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너 시집가면 주려고 했지" [도서]

피리부는여자들-1
글 입력 2020.05.29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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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는

총 세 편의 글로 구성되었습니다.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더래요- 라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피리 부는 여자들을 따라가면 어떻게 될까? 나는 그곳에 가보고 싶다. 여자들이 만들어갈 광활한, 거울 없는 우주에서 어푸어푸 맘껏 유영하고 싶다. 여자들의 세상으로 이끄는 피리 소리 같은 책이 이 험난한 세상에 나왔다. “피리 부는 여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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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 부는 여자들 (이하 피리부)”는 여성 간의 생활, 섹슈얼리티 그리고 친밀성을 다룬다. “여자의 적은 여자”를 주창하며 여성 간의 연대를 편히 볼 수 없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자들의 모임은 무언가(아마도 남성이) 결핍된 것으로 여기는 이성애 과몰입 사회에서 이 책은 그야말로 신세계다.


그러나 터무니없지 않다. 그 신세계는 각자의 삶 어느 부분엔가 존재했던 세상이다. 나는 언제나 그 세계를 갈망하고 있었다. 피리 소리를 따르는 긴 행렬이 보인다. 언제부터 이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참으로 감미로운 소리다.

 


 

소리가 나는 곳을 따라 (권사랑)


 

“너 시집가면 주려고 했지.”

 

저자가 이사를 준비하며 엄마에게 네 번이나 들은 말이다. 저자 권사랑은 친구와 함께 투룸에서 살게 된다. 그가 휘슬러 냄비 세트를 달라고 하자 그의 엄마는 ‘시집가면 주려고 했다’라고 말한다. 결혼은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고 친구랑 행복하게 잘 살 거라는 그의 말에도 결혼 안 하니까 못 준다는 엄마와의 열띤 대화 끝에 냄비를 쟁취해낸다.

   


대학에서는 성희롱 단톡방을, 화장실에서는 불법 촬영을, 남성과의 관계에서는 데이트 폭력을 경험한 여성들에게 ‘노후가 불안하니 결혼은 해야지’리는 말은 황당하기 그지없다. (...) 내가 행복한 삶을 바라, 엄마? 언젠가 괜찮은 남자를 만날 수도 있다는 말을 하는 것보다 지금 함께 지내는 친구들과 잘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게 더 빠를 것 같아.  (p.23)


 

나도 기억난다. 전공 수업 중 교수님이 여자는 결혼하지 않으면 돈을 못 모은다고 하시던 말씀이. 그럼 여성이 왜 남성 체제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돈을 벌지 못하는지 그 구조를 파악해서 고쳐야 하지 않나? 사회는 왜 그러지 않고 그 해결책을 ‘결혼’으로 제시하는 걸까? 우리에겐 더 다양한 청사진이 필요하다. 결혼하지 않고 잘 모여 사는 여자들. 위험하지도 외롭지도 않은, 행복한 비(반)혼 여자들이 보고 싶다. 그리고 권사랑의 말들은 나에게 그런 세상으로 가는 약도를 보여준다.

 

그는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들과 함께 식사하고, 서로의 안위를 보살피며 커뮤니티를 확장해나간다. 함께 이삿짐을 나르고 짜장면을 시켜 먹고, 반찬 통은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애정이 담뿍 담긴 찬을 담고 전해진다. 모여 살기 시작한 후로 그들은 덜 외롭고 덜 우울한, 더욱 풍족한 삶을 살게 되었다고 말한다. 끈끈한 비혼 공동체는 자연스레 이들이 열정과 야망을 품고 살아갈 힘을 준다.

 


“지금까지는 결혼을 해야만 가족처럼 살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더 다양한 형태의 식구들이 생길 거고 저는 기존의 혈연가족 관계 밖에 있는 사람들도 잘 살아나갈 수 있도록 요구하면서 살 거예요.“ (p.49)



권사랑의 다짐은 빈말이 아니다. 그가 속한 페미니스트 문화기획자 그룹 보슈(BOSHU) 팀은 2019년부터 대전청년정책네트워크(대청넷) 안에서 젠더 팀을 꾸려 2020년에도 활동할 예정이라고 한다. 젠더 팀은 2019년 주택 보증금 공동 대출 정책을 제안했다.

 

결혼하지 않겠다 선언한 여성들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오길 간절히 바라본다. 사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아닌, 무언가 결여된 사람들이 아닌 온전한, 권리를 지닌 '개인'으로 인정받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그 세상 속에서 여자들은 누군가의 대상도 소유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서의 삶을 개척해나갈 것이다.


자립하는 여자들은 자신의 강함을 알고 있는 존재들이다. 약하고 종속된 존재이기를 요구받는 삶에서 도망쳐 여자 둘이 사는 투룸을 구하는 존재들이다. 나도 피리 부는 소리를 따라 도착한 곳에 깨끗하고 독립된, 안전하고 조용한, 다정하고 소란스러운 나와 우리의 방이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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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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