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상실의 바다에서 돛을 펴다 - 어드리프트 [도서]

나를 구할 수 있는 것은 나뿐이었어.
글 입력 2020.05.18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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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벙거리는 성격이 아니어도 종종 급한 마음에 서두르다가 몸을 다치곤 한다. 큰 상처는 아니고, 문턱에 발가락을 부딪친다거나 어디에 머리를 박는다거나. 큰 고통을 동반하는 질병이 아닌 이상 일상에서 발생하는 물리적 아픔은 단순하게 해결할 수 있다. 책에 베인 손가락을 감싸고, 문턱에 부딪힌 발가락을 부여잡고, 살살 아파져 오는 배를 어루만지는 식으로. 잠시 멈추어 그 부위를 소중히 다루며 약간의 시간을 보내면 금세 나아진다. 그런데 고통은 조금 다르다. 무거운 성질을 지닌 고통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크기를 감당하기가 버겁다. 무게가 너무 커지면 짊어지고 있는 사람을 짓눌러 버리기도 한다.


강도의 차이가 있긴 해도 아픔과 고통의 본질은 같다. 육체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괴로운 상태. 대다수는 전자보다 후자를 경험한 적이 많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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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교리에는 '인드라망'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는 아주 크고 넓은 그물을 말하는데, 그물의 이음새마다 구슬이 달렸다. 그물을 이루는 수많은 구슬은 서로를 비추어주며 반짝반짝 빛난다. 구슬 하나가 빛나는 것은 주위의 여러 구슬이 그 구슬을 반사하기 때문이다. 서로 영향을 받으며 각자가 빛난다. 모든 면이 반짝이는 보석처럼. 그물에 우리가 사는 세상을, 구슬에 사람을 대치해 보면 그 의미가 더 와 닿을 것이다.


사람은 서로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 인간은 이러한 숙명을 안고 사는 존재이기에 인간 세상은 이해의 충돌, 상황의 복잡함, 오해와 진실 등이 촘촘하게 얽혔다. 우리는 서로가 연결되어 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나눈다. 기쁨, 즐거움, 환희, 열망, 행복, 만족, 유쾌함, 편안함, 안도, 따스함처럼 들뜨기도 고통, 슬픔, 괴로움, 좌절, 절망, 분노, 미련, 실망처럼 축 처지기도 하며.


두 갈래로 나누었다고 해서 칼로 무 자르듯 완벽하게 분리되지 않는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 나온 핵심 기억처럼 슬픔이 시간이 지나면서 기쁨으로 물들기도 한다. 대체로 그렇다. 우리는 어려운 감정과 상황을 이겨내기에 삶을 이어갈 수 있다.


책은 한 여성이 생존을 위해 이겨내야 했던 41일간의 여정을 들려준다. 주인공이자 저자인 태미는 지독한 상실을 겪었다. 망망대해에서 허리케인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고통, 슬픔, 분노, 억울함. 혼자 남겨졌다는 외로움, 불안, 좌절감. 감정은 생각만큼이나 다루기 힘들다. 이것을 어떻게 살고자 하는 의지로 전환하였는지 태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

 

허리케인 레이몬드 때문에 거의 반파된 배 '하자나', 그리고 온갖 사물이 어지러이 널브러진 곳에서 피투성이인 몸을 일으킨 태미. 그때 태미는 누가 봐도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였다. 리처드 생각에 오열하다가 자신이 만든 실수를 자책하며 라이풀을 꺼내 든다. 물론 엉망인 배를 끌고 몇천 킬로를 달려야 하는 태미의 처지에선 실수 하나도 절망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기다렸다는 듯 총을 집어 들 일은 아니었다. 그 일을 겪기 전 태미였다면. 이렇게 패닉에 빠진 태미를 살린 것은 다름 아닌 '목소리'였다.

 


목소리가 두려울 때도 있었지만 위안이 되기도 했다. 내가 무엇을 할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항상 알고 있었다. 사실 목소리는 단 한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엄마 목소리 같기도 했고, 아빠 같기도 했고, 리처드가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내 목소리와 비슷했다.


p.102


 

대다수가 힘이 들 때 타인에게 솔직한 속사정을 털어놓곤 한다. 다른 관점, 다독이는 말과 따스한 위로에 잠시 기분이 나아짐을 느끼지만, 결국 순간이다. 그렇다고 한들 기분이 처질 때마다 타인에게 매달릴 수도 없는 일. 혼자가 불안한 사람은 자신이 의지할, 타인이 아닌 무언가를 찾기 시작한다. 유튜브, 책, 영화, 그림, 글, 예능 등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이 선택지를 맴돌아도 나아지지 않는다고 느끼면,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다. 눈을 뜨고 감는 순간까지 늘 나와 함께 있는 나 자신에게로.


극에 달한 감정에 어쩔 줄 몰라 하던 태미와 달리 목소리는 아주 침착하게 할 일을 일러주었다. 상처를 치료하고, 물을 마시고, 부지런히 움직이라고. 이 목소리는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적어도 신의 부름이나 소설적 장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태미에게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고, 쓴소리도 하고, 간간이 농담도 해준 목소리도 다름 아닌 태미였다.


