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 [도서]

글 입력 2020.05.10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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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은 아이들에게 교훈을 주는 유치하게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새하얀 배경 위에 토끼 한 마리 그리고 책 제목을 중심으로 작게 쓰인 작가의 이름과 간결한 에세이 설명. 책을 읽기 전 가지런하고 따뜻한 표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림책으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함을 참지 못할 것 같았을 때 즈음 책을 펼쳤다.

 

한때 그림책의 주인이었던 당신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책 표지를 열자마자 나오는 문구에 이상하게 마음이 둥그레졌다. 마지막으로 그림책을 읽은 게 언제였더라. 친척 동생에게 책을 읽어주었을 때였나. 그게 언제가 되었든 내가 읽었던 그림책의 모양새도 내용도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책을 읽은 사람들이라도 흔히 내용을 알고 있을 법한 신데렐라, 백설공주와 같은 이야기들을 제외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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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스물네 개의 그림책 이야기는 나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들로 가득했다. 옆에 페이지 마커를 두고 마음에 와닿는 페이지에 하나둘 붙이며 읽다 보니 책을 덮을 때쯤엔 사방으로 마커가 잔뜩 붙어 있었다.


그중 가장 처음으로 내 마음을 두드렸던 그림책은 [곰씨의 의자]였다. 이 책은 그림책에 대한 성인의 감상이라 하더라도 그림책이 이만큼의 무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들이 [곰씨의 의자]를 읽고 나면 어떤 생각을 할까? 아이들도 '함께 있음의 행복과 홀로 있음의 편안함'에 대해 생각할까?

 

 

"여러분이 좋아요. 하지만 그동안 저는 마음이 힘들었어요. 물론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은 소중해요. 가끔은 혼자 있고 싶어요. 저는 조용히 책을 읽고 명상할 시간이 필요해요. 앞으로 제 코가 빨개지면 혼자 있고 싶다는 뜻이니 다른 시간에 찾아와 주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제 꽃을 살살 다뤄 주세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에게…"

 

 

[곰씨의 의자]의 주인공인 곰씨가 하는 말은 생각보다 더 직관적이다. 나도 곰씨처럼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누군가와 함께하는 시간이 싫은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혼자 있을 때보다 에너지가 넘칠 때도 많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이러한 말을 구구절절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불편한 마음을 손대지도 못하고 어설프게 웃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전부일 때도 있다. 나는 그림책 안의 곰씨가 부러웠고 또 그가 멋지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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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은 조금 다른 느낌의 에세이 같았다. 담을 수 있는 이야기는 무궁무진하고 그 안에서 우리는 어제와 오늘 내일을 그릴 수 있다. 기억에 남는 그림책이 정말 많았지만, 유난히 마음 깊이 자리 잡은 것은 그림책 [엄마]와 [엄마 마중]이었다.


내가 엄마가 된 것도 아닌데 갈수록 '엄마'라는 단어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그건 엄마에 대한 미안함일 수도 있고 고마움일 수도 있고 내게 있어 엄마의 크기일 수도 있다.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줄을 읽고서는 코끝이 찡해졌다. 그림책이 꼭 아이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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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그림책 하나가 문득 떠오르기도 했다. 언젠간 읽어봐야지 하고 담아두었던 책이었다. 파란색으로 쓰인 빨강이라는 책 제목이 눈에 띈다. 파랑을 칠하는 크레용은 빨강이라고 적혀진 빨간색의 옷을 입고 있다. 이 책은 이 "빨강"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무리 열심히 이름처럼 빨간색을 칠하려고 해보아도 파란색 밖에 칠할 수 없는 빨강이를 통해 진짜 내 모습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다.

 

[빨강]의 표지 이미지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5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그림책이 진짜 내 모습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놀라웠다. 심지어 나는 이 책을 아직 읽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림책은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만나게 해주며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상상하고 사고할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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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소개한 책 속의 그림책 두 권 외에도 [이렇게 멋진 날],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 [수영장 가는 날] 등 하나하나 다 적지 못한 것이 아쉬운, 기억에 남는 그림책이 많다. 라문숙 작가가 왜 그림책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한때 그림책의 주인이었던 나는 다시 그림책의 주인이 되고 싶어져 앞으로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면 그림책을 모아둔 곳에 꼭 가보리라 다짐했다.

 

정제되어 반듯하고 꽉 찬 문장들, 때로는 너무나도 현실적이기에 외면하고 싶어지는 이야기들로 가득 찬 에세이가 아니다. 큼지막한 그림들 사이에 큰 글씨로 적혀진 글자 몇 줄. 한두 장 넘기다 보면 금세 다 읽고 마는 그림책은 어른들을 위한 순하디 순한 또 자유로운 에세이였다. 그림책을 사이에 두고 작가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기분이었다. 그 따뜻하고 포근한 감상에 젖어 책을 읽는 시간이 안온했다.

 

이 책과 작은 그림책 한 권을 예쁘게 포장해서 한때 그림책의 주인이었던 또 다른 이에게 선물하고 싶다. 누가 알까. 가만히 책을 읽다 보면 그림책의 주인이 주인공이 될 수 있을지!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
- 왜 항상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


지은이 : 라문숙

출판사 : 혜다

분야
에세이
 
규격
130*188 / 올 컬러

쪽 수 : 276쪽

발행일
2020년 03월 10일

정가 : 14,800원
 
ISBN
979-11-967194-5-6





저자 소개

  
라문숙(필명: 단어벌레)
 
읽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단어벌레'라는 필명으로 네이버 블로그와 카카오 브런치에 글을 쓴다. 갑옷처럼 걸친 표정과 감정을 걷어내고 몸에 새겨진 것들을 글로 풀어놓으며 삶이 명징해지는 걸 경험하는 중이다. 읽고 마음에 새긴 것들이 어느 순간 자신을 드러내 삶을 환하게 비추듯, 자신의 글 또한 누군가의 마음에 빛으로 가닿기를 바란다. 일기처럼 써 내려간 글을 모아 『안녕하세요』, 『전업주부입니다만』, 『깊이에 눈뜨는 시간』을 냈다. 오래 읽으며 매일 쓰고 많이 웃고 싶다.



 

[정두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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