날이 서 있다. 호의나 걱정, 친밀감의 발로를 모두 다 시비 거는 일로 해석한다. 자신을 신고한 이를 때리거나 전단지를 돌리는 이에게 반말하지 말라고 쏘아붙이거나 장비 없이 파도를 타는 건 위험하다는 말에 어쩌라는 거냐고 반문한다.


영화는 수가 바다를 활보하는 과정에 이르기 까지 천천히 조망한다. 수는 출소하자마자 바다를 보고, 서퍼들이 파도를 타는 모습에 마음이 뺏겨 부서진 보드를 수리해 어영부영 따라해 본다. 넘어지고 계속 넘어지는데, 그래도 파도를 타기 위해 혈안이다. 수가 바다에 마음을 뺏긴 이유는 뭘까.


바다는 양수를 상징한다고 하여 종종 엄마를 은유하는 이미지로 소환된다. 그러나 수가 바다를 거닐고 싶어 하는 마음을 엄마를 그리워하는 심정으로 해석하는 건 아귀가 맞지 않다. 수는 바다 자체에 매혹된 것처럼 보인다.


정착하지 않고 끊임없이 어딘가로 이동하고 흐르는 모양. 그럼 서핑에 빠지는 이유도 바다를 정복하고 싶다거나 엄마에게 가기 위해서가 아니다. 어차피 흐르는 삶 밖에 살 수 없다면 좀 더 잘 흐르고 싶어서일 테다. 파도와 격랑을 동반해도 바다는 아름다운데 그런 바다를 활보할 수 있다면 어디든 고이지 못하는 내 삶도 바다처럼 아름다워질 거라는 마음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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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는 서퍼들과 서핑을 배우며 소속감을 느낀다. 어딘가에 고여서 정착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국인도 중국인도 될 수 없는 우리 같은 처지의 인간들끼리 뭉쳐야 한다는 갑보는 바깥에서 사장이라고 부르라며 위계를 긋는다. 똥꼬는 다르다. 꾸역꾸역 사장님이라고 부르며 경계 짓는 수에게 똥꼬는 별 거리낌 없이 서핑을 알려주고, 형이라 부르라며 동등한 관계를 맺으려 시도한다.


갑보는 우리만이 가족 같은 관계가 될 수 있다는 식으로 남과 우리를 구별한다. ‘우리’가 이 곳에서 다를 수밖에 없음을 지속적으로 환기한다. 수가 타인에게 날이 서 있는 건 그래서 일지도 모른다. 해나 역시 수와 비슷한 처지임을 고백하며 수에게 다가가지만 ‘우리’를 긋는 테두리가 구태여 작을 필요 없음을 알려준다. 어차피 누군가와 부대끼고 뒤섞이는 게 삶인데 잔뜩 날이 서서 ‘우리’를 한정할 건 없다. 해나는 ‘우리’의 의미를 되짚어준다.

 

그럼에도 삶은 때때로 수를 짓눌러서 그렇게 배우고 감각한 것들을 지우려 한다. 똥꼬와 해나는 수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그를 다그친다. 수는 도리어 역정을 낸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 살기 위해선 이런 짓까지 해야 한다. 수의 역정은 자신에게 하는 변명 같다. 동시에 자기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비로소 자각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각은 부끄러움과 성찰로 이어진다. 똥꼬에게 역정을 냈던 수는 다시 그에게 찾아가 말한다. 한번만 더 파도를 타게 해주세요. 그건 용서해달라는 말이다. 흘러가는 삶, 이동할 수밖에 없는 삶이라는 게 자기 행동을 정당화해주지 않는다.


바다의 파도가 신분이나 지위를 가리지 않고 모두 균등히 실어나르는 것처럼, 삶의 파도 역시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내 삶이 이 모양이라서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건 치졸한 합리화다. 파도는 나를 다그칠 거 같다. 물에 빠트리고 숨을 못 쉬게 할 것 같다. 그러나 이내 헤엄치는 법을 알려 줄 거 같다. 그럼 내 행동이 용서될 것 같다. 수는 파도를 타며 자기 잘못을 뉘우친다.


영화는 행간이 생략돼 있다. 맥락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느리게 흘러가는 삶 같다. 영화를 보고 바다를 보고싶다고 느꼈다. 파도를 타고 싶다고 느꼈다.


 


 


파도를 걷는 소년
- The Boy From Nowhere -


각본/감독 : 최창환
 

출연

곽민규, 김현목

김해나, 강길우, 민동호

 

장르 : 드라마

개봉
2020년 05월 14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 9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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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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