태미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생존을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은 답이 없고, 어딜 둘러봐도 자신을 도와줄 존재가 없고, 끝이라고 느끼는 순간임에도. 아니, 오히려 죽음이 도사리고 있음을 느끼기에 현재에 집중하여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었다.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과 죽음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세상에 던져진 존재로서 개인의 의지나 의도 하나 없이 탄생했다. 그러면서도 생각할 수 있는 존재이기에 죽음을 무서워하고 불안에 떤다. 그런데 죽음을 두려움 때문에 외면할 게 아니라 직면해야 한다. 자신이 죽음으로 향하는 존재임을 인지한 후에야 세상에 던져진 인간에서 의미와 의지를 갖는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다.

 


네 자신을 믿어, 태미. 목소리를 믿어. 지금껏 잘 버텼잖아. 너를 구해줄 무언가를 기다릴 필요 없어. 믿음을 갖고, 목소리를 신뢰하고, 네가 살아남은 이유가 있다는 걸 믿어.


p.245


 

그러니 현실을 회피하려고 하는, 후회와 미련으로 점철된 자신에게 말해주어야 한다. 자책하지 말라고. 그건 네 잘못이 아니라고. 그때의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너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선택했을 뿐이라고. 지금은 그때의 내가 후회스러울 수 있지만, 더 미래의 너는 그 후회를 떨쳐낼 수 있다고.

 


“나를 구할 수 있는 것은 나뿐이었어.”


p.245


 

살면서 무수히 겪어온 괴로운 기억, 그 구렁텅이에서 나를 끌어올린 건 다름 아닌 나였다. 태미의 말대로 나를 구할 수 있는 것은, 나를 구할 사람은 나뿐이다.

 

*

 

이제 거대한 질문 하나가 남았다. 나는 살아있다. 살아있다면,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는가. 그러니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최근에 내가 내 몸 하나 건사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인지 돈을 어떻게 벌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그런데 돈이 목표인 삶은 한계가 느껴졌다. 집이 있고, 차가 있고, 넉넉한 돈이 있는 것을 목표라고 치자. 그런데 자가와 자차가 없더라도 적당히 먹고살 수 있으면 괜찮다고 느낄 것이다. 구체적인 목표가 달성되기도 전에 이만하면 되었다고 놓을 것은 적절한 목표가 아니다.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는 물질과는 다른 차원의 질문인 셈이다. 다시 물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태미는 기록을 했다. 자신과 리처드가 만든 추억, 생존, 상실, 죽음, 극복,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태미가 직접 자신의 아픈 이야기를 적은 것은 현실에 집중할 준비가 되었다는 증표 같았다. 추억은 곧 망각의 시작이다. 태미에게 과거의 일이 되었기에 리처드를 자신의 추억함에 넣어 기릴 수 있지 않았을까. 태미는 바쁘게 할 일을 찾아다니며 시간을 보내고, 고통을 이겨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렸다.


나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을까. 머릿속에서 계속 '영향력'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나는 영향력을 나누고 싶다. 내가 가진 미약한 것들을 잘 다듬어 외부에 흩뿌리고, 외부의 영향을 도로 받아 나의 방식으로 바꾸는 삶을 바란다.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삶, 시도하기도 전에 포기하지 않는 삶, 내 생각을 두려워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삶. 나열한 삶의 모습도 '어떻게 살 것인가?'의 답과 거리가 먼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한 단어가 나의 중심에 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풀어갈지는 앞으로 살면서 계속 찾아갈 것이다. 나와 나의 목소리에 믿음을 가지며.

 

 


 

 

어드리프트


41일간의 표류,

태평양 한가운데서 살아남은

강인한 여성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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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태미 올드햄 애쉬크래프트

 

옮긴이

신솔잎

 

분야

에세이 > 외국 에세이 

 

발행일

2020년 5월 1일

 

판형

140*200

 

면수

312쪽

 

14,500원

 

 


 

 

저자 소개

지은이 태미 올드햄 애쉬크래프트


바다 위에서의 삶을 사랑하고, 사랑의 힘을 믿는 사람이다. 1983년 10월 12일, 스물세 살의 나이로 연인과 '하자나'라는 이름의 요트를 타고 타히티에서 샌디에이고로 향하던 중 허리케인을 만나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조난당했다. 통조림으로 버티며 네비게이션 시스템 없이 약 2,400킬로미터를 직접 배를 몰았다. 41일째 되던 11월 22일 하와이 힐로에서 구조되었다. 살아 돌아온 그의 이야기는 미국 전역에 크게 소개되었다. 이후 그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100톤 범선 항해사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강연을 다니며 그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디즈니 <모아나> 시나리오팀이 '바다 위에서 펼쳐지는 로맨스' 이야기를 찾던 중 작가의 이야기를 발견한다. 디즈니의 긴 설득 끝에, 2018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어드리프트: 우리가 사랑한 바다>가 개봉되어 많은 이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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