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짭짤한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성장하는 - 파도를 걷는 소년

서핑 영화라고는 하지만 성장 영화에 더 가깝고, 시원한 파도와 바다의 느낌보다는 축축하고 습한 여름의 분위기가 더 느껴진다.
글 입력 2020.05.17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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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테이프로 칭칭 감아놓은 보드의 모습이 짠하다. 수가 하고 싶은 걸 해보겠다고 노력하는 모습이 조악한 보드의 이미지로 단명하게 나타나는 것 같다.


인생이 엉망진창 같을 때가 있다. 그 이유는 내가 자처한 것일 수도 있지만, 태생적으로 느끼는 한계일 수도 있다. 많은 일은 한 가지로만 결정되거나 단명하게 결론 내릴 수 없으니까, 근원을 찾아 되밟는 일은 쉽지 않다. 많은 일은 파도처럼 몰아쳤다가 순식간에 쓸려나간다.


하지만 그만큼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 한 발짝 내딛는 일이 생각보다 간편하게 진행될 수 있다. 마음이 가는 곳으로 가서, 환상처럼 나타난 누군가가 자신을 믿어주는 일이 이뤄진다면.


수에게는 서핑과 제주의 파도와 서퍼들이 그랬다. 파도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수를 맞이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마치 꿈처럼, 믿을 수 없는 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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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외국인 불법 취업 브로커 일을 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2세 김수. 폭력 전과로 출소한 뒤 사회봉사로 해안을 청소하고 있다. 영화는 그런 수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시작한다. 수는 막걸리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모래사장에 철퍼덕 주저앉아 서핑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바라본다.


수와 필성은 갑보 사장에게서 심부름을 해주고 돈을 받는다. 보통 불법적인 일이지만, 수와 필성은 갑보와의 연을 끊을 수가 없다. 당장 갑보에게 빚이 있고 일할 만한 곳이 없는 이들은 갑보 밑에서 일을 받아 돈을 벌어야 한다.


그리고 수는 우연히 쓰레기통에서 부서진 보드를 주워 청테이프로 꽁꽁 이어 붙이고 무작정 바다로 들어간다. 바다 앞에서 바지를 벗고 조악하게나마 모습을 갖춘 보드를 들고 파도에 뛰어드는 수. 서핑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없지만, 지금까지 자신이 지켜봤던 것들을 토대로 무작정 서핑에 도전한다. 흠뻑 젖어서 나온 수에게, 서퍼 해나가 다가와 위험하다며 경고를 한다.


스스로 고친 보드를 들고 파도로 걸어 나갔던 그때. 사회봉사 서명을 위해 서프숍에 들어가게 된 그때. 그 작은 ‘그때’들이 모이며 수는 예전의 자신을 떨치고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기반이 생겼다. 서프숍을 운영하는 똥꼬와 서퍼 해나는 수와 필성을 스스럼없이 받아준다. 다른 서퍼들과 함께하는 자리에도 초대하고 무료로 보드도 주고 강습도 해준다. 밀어내고 어색해하던 수의 표정도 점차 풀려가는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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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에게 찾아온 서핑과 행복이 너무 찬란하게 느껴진다. 파도처럼, 갑자기 끼쳐왔다. 그 속에서 수는 이제 갑보와의 연도 끊으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그 옆에는 필성이 있다. 필성은 수처럼 행동하지 못한다. 필성은 당장 갑보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다. 수에게는 필성도 중요하고 서핑도 중요하고 자신을 받아준 서퍼 사람들, 똥꼬와 해나도 중요하다.


딱 한 번. 하지만 그 딱 한 번이 많은 일을 변화시킨다. 좋은 일은 신중하게 촘촘히 쌓아 올려야 그나마 제 모습을 갖추면서, 왜 나쁜 일은 꼭 이런 식일까. 딱 한 번,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말로 시작한 일 때문에 수는 서핑을 하지 않게 된다. 바다를 보면서 뛰어 들어가고 싶지만 틀어진 관계를 어떻게 회복해야 하는지가 어려운 수는 주저한다. 수는 계속 맴돈다. 수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사실 너무도 당연하다.


*

 

시원한 여름의 서핑 영화를 기대한다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다. 제주를 배경으로 한 청춘들의 우당탕 스포츠 영화가 아니다.


이주노동자 2세로 태어나 폭력 전과도 가지고 있는 수. 분명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인데 이방인처럼 취급되는 존재다. 갑보 사장의 말처럼 “동포끼리 뭉쳐야” 살 수 있는 걸까? 사람들에게 자연의 휴식처처럼 느껴지는 제주 속 계층 간 갈등을 넣은 점 또한 이 영화에서 주목할 점이다. 이주노동자들과 불법으로 취직한 외국인들이 분명 존재하는 제주의 모습을 지우지 않고 자연과 함께 고스란히 담아낸다. 단순 청년의 이야기가 아닌, 제주에 사는 청년을 새로운 시각으로 담아냈다.


<파도를 걷는 소년>. 참 서정적으로 느껴지는 제목인데 내용은 그렇지만도 않다. 파도를 걷는다는 표현은 실제 서핑에서 사용하는 말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한들, 제목에서 처음 느껴지는 분위기가 굉장히 시적이다. 하지만 수의 얼굴 클로즈업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시적이거나 환상적이기보다는 현실적이면서 과묵하다. 바닷바람의 짠내가 느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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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핑 영화라고는 하지만 성장 영화에 더 가깝고, 시원한 파도와 바다의 느낌보다는 축축하고 습한 여름의 분위기가 더 느껴진다. 결국 수가 완벽히 서핑하는 모습은 나오지 않으며 서핑하는 장면이 생각보다 적다. 흔히 생각하는 할리우드 스타일의, 서핑 하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찍는 것이 아니라 모래사장에서 저 멀리 바닷속의 그들을 바라보는 식으로 연출되기 때문이다.


시원함과 청량함보다는 수와 필성이 외국인들에게 명함을 뿌리기 위해 다니는 제주의 밤거리와 축축한 풀밭, 습해 보이는 갑보 사장의 컨테이너 인력사무소가 영화의 분위기를 더 지배한다.

 





파도를 걷는 소년
- The Boy From Nowhere -


각본/감독 : 최창환
 

출연

곽민규, 김현목

김해나, 강길우, 민동호

 

장르 : 드라마

개봉
2020년 05월 14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 97분



 

 

 

[진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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