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하나의 이야기, 두 개의 무대 - 뮤지컬 '미드나잇' [공연예술]

뮤지컬 '미드나잇:앤틀러스'와 '미드나잇:액터뮤지션'
글 입력 2020.05.15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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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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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미드나잇>은 희곡 Citizen of Hell을 원작으로 한 공연으로, 1937년 스탈린의 독재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던 아제르바이젠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에는 ‘엔카베데’라는 이름의 비밀경찰이 존재했는데, 이들은 스탈린의 정치적 숙청을 실질적으로 집행하는 기관이었다. 이들은 체제에 따르지 않는 자들을 잡아가 잔혹하게 고문했고, 익명의 밀고만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을 잡아갔다. 또 엔카베데 자체적으로도 내부숙청을 시행하여 요원이나 지도자들을 처형했다.

 

<미드나잇>은 1937년 12월 31일 자정이 되기 조금 전, 끔찍했던 1937년을 보내고 조금 더 나은 1938년을 기대하며 맞이하려는 ‘맨’과 ‘우먼’ 부부의 앞에 ‘비지터’, 엔카베데가 찾아와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평화로워 보였던 맨과 우먼 앞에 비지터가 찾아와 그들의 민낯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균열이 생기고, 끝내는 각자 다른 선택을 하며 악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미드나잇>은 2017년, 영국의 <미드나잇>에서 대본과 음악만 가져와 한국 창작진들이 연출과 무대를 새롭게 만들어 초연되었다. 그리고 그다음 해인 2018년에는 영국 오리지널 프로덕션을 그대로 가져와 재연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2020년, 올해는 ‘Your choice of MIDNIGHT’라는 프로젝트로 초연 버전에 ‘앤틀러스’, 재연 버전에 ‘액터뮤지션’이라는 부제를 달고 동시에 공연하고 있다.

 

두 극은 거의 모든 대사가 동일하고, 넘버도 <액터뮤지션>에 한 곡이 더 있을 뿐 모두 같다. 이야기와 음악이 모두 같다면 연출과 무대만으로 얼마나 다르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두 극은 연출과 무대를 통해 전혀 다른 극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새로운 공연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보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선호하는 <미드나잇>이 갈리기도 하는데, 두 공연 모두 각각의 매력이 있어 이번 시즌에서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골라보거나 함께 보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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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앤틀러스> 무대 사진

 


<앤틀러스>의 무대는 제목이 ‘앤틀러스’인 만큼 사슴의 뿔이 ‘각하’ 즉, 스탈린의 상징으로 무대 중앙에 크게 위치한다. 사슴뿔은 악마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만큼, 강렬한 조명 아래의 사슴뿔은 절대적인 권력의 공포와 위압감을 효과적으로 시각화한다. 인물은 맨과 우먼, 비지터, 그리고 장면 곳곳에 등장해 극의 진행을 돕는 ‘멀티플레이어’가 2명 등장한다.

 

<액터뮤지션>은 맨, 우먼, 비지터,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며 연기하는 ‘액터뮤지션’이 4명 등장한다. 이들은 각각 바이올린, 더블베이스, 기타, 퍼커션을 연주하며 극의 중간중간 엔카베데 요원이나 변호사를 연기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피아니스트도 집 안에서 계속 피아노를 연주하지만, 자리에서 벗어나 연기를 하지는 않는다. 무대 전체가 맨과 우먼의 복층 거실 모습인 <앤틀러스>와 달리, <액터뮤지션>은 중앙에 단층 거실이 있고 그 주위로는 악기들이 있어 인물들이 이동하고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사슴뿔 대신 스탈린의 초상화가 크게 걸려있고, 비지터가 시간을 멈추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앤틀러스> 무대의 커다란 시계는 작은 시계로 대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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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액터뮤지션> 무대 사진

 

 

이렇듯 <앤틀러스>와 <액터뮤지션>은 같은 텍스트를 다루고 있지만, 표현 방식이 판이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감상과 의미를 얻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관객으로서 이입하게 되는 시점이 다르다고 느꼈다. <앤틀러스>는 벽이 무대 위에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에 문밖이나 거실 외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직접적으로 볼 수 없다. 그래서 관객들은 비지터에 대한 공포나 사람들이 끌려가 사라지는 상황에 대한 불안함을 함께 느끼며 맨 혹은 우먼에게 이입하게 된다.

