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떠나온 상태에서 떠나오기>는 미국의 소설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에세이집이다. 그는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소설 1,001선,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걸작 영어 소설로 꼽히는 소설 <한없는 웃음거리(Infinite Jest)>로 명성을 얻었고, 논픽션 산문집 <끈이론>,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을 발표하기도 했다. 소설로 유명하지만, 한국에는 번역 출간된 소설이 없어 나는 이번 책을 통해 처음 접한 작가였지만, 이미 독특한 형식과 문체로 많은 팬을 보유한 작가다.
‘인생 멀미’를 하고 있다고 밝힌 그는 10대 때부터 우울증에 시달렸고, 술, 대마초, 설탕, 섹스 중독과 병균, 물, 비행기 공포증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글은 아주 감각적이고 신경증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묘사가 풍부하고 길다.
특히나 축제 현장과 영화 촬영장의 모습을 아주 자세하게 묘사한 첫 번째와 두 번째 에세이는 둘이 합쳐 책 대부분의 분량을 차지할 만큼 상당히 길다. 첫 번째 에세이는 글을 읽으면서 실제로 돼지와 소의 오물 냄새를 맡고, 어지러운 놀이기구를 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 정도로 표현이 적나라하다. 두 번째 에세이에서는 몰라도 될 것 같은 사소한 촬영장의 모습까지도 남김없이 드러난다.
또한, 그의 글에는 한 페이지의 반 이상을 차지하기도 할 정도로 많은 각주가 달려있다. 자료를 찾아본 결과, 그의 소설 역시 이런 형식을 취하고 있어서, 1,000페이지에 달하는 소설 <한없는 웃음거리>를 읽기 위해서는 각주가 한데 모여 있는 뒤 페이지와 소설 본문을 왔다 갔다 하며 읽어야 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한다고 한다. 다행히 이 에세이집 <거의 떠나온 상태에서 떠나오기>는 읽기 좋게 각주가 본문과 함께 실려 있다. 다시 말해 각주를 필요 없는 정보로 취급해 건너뛰어야 하는 부분이 아니라, 본문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글로 만들었다.
이 에세이집에는 그가 이전에 쓴 5편의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다. 첫 번째 에세이이자 표제작인 ‘거의 떠나온 상태에서 떠나오기’는 일리노이 주 축제를 취재한 내용이다. 공교롭게도 지난 학기에 미국 중서부로 교환학생으로 파견되어, 그가 묘사한 중서부와 동부 도시들의 차이점을 이야기하는 부분을 꽤 흥미롭게 읽었다.
교환학생으로 파견되었던 미 중서부의 풍경
일리노이 주에 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축제의 의미와 본질을 탐구해나간다. 동물의 냄새로 가득하고, 절반밖에 완성되지 않는 놀이기구가 삐걱거리고, 셔츠를 세 번이나 갈아입을 정도의 더위 속에서도 모여드는 사람들을 그는 낯설게 바라본다. 저자에 따르면 중서부 지방의 도시는 뉴욕으로 대표되는 동부의 도시와 명확히 대조된다. 사람을 피하는 것이 여가가 되는 동부와 달리, 중서부 사람들은 사람들이 모이는 축제로 여가를 보낸다.
두 번째 에세이는 21세기 최고의 영화로 꼽히는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감독인 데이비드 린치의 또 다른 영화 <로스트 하이웨이>의 촬영장을 취재한 내용이다. 두 영화를 모두 보지 못해서 데이비드 린치의 작품 세계를 다룬 짧은 영상을 보았는데, 꿈과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인 연출이 특징적인 감독이었다. LA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감독의 색채가 진하게 풍기는 컬트영화라는 점에서 두 영화는 닮았다.
작가가 '린치적 공간'이라고 언급한,
로스앤젤레스의 그리피스 공원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데이비드 린치의 열렬한 팬이자 평론가로서 촬영장에서 벌어지는 일과 린치의 전작과 작품 세계에 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그의 소설 <한없는 웃음거리>도 형식 과잉에 기존의 틀을 깨는 작품임을 고려할 때, 그가 데이비드 린치의 팬이 된 이유는 그와 비슷한 작품세계를 가지고 있어서가 아닌가 하고 추측해본다. 촬영장에서 데이비드 린치가 보여주는 유아론적 행동은 사실 글에서 드러나는 작가 자신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에세이는 각각 존 업다이크의 소설 <시간의 종말을 향하여>와 수학을 소재로 한 두 편의 장르소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이다. 전자는 존 업다이크의 소설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자기중심적인 인물을 비판하고, 후자는 전문적인 수학 지식을 다루고 있다는 이유로 인기를 얻은 두 편의 소설이 터무니없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다섯 번째 에세이는 2007년 미국 최고 에세이 선집에 객원 편집자로서 기고한 글로, 자신이 어떤 기준을 가지고 최고의 에세이를 선정했는지를 쓴 글이다. 에세이라는 글의 장르가 얼마나 규정하기 어려운 것인지, ‘최고의 에세이’ 라는 말이 얼마나 모호한지, 그리고 이런 글을 선정하는 시스템은 어떤 것인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장강명 작가의 <당선, 합격, 계급>이라는 르포가 생각났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2008년 이미 세상을 떠났다. 따라서 이 에세이집에 실린 글은 최소 13년은 지난 글이다. 이 다섯 편의 글은 각각 다른 잡지에 실린 것이어서 하나로 다시 묶일 이유도 찾기 어렵다. 또한, 그의 에세이는 다소 불친절한 편이다. 그의 소설 <한없는 웃음거리>가 최고의 소설로 평가될 뿐만 아니라 읽기 어려운 소설로도 악명이 높은 것을 보면, 일반적인 에세이를 기대하고 읽는 독자들은 당황할 것이다. 에세이에서 다루고 있는 소설이나 영화, 축제가 모두 낯선 데다가, 독자들이 당연히 알 것을 상정하고 이야기하는 전문적인 지식도 많다. 영어 번역 투 특유의 표현들도 많이 등장하는데, 이는 그가 영어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고급 표현들을 많이 사용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냉소적이고 아니꼬운 시선으로 비판하는 것들이 여전히 똑같은 문제를 안은 채 지속하고 있고, 그가 제시하는 통찰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또한, 작가 자신이 다른 이들을 비판하고 묘사하면서도, 불완전한 자신의 모습도 기꺼이 인정하고 드러냈기에, 그의 이야기는 진실하게 다가온다. 책을 쓴 것이 자기 자신의 유일한 업적인, 흔하디흔한 미국 자기계발서의 저자들이 전하는 삶의 이야기들보다도, 나는 이 책이 더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