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초현실이 되찾아준 일상 -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 [전시]

글 입력 2020.05.19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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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외출을 꺼리게 되면서 깨달은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내가 생각보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좋아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집순이’임에도 간간이 했던 영화 관람, 전시회 관람 등이 나의 삶에서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가 전 세계로 퍼지기 직전, 꽤 오래 미국 여행을 하며 여러 미술관을 방문해서 향후 1년간은 전시회에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정도였지만, 휴학으로 무료한 일상을 문화생활 없이 보내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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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진자가 줄어들고, 각종 문화 행사들이 방역 지침을 지키며 재개되는 요즘, 용기를 내서 인사센트럴뮤지엄에서 열리는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에 다녀왔다. 미술관 입구에서는 한 번에 방문하는 관람객 수를 제한하고 있었고, 비접촉 체온계로 관람객의 발열 여부를 검사한 뒤 입장할 수 있게 했다.


문화계뿐만 아니라 많은 행사가 취소되고 있는 요즘, 안전하게 즐길 거리를 찾는 이들에게 좋은 선택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장할 때까지만 해도 기다리는 관람객이 많지 않았는데, 조금 늦은 오후가 되니 마스크를 쓴 관람객이 길게 줄지어 기다리고 있을 정도로 상당히 인기가 많아 보였다.




압축적이지만 섬세하게 담아낸 마그리트의 생애와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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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입장하자마자부터 볼 수 있는, 마그리트의 생애와 그에 대응되는 그의 작품 경향의 변화, 중간중간 관람객이 마그리트의 그림 속 주인공이 되어 볼 수 있게 하는 증강현실 및 멀티미디어 체험, 그리고 마그리트의 그림을 넓은 공간에 빔으로 구현한 메인 영상 룸과 미러 룸이 그것이다. 각각의 요소들은 르네 마그리트의 철학과 작품세계를 관람객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통일성 있게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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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르네 마그리트에 관한 영화다. 이 영화는 그가 어떻게 그리는지보다는 무엇을 그리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철학자에 가까운 화가였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추상적인 표현을 하기도 했던 다른 초현실주의 작가 호안 미로, 이브 탕기와 달리, 현실의 사물을 새로운 맥락에 배치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어낸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사물이나 상황을 한 데 모아놓기도 하고, 일상적 사물을 크기만 달리 하여 배치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그만의 신비로운 화풍을 구축한다.

또한, 하나의 대상이 다른 대상으로 변하는 순간을 포착하거나, 새와 알, 낮과 밤처럼 서로 연관성이 있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못하는 것을 한 번에 표현하는 것도 그의 작품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아이디어다. 같은 사물을 바라보더라도 사람들은 그것에서 다른 의미를 떠올릴 수 있고, 사물과 그것을 가리키는 상징은 자의적으로 짝이 맞춰진 것에 불과하다는 그의 철학적 통찰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그는 흔한 사유의 틀을 깨고, 익숙한 것에 질문을 던지고 의심하는 그야말로 철학자였다.


르네 마그리트는 자신의 그림을 프로이트의 이론이나 다른 무의식에 관한 이론으로 해석되는 것을 거부했다고 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중산모, 새, 알, 하늘 등 그의 그림에서 반복되는 상징은 앞서 말한 그의 사유를 표현하는 데 좋은 대상이었을 뿐, 그 자체로 다른 의미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가 양복 재단사인 아버지와 모자상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어머니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은 분명 그가 이용한 상징과 소재에 영향을 미쳤다.


비록 원화전이 아니라 원작을 볼 수는 없었지만, 비슷한 시기의 작품을 모아 전시한 화면은 그림 실루엣이 잔상으로 남았다 사라지는 방식의 슬라이드 쇼로 표현되었다. 사소한 부분이었지만 그가 사용한 변형 기법을 영상으로 구현한 것 같아 섬세하다고 느꼈다. 르네 마그리트가 생전에 그림도 소설처럼 복제본도 원본과 같은 의미와 가치를 담고 있다고 밝힌 것처럼, 새로운 방식으로 제시한 그의 회화도 충분히 매력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내가 몰랐던 르네 마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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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는 우리에게 초현실주의의 대가로 잘 알려졌지만, 초기에는 입체파와 다다이즘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고, 밝은 색채가 돋보이는 인상파의 영향을 받은 작품도 다수 있고, 전혀 마그리트의 작품처럼 보이지 않을 정도로 유머러스한 분위기의 그림을 그린 ‘바슈시대’를 거치기도 했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그림뿐만 아니라 이렇게 그의 삶의 궤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도 알 수 있게 되어 꽤 흥미로웠다.


르네 마그리트가 영화에 깊은 관심이 있었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다. 전시의 마지막 부분에는 그가 직접 찍은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그의 주변 인물을 찍은 짧은 영화였지만, 그가 붓을 다루듯 카메라 또한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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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보적인 그의 스타일을 보면 주변 시류에 휘말리거나 타인과 협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 물론 파리에서 만난 초현실주의 그룹과는 다른 길을 걸었지만, 그가 애초에 추상회화의 방식에서 벗어나 사물을 현실적으로 묘사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다른 작가의 작품 때문이었다.


전시에서 여러 차례 언급되는 조르주 데 키리코의 <사랑의 노래> 라는 작품은 르네 마그리트의 <개인의 가치>라는 작품을 연상하게 한다. 그 외에도 비슷한 시기에 르네 마그리트와 함께 활동했던 예술가들의 작품이 전시 마지막 부분에 정리되어 있었다. 정확히 그들이 르네 마그리트와 어떤 관계였는지가 자세히 설명되어있지 않다는 점은 조금 아쉬웠다.




전시회에서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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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시회를 좋아하는 이유는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고, 친해지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직접 만나볼 수는 없지만, 예술가가 남긴 작품과 전시회 큐레이터의 설명을 통해 궁극적으로 그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나 이렇게 한 예술가의 생애를 따라가는 식으로 구성된 전시회는 시대에 따라, 사적으로 겪은 사건에 따라 달라지는 화풍을 보는 것이 언제 봐도 신기하고 재밌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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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언제 어디에서든 화가의 그림을 볼 수 있는 지금, 회화를 영상으로 변형해 관람자의 경험을 시청각의 차원으로 확장하는 것은 미술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메인 영상 룸과 미러 룸이었다.


흰색의 넓은 공간에 빔으로 비치는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과 공간을 가득 메우는 클래식 음악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말 그대로 그의 작품에 흠뻑 빠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한동안 집에서만 해야 했던 독서나 영화 감상 등의 문화 체험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황홀하고 색다른 체험이었다.

르네 마그리트가 단색의 빛을 비추면 색이 의미가 없어진다고 했던 말에서 착안하여 만들어진 모노크로매틱 라이트 전시물도 인상적이었다. 강하게 비추는 노란 빛은 눈에 보이는 사물을 모두 노란색으로 보이게 했다.


낮과 밤이 한 공간에 존재하는 ‘빛의 제국’이라는 연작 시리즈를 기획하기도 했고, 명암이 선명한 그림을 많이 그린 그에게 빛은 철학적, 예술적 연구 대상이었다. ‘빛이 사물을 볼 수 있게도 하지만, 사물이 있어야 빛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으므로 빛도 사물에 의존하는 셈이다.’라는 그의 발상의 전환도 기억에 남는다.


모두가 어려운 시기지만, 특히나 관객을 필요로 하는 예술계는 정말 어려운 시기다. 유럽 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는, 이 초현실적인 전시가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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