 

반면 <액터뮤지션>은 문을 프레임으로 설치한 것 외에는 벽을 무대 위에 따로 설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밖이나 거실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관객들도 볼 수 있다. 그래서 비지터가 벽을 뚫고 경계를 넘나드는 초월적인 존재라는 점이 두드러지고, 맨과 우먼을 비지터의 시선에서 함께 관찰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런 두 무대의 차이가 가장 두드러지게 보이는 부분은 비지터가 우먼과의 격렬한 싸움 끝에 눈이 뽑혀 퇴장하는 연출이었다. <앤틀러스>에서는 소파 뒤에 쓰러진 비지터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관객들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퇴장한다. 그래서 감쪽같이 없어진 비지터가 다시 맨과 우먼의 집 문을 두드릴 때 그들이 느꼈을 공포심에 완전히 몰입하게 된다.

 

이와 달리 <액터뮤지션>에서는 맨과 우먼이 다른 곳을 보고 있을 때 능청스럽게 일어나 무대 중앙 벽을 통과해 퇴장한다. 퇴장하면서 관객들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미소 짓는데, 맨과 우먼의 장단에 맞춰주면서 서서히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 비지터의 본래 목적이나 절대 권력이라는 캐릭터의 특성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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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앤틀러스> 공연 사진

 

 

엔딩 또한 비슷한 듯싶지만 다르다. <미드나잇>은 비지터의 정체와 엔딩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시간을 멈추고 벽을 넘나드는 초월적 존재인 악마라는 의견도 있고, 비지터를 포함한 모든 상황이 환상이라는 의견도 있고, 그 밖의 많은 해석이 존재한다. 하지만 <미드나잇>이 하고자 하는 말은 비지터의 정체가 무엇이든, 그런 상황에서 ‘너라면 어떡할래?’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비지터가 맨이 친구였던 변호사를 고발했다고 우먼에게 말하자 우먼은 크게 실망하고 그를 밀어낸다. 그런 우먼에게 맨은 진실을 말한다 해도 바뀌는 것은 없다며 너라면 어떻게 하겠냐고 묻는다. 그리고 비지터는 ‘위대한 권력’, ‘누구나 악마죠 때로는’ 등의 넘버를 통해 고문하는 사람도, 고발하는 사람도 그저 ‘명령에 따를 뿐’인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평범한 사람도 누구나 악마가 될 수 있으며, 언제나 모든 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비지터에 의해 자신의 악한 모습을 스스로 합리화해왔다는 사실과 다른 이들도 자신과 다르지 않음을 깨달은 맨과 우먼은 각기 다른 선택을 한다. 모두가 평등한 유토피아를 바라며 자신의 행동이 그 유토피아를 위한 길이라 생각했으나 그것은 결국 자신의 악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맨은 무고한 고발을 계속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에 비해 우먼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악과 한 몸이 되어 비지터와 같은 존재로 거듭나는 것을 택한다. 하지만 그 선택의 느낌은 <앤틀러스>와 <액터뮤지션>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앤틀러스>에서 우먼은 1층 소파에 팔을 벌리고 마치 십자가를 뒤집은 모습으로 끝이 난다. 사슴뿔 위에서 지배적인 모습으로 서 있는 비지터와 그 아래 붉은 조명이 비친 우먼의 기괴한 얼굴은 누구나 ‘악마’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듯하다.

 

반면 <액터뮤지션>에서의 우먼은 비지터에게 탬버린을 받아 연주하면서 액터뮤지션 무리에 합류한다. 초점 잃은 눈으로 몸을 축 늘어뜨린 채 수동적으로 비지터와 액터뮤지션을 따라 벽을 넘어가는 우먼의 모습은 모든 사실을 깨달은 후 체제에 무력하게 순응해버린 또 하나의 선택을 보여준다. 이는 <앤틀러스>와 달리 ‘누구나’ 악마가 될 수 있다는 점에 더 초점을 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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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액터뮤지션> 공연 사진

 

 

여기까지는 나의 개인적인 감상일 뿐, 보는 관객에 따라 비지터의 정체도, 결말의 의미도 다 다를 것이고, 서로 다른 무대에서 보고 느끼는 점도 다양할 것이다. 그것은 공연예술 자체의 매력이기도 한데, 이번 <미드나잇>은 하나의 이야기를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무대로 보여주어 그 상상과 해석의 가능성을 더욱 넓혔다.

 

아쉽게도 <미드나잇:앤틀러스>는 5월 3일에 막을 내렸으나, <미드나잇:액터뮤지션>은 성황리에 공연 중이며 6월 28일 예정이었던 마지막 공연 또한 7월 5일로 연장되었다. 하나의 텍스트를 두고 서로 다른 이들이 해석하여 만든 두 무대를 보고 각자의 해석을 하나씩 덧붙이다 보면 ‘미드나잇’이라는 텍스트는 점점 더 다채롭고 풍성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정다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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