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미 행복한 존재 [영화]

글 입력 2020.05.17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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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쉬기조차 어려운 현실이 되었다. 삶의 번뇌를 의미했던 '숨 내쉼'이 그 자체가 삶의 고통으로 변해버린 순간이다. 숨을 쉬는 것마저 타인의 시선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예전이라면 타인의 시선이 무서울 때는 여행을 훌쩍 떠나버리면 되었다. 아니면 좋은 사람들과 좋은 대화, 그거면 충분했다. 그게 삶의 버팀목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19가 덮친 현실 속 여행도 대화도 사치가 되어버린 순간 삶의 버팀목마저 불타버렸다.


종처럼 뉴스를 보거나 SNS로 세상을 보면 이제는 어떤 것이 행복인지 행복이 무엇이었는지 조차 분간하기 어렵다.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 1화의 대사다. ‘사는 게 그런 건가, 좋았던 시간의 기억 약간을 가지고 힘들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시간을 버티는 것, 조금 비관적이긴 하지만 혹독하네. 혹독하다. 그건 부정할 수 없지만 좋은 시간 약간을 만들고 있는 지금이 나는 너무 좋아.’라고 한다. 그들이 느끼는 소소한 행복이 무엇인가. 소소한 행복을 늘 상 만들고 있는데 우린 그것을 잊고 살고 있던 것은 아닐까.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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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하루 중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것이 엉망으로 변해버린 월터의 하루를 담아낸다. 필름 하나를 잃어버린 그였지만 그 일로 회사를 나가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 필름 속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었다. 사진작가의 마지막 작품이었던 그 사진 속의 주인공은 일을 하던 자신의 모습이었다.


바쁜 사회 속 자신을 잃어가는 사회다. 개성을 그 누구보다 중요시하는 사회인 반면에 변해가는 유행에 무조건적으로 발맞춰 나아가야 한다. 모순이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스스로가 변화하지는 않아도 이를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변화 속에서 결국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상실해 버린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가장 좋아하는 색이 무엇인지조차 답을 내리지 못한다. 결국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가장 인기 있는 것, SNS상에서 가장 유명한 것을 쫓아가게 된다.


이 영화에서 말하는 진정한 행복은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다. 사진 속의 이미지는 일을 열심히 하던 자신의 모습이었다. 만약 이 영화의 엔딩 사진이 모두와 함께 커피를 마시는 장면이었다면 어떨까. 나는 아마 그 사진 속 권력 관계를 찾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혼자가 되어 그저 묵묵하게 자신이 잘하는 일을, 좋아하는 일을 하는 월터의 모습은 자신이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모두 아는 그가 질투 나기까지 한다.

 



꾸뻬씨의 행복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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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기 위해서는 나를 아는 것이 중요해진다. 어쩌면 이제는 자신을 찾는 것이 곧 행복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의 유명한 철학자들도 스스로를 아는 것에,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정의 내리지 못하였는데 그저 평범한 시민인 우리가 얼마나 우리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인간이기에 욕망, 본능, 관습에 어쩔 수 없이 따라가게 된다. 행복을 찾는 것이 어떤 것인지 다시 물어보게 된다.


영화 <꾸뻬시의 행복 여행>은 정신과 의사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그가 여행을 통해서 알게 된 행복의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1. 남과 비교하면 행복은 멀어진다.
2. 행복은 때때로 뜻밖에 찾아온다.
3. 많은 이들은 자신의 행복이 오직 미래에 있다고 생각한다. 
4. 많은 사람은 더 큰 부자가 되고, 더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5. 행복을 목표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6. 행복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다. 
7. 불행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다. 
8. 행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9. 행복이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는 것이다.
10. 불행한 것을 피하는 게 행복의 길은 아니다.

 

어느 순간 행복이 무엇인지 찾아가려고 한다. 최고의 이상향이자 나 스스로가 잘살고 있다는 증표로 인지된다. 광고 속 ‘얼마나 행복한가요?’란 질문에 답을 내리지 못하는 스스로를 연민 어린 시선으로 보게 만든다. 하지만 행복을 총량으로 환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얼마나 행복하냐는 행복의 총량을 물어보는 이 질문은 행복을 삶의 목적으로 치부해버리는 사회의 악습에 의한 결과다.

 

코로나 19속의 사회는 불행이고, 코로나가 해결되면 모두들 행복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코로나 19속의 사회는 무조건 적으로 불행이며, 코로나 이후의 우리의 모든 삶은 행복인가 질문해본다. 꾸뻬씨는 이 질문에 아니라고 대답해준다. 그저 오늘하루 남과 비교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행복할 수도 있고, 미래라고 무조건 행복하지도 않다고 말이다.

 

*


우리는 내일 행복하기 위해 오늘의 행복을 잃고 살아가고 있었다. “HAPPY”란 단어를 이모티콘으로 표기하면 스마일로 표시된다. "Emotion Icon" 오늘 하루 한 번의 웃음을 지었다면 충분히 행복한 하루가 아니었을까. 박장대소가 아닌 조금의 미소, 그 미소 한 번도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 아닌가. 불행의 기준은 낮게, 행복의 기준은 너무 높게 맞추고 있는 사회다. 행복의 기준을 낮춰서 다시 사회를 바라보자. 그대 오늘 행복하지 않았는가.

 


[박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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