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눈사람] 사실은 너에게도 꿈이 있잖아

여덟 번째 눈사람: 소중한 꿈을 꾸는 그대에게
글 입력 2020.05.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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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꿈이 생겼어."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이 한 말이었다. 사실 나에겐 꽤 놀랄 만한 말이었다. 한 번도 그녀가 이토록 단호한 목소리로 무언가를 "꿈"이라 불렀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꿈이 뭔지 들어보기도 전에 나는 이미 좋았다. 아마 내가 그녀를 알게 된 이례로 가장 기뻤던 순간에 들 것이다. 그 꿈이 뭐라도 누구보다 응원해줘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그녀는 내가 아는 가장 성실한 사람 중 한 명이었는데, 그 흔한 재수 한번, 휴학 한번 없이 졸업을 앞두고 있다. 아무래도 4학년 친구이다 보니 함께 진로 이야기를 나눌 일이 많아졌고, 취업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눴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그녀가 무언가 하고 싶다거나, 좋아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었다. 그녀는 늘 해야 하는 것들을 해나가다 여기까지 온 것 같은, 그런 친구였다.

물론 나는 그런 성실함이 부럽고 존경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그녀가 뜨거운 꿈을 꾸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자꾸 "넌 뭘 하고 싶어? 이건 어때? 저건 어때?"하고 물었던 것 같다. 나는 그녀와는 다르게 열정적으로 꿈꾸고 때로는 떼쓰고 과감히 포기도 해본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리며 빛나는 그녀의 눈이 보고 싶었다.

"꿈이 뭔데?"

"나는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소소한 일상을 나누며 살고 싶어. 그게 내 꿈이야. 꼭 꿈이 직업일 필요는 없는 거잖아. 지금까지 왜 그렇게 꿈을 직업에 가두려 했는지 모르겠어. 물론 그런 것들도 중요하지만, 우린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잊고 사는 것 같아. 아무리 내가 원하는 일을 찾고 하게 된다고 해도, 나는 주변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절대 행복할 수 없을 거야. 그렇다면 내 꿈은 그 일이 될 수 없는 거 아닐까? 나는 그 행복한 일상을 내 꿈이라고 부를래."

아. 왜 나는 그녀 입에서 "XX 기업 입사", "YY 시험 준비" 같은 말이 나올 거라고 단정 지어 생각했을까? 내가 가진 꿈에도 의문이 들었다. 기획자, 마케터, 편집자 같은 것들을 정말 나의 꿈이라 불러도 괜찮을까?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보다도 어떤 직종에서 일하고 싶은지를 먼저 떠올려버린 날들이 생각났다. 꿈이란 게 꼭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나는 네 꿈을 응원해. 넌 꼭 그런 삶을 살게 될 거야."

어쩌면 우리 서로 눈 맞추면 나눠야 할 꿈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엄마, 장래희망 뭐라고 써서 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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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기록부에는 장래희망을 기재하는 부분이 있었다. 미래에 되고 싶은 희망 직업을 써서 내는 칸이다. 무슨 일을 하며 살지에 대해서는 아주 어려서부터 고민해왔다. 누군가 늘 물어봤기 때문이다. 나는 무언가가 돼야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내가 무언가가 돼야 할지 고르는 일은 쉽지 않았고, 어렸을 땐 엄마한테 물어보곤 했다. "엄마, 장래희망 뭐라고 써서 내야 해?"

초중고 내내 진로 교육은 꾸준히 받았다. 진로 적성검사, 이색 직업, 다큐멘터리 등등이 주를 이룬 교육이었다. 학교는 학생들이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 계속 질문했고, 많은 학생들은 그 답을 찾는 일을 어려워했다. 어떤 직업이 있는지, 왜 그 직업을 하고 싶은지, 채 알기도 전에 장래희망란에 답을 써내야 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꿈" 하면 장래희망 직업을 먼저 생각하게 됐다. 원하는 직업이 없다면 꿈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고 싶은 일은 있는데 모호하면 더 애매했다. 나는 꿈이 있는 걸까, 없는 걸까 생각하는 일이 잦았다. 명확한 직업을 대야 하는데, 사실 그렇게 많은 것들을 알고 있지도 았았다. 그 때 우리는 그렇게 꿈이 있거나 없거나 했고, 꿈을 이루는 건 그 직업이 되는 일이라고 믿었다.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요?


나는 2019년도에 초등학교 창의 진로 프로그램 진행 봉사활동을 했다. 진로 프로그램 진행 중, 꿈이 뭐냐는 질문에 다수가 "없어요."라는 답을 했다. 하고 싶은 직업이 없고, 뭐가 있는지 잘 모른다는 말이었다. 나는 그때 그 학생들에게 좋아하는 일을 묻고, 잘하는 일을 찾아보는 활동을 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 아이들에게 해줄 말은 "꿈을 가져."가 아니라 "꿈을 찾아."였던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이 없고, 되고 싶은 직업이 없다고 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삶을 살고 싶니?",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어렸을 때 누군가 물어봐 줬다면 좋았을 것 같다. 분명 꿈이 없다고 답했던 학생들 모두에게 희망하는 삶의 모습은 있을 것이다. 나와 내 친구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분명 직업보다 중요한 꿈이 있었다.

물론 원하는 직업을 갖는 것은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어쩌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꿈이 꼭 직업만 포함해야 할 필요는 없다. 원하는 직업이 없다고 속상해할 필요도 없다. 누군가에게는 어떤 일을 하는 것보다 어떤 삶을 사는 게 더 중요할 수 있다. 어떤 일을 하든 주위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행복하다고 말했던 내 친구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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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명확한 꿈을 꾸며 살아왔는데, 점점 현실이 되어가며 그 명확성이 오히려 해가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나에게 꼭 기획자가 되라고 말하는 순간, 그 외의 것들이 너무도 멀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공연 관련", "예술 관련" 같이 분야만 생각하려 하는데,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은 나에게 정확히 어떤 일을 하고 싶냐고 물어본다.

이제는 그 대신에,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우리의 진짜 꿈, 진짜 원하는 것을 나누고 싶다. 꼭 거창한 직업이나 목표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자신만의 행복을 꿈꿀 수 있고, 바로 그게 진정한 꿈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 꿈을 기반으로 장래희망 직업을 갖고, 도전하는 게 맞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누군가가 나에게 꿈을 물으면 이제 새로운 답을 하려고 한다. "나는 클래식 공연 보러 다니는 할머니가 될 거야." 꼭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해도, 좋아하는 공연을 여유 있게 보러 다닐 수 있는 멋있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생각해보면 그냥 그게 내 꿈이다. 조금 더 큰 꿈을 꿔보자면, 이왕이면 R석에서 보고 싶다는 정도.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 모르겠어도 슬퍼할 필요는 없다.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꿈"은 있지 않은가? 진로에 대한 고민이 들고 걱정이 되겠지만, 잠시 여유를 갖고 자신의 진짜 꿈이 뭔지 생각해보길 바란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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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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