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창작과 합평 [사람]

글 입력 2020.05.13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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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합평 수업을 기억한다.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하고, 첫 수업에서 시를 한 편 쓰게 했다. 그리고 그 다음 주, 우리가 쓴 시를 우리가 돌려보고 나는 생에 처음으로 합평을 받았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 친구와 편의점에 갔다. “불닭 시리즈”를 모두 사서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입에 쑤셔 넣었는데 편의점 사장님이 힘든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그날 나는 자퇴를 생각했다.

 

타인이 내 시를 읽고 합평하기를 기다리는 것은 처음에는 고문이었다.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고 손이 떨렸다. 내 차례가 왔을 때, 나는 어떤 목소리로 내 시를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내 합평은 10분이 되지 않아 끝나고 다음 차례로 넘어갔다. 짧은 시간에 스무 명이 합평하려니 어쩔 수 없었다. 싱겁게 끝난 수업이었지만, 나는 그 수업을 떠올리면 아직도 아득하다.

 

 

[크기변환]합평.jpg

 

 

나는 합평을 “공개처형”에 종종 비유한다. 내 소설 차례가 되면, 나는 동그랗게 만들어진 책상들 사이에 교수님 옆에 앉는다. 학우들은 일제히 나를 보고, 내 글을 읽고 궁금한 지점을 묻는다.


내 의도와는 다르게 이해한 학우가 있으면 열심히 설명한다. 질문이 끝나고, 합평하고 싶은 사람들이 일제히 손을 들고 가차 없이 시작한다. 그들의 합평을 정신없이 받아쓰면서 내 의도를 정확히 파악한 학우에게는 반가움과 고마움을, 무한한 사랑을 느낀다. 혹은, 내 창작 실력의 미숙함에 반성한다.

 

수업에서 합평은 태도 점수에 반영된다. 그리고 한정적인 시간에서 합평하니, 좋았던 부분을 말하는 것보다 수정해야 할 부분을 지적하는 게 주를 이룬다. 그렇다 보니 대부분의 합평은 이렇게 시작한다.

 

“OO 학우의 작품,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일 중요한 말은 “그런데”의 이후이다. 마음씨 넓은 동기들 덕분에 나는 원색적인 비난을 들은 적이 없지만, 타인의 합평이나 교수님의 피드백을 들을 때면 내가 상처받는 경우가 많았다. 분명 더 나아지기 위해 하는 피드백이 오히려 창작 의욕을 떨어뜨리게 만들어 역효과를 낸다. 저 말을 듣고도 내가 글을 써야 하나? 싶은 마음이 떠오른다. 충격요법인지 모르겠지만 충격만 받았다.

 

합평 첫날이 무색하게도, 나는 문예창작학과를 3년째 다니면서 수많은 합평을 거쳤다. 시, 소설, 비평, 시놉시스, 기획서 등 한 주에 내 작품 합평만 세 개인 적도 있었다. 마감 직전까지 밤을 새우고 수업에 가면서 이제는 될 대로 되라는 마음이 컸다. 그러나 수업 직전까지만 떳떳했지 내 차례만 되면 나는 여전히 떨었다.


내 글이 혹시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진 않았을까 고민했고 마감 직전에 이성을 잃고 저지른 문장이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10분이면 끝났던 시 합평으로 시작해서, 이젠 내 글로만 수업의 3~40분을 채우는 전공 수업까지 나는 여전히 부담스럽다.

 

 

[크기변환]책이미지.jpg

 

 

나는 항상 기한에 쫓겨 썼고 겨우 퇴고를 해서 제출하는 경우가 많았다. 과제로 주제를 던지면, 마감 직전까지 소재만 고른다고 시간을 다 썼다. 소설을 쓰다가도 소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전부 지우고 다른 소설을 썼다. 결국 마감 하나를 끝내면 소설이 세 작품이 나올 때도 있었다. 요즘 “스불재(스스로 불러온 재앙)”라는 말이 유행하던데, 그제야 사람은 후회하는 동물인 것을 깨닫는다.

 

왜 이렇게 즉흥적일까. 왜 샤워를 할 때 새로운 소재가 떠오를까. 미리 떠오른 소재로 글을 써놓아도, 교수님들은 귀신같이 내 글에서 없는 주제만 찾아낼까. 홀로 쓴 글은 몇 년을 구석에 박혀 있고, 다급하게 쓴 글만 허술하게 교수님께 제출한다. 학부생 3년 차지만 나는 여전히 교수님의 코멘트가 무섭고 동기들의 합평이 두렵다.

 

재밌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는 말을 들으면 그날은 온종일 기분이 좋아 글을 쓰기도 하지만, 혹평을 들을 때면 여전히 자퇴를 생각한다. “이 길은 내 길이 아니구나.”라고 홀로 반성했다. 그러나 한강의 소설집 <여수의 사랑>의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그저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길뿐일까, 하는 끈질긴 의문을 버리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던 기억이 난다. 되돌아 나가기에는 너무 깊이 들어왔다고, 꺼질 듯 말 듯한 빛을 따라 계속해서 걸아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자마자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안도감이 찾아왔었다."

 

- 한강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나는 다시 문예창작학과에 선택할 것을 안다. 그저 나 홀로 하는 투정이다.

 

 

[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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