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토마스 베른하르트 - 모자 [도서]

글 입력 2020.05.21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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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가가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이다.

 

 

 

토마스 베른하르트


 

토마스 베른하르트(1931~1989)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1957년 첫 시집을 발표했다. 초기 산문에서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따뜻함을 표현했지만 그 후로는 질병, 혼란, 고독, 파멸, 죽음, 정신착란 등을 주제로 소설, 시, 희곡 등 여러 분야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하였다.


주로 의식의 흐름을 따르는 소설을 쓰며 자신을 ‘전형적인 이야기 파괴자’로 지칭했다.주요 작품으로는 소설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혼란』, 희곡『사냥 클럽』, 시집『지상에서, 그리고 지옥에서』 등이 있다.

 

 

 

모자


 

 

모든 사람이 몰두하는 것은

달리 무엇이라 부를 수 없는 삶,

존재,

실존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오로지 떠나는 것,

사라지는 것,

 벗어나는 것뿐이다.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단편 모음집인 『모자』는 단편의 모음이라기보다 거대한 이야기 덩어리 같다.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소설에서는 대부분 인물의 서사를 찾기 힘들다. 산문의 언덕 너머로 이야기가 끼어들면 곧바로 쏘아 죽인다고 말하며 서사를 철저히 죽인다. 그저 대부분 자살하거나 살인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결국 죽음에 이를 뿐이다.


인물이 죽기 직전의 과정을 목격하면서 우리는 혼란스럽게 된다. 누군가에게 말을 걸듯 무덤덤한 문장이 사실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라니. 읽다 보면 마치 나 또한 그의 죽음과 함께 달려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한다. 그의 작품에 담긴 절망은 마치 폭력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고통 속에서 다시 문학이 피어나며 우리는 그의 작품에 빠져들게 된다.

 

단편 소설 「모자」는 그의 작품 전체를 아우른다. 두통과 정신착란 속에서 인물의 독백은 납득하기 힘들다. 극도의 어둠과 공포에서 인물의 행적이 과연 실제인지 의심하게 된다.


인물은 어느 날 길에서 모자를 줍는다. 주인을 찾기 위해 모든 집에 문을 두드리고 다른 곳에도 찾아가지만, 인물이 마주하는 모든 사람이 이미 똑같은 모자를 쓰고 있다. 모두가 똑같은 모자를 쓰고 있다니. 분명 인물은 미치광이가 되었음이 틀림없다.


여기서 모자의 역할은 무엇일까. 베른하르트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모자나 옷은 정체성이나 역할의 비유로 종종 해석된다. 소설에서 모자의 역할의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우리는 인물의 불안정한 독백에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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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사관 문정관」에서도 베른하르트의 작품 세계를 뚜렷하게 볼 수 있다. 베른하르트의 작품에서 “숲”은 혼란의 상징이다. 인물은 숲에서 길을 잃거나, 나무에 걸려 넘어지거나 나무에 목을 맨다.


프랑스 대사관 문정관에서도 숲에서 인물이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죽음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소설에서 모든 정보는 모호하다. 그의 이름도 알 수 없고 그와 삼촌이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도 서술되어 있지 않다. 이름도, 나이도, 죽음의 원인도 없이 어둠과 암흑, 죽음만이 남아 작품을 나타낼 뿐이다.


「야우레크」에서는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주인공의 외삼촌은 야우레크의 주인이다. 외삼촌은 그의 채석장 사무실에서 일하라고 제안했다. 주인공은 채석장에 와서야 채석장이보다 도시의 상황이 덜 답답하다고 생각한다.


폐쇄된 마을에서는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 수 없다. 어떤 사람들과 접촉할 수도 없다. 주인공은 야우레크에 지낸 3년 동안 외삼촌을 만날 수 없었다. 그저 서술을 통해 외삼촌이 주인공의 어머니와 근친상간을 했다고 독자는 추측할 뿐이다. 근칭상간은 베른하르트의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다. 베른하르트는 금기시되는 관계를 통해 인간의 죄의식을 고민하게 한다.


베른하르트의 소설은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다. 죽음, 어둠, 공포가 응축된 덩어리가 여러 개의 작품으로 나누어 덩어리를 설명한다. 그의 소설에서는 희망이 없다. 어둠에서 극복할 용기도 구원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죽음을 목격하고 공포를 나열하고 정신을 혼란스럽게 한다.

그의 단편소설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에서는 삶을 연극으로 비교하면서, 소설에서는 삶이 희극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을 목격하는 우리는 과연 희극인지 의문이 든다.

베른하르트의 작품 속 혼란, 고독, 살인, 어둠, 광기를 읽으면서 더욱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한 비평가의 말대로, 베른하르트의 세계를 한번 접하고 나면 우리는 그에게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그저 그의 세계에 몸을 담그며 인물의 파멸의 목격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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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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