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술의 풍경과 삶의 풍경 사이에서 - 예술과 나날의 마음

도서. 예술과 나날의 마음
글 입력 2020.05.10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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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의 이 독립적인 움직임은

인간이 살아 있는 한,

지금 여기에서 그가 살아가는 한,

계속 이어질 것이다.


-프롤로그 중



예술과 나날의 마음

_문광훈



예술과 나날의 마음 표1.jpg

 

 

[Review]

예술의 풍경과 삶의 풍경 사이에서



이따금 예술이 무엇인지 그 의미에 대해서 생각한다. 미술을 공부할 때나 여러 문화 예술 작품을 만나며 썼던 몇몇 글에서 “예술”이라는 단어를 말하곤 했지만, 그 의미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기란 여전히 어렵다. 한편으로는 아직 온전한 결론에 이르지 못해 그 이유를 명확하게 따질 수는 없지만, 일상 속 매 순간 느끼는 감정이나 여러 방식으로 경험하는 풍경, 누군가와의 대화를 통해 살펴보는 다른 방향의 이해와 같은 것들도 어떤 의미에서는 예술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정말 사소한 것이라도 그것이 진심에서 일어날 때는 결코 사소한 것뿐만 되지 않으며, 무엇인가를 감정으로 느끼고 경험한다는 것에서는 예술과 어느 맥락을 함께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사회에서 예술을 이야기할 때 존재하는 경계에 대해서 고민했다. 언제부턴가 예술과 그 작품에 더해진 “천재성”이나 “위대함”이라는 수식어들로 인해 예술이 모든 사람들의 일상이 될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처럼 여겨지는 것 같았다. 더불어 나는 “예술”은 사회적인 요구와 효율적인 삶의 반대의 척도로 여겨지는 것에 대해, 그리고 단지 천재성과 재능으로만 가능한 것으로 치부되는 것에 대해 회의하곤 했다. 통상적인 이해가 작품을 이해하는 방법이나 일종의 정답이 되어 작품과의 소통이 정해진 범위에만 머무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 때가 많았고, 여전히 예술이 특별한 관심과 절차가 있어야만 누릴 수 있는 것이란 고정관념에 한계를 느낄 때가 많다.


위 두 문단 모두 예술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같은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어떤 간극이 느껴진다. 어쩌면 이는 내 사유 속에 존재하는 다른 맥락의 예술을 드러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미술사학과를 전공으로서 공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학문이 아닌 그저 바라보고 자유롭게 느낄 수 있는 예술 자체를 마음에 두고 있는, 모호하게 나누어진 내 마음의 상태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를 조금 더 나아가 설명으로 풀어내자면, 두 번째 문단의 예술은 “작품”이라는, 예술가의 사색과 사유를 거치며 세상을 투영하는 예술 세계의 창(窓)으로 나타난 것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경험과 사유를 의미한다. 첫 번째 문단의 것은 더 넓은 범위에서 사람으로서 경험하는 순간, <예술과 나날의 마음> 저자의 표현을 데려오자면 영혼의 독립적인 움직임을 일으키는 모든 것들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예술과 나날의 마음>은 내가 예술을 두고 가지고 있었던 두 갈래의 사유가 만나는 순간을 경험하게 해준 도서였다. 그 순간은 생각보다 놀라웠다. 예술에 시선을 두며 은연중에 가지고 있던 여러 모습의 두려움들 어떤 희망들로 채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술가들의 작품에 앞에서 경험할 수 있는 내용과 한 사람의 삶에서 일어나는 순간과 감정이 어떻게 만나고 생동하는지 일련의 글들을 통해서 만날 수 있었다.


잠시 소소한 투정을 더하자면 리뷰 글 약속을 위해 조금 다급한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다는 것, 조금의 아쉬운 마음을 더하자면 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은 일상을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랬었기에 <예술과 나날의 마음>은 내게 휴식처가 되어주었다. 바쁜 일상에 잊었던 예술의 존재와 그 가치를 들려주는 안식처, 그 예술이라는 단어가 함의하는 세계가 가진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음미하고 사색할 수 있는 숲속이었다.

 

 

우리가 만나는 풍경에서 우리는, 그것이 그림이든 책이든, 음악이든 철학이든, 그 풍경이 나를 감싸고, 나를 끌어주며, 내가 그 풍경으로부터 위로 받을 수 있는, 그래서 좀더 크고 더 깊으며 더 넓은 무엇을 보고자 애쓴다. 이 마음은 자부심이 강하여 고만한 것도 아닌, 마치 아리스토텔레스의 위대한 영혼에서 처럼, 무심한 가운데 자신의 독립성을 유지하려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닐까. 독립적인 마음이란 자신을 부단히 연마해가는 향상적 의지가 아닐까. 퇴계 선생이 죽는 날까지 견지했던 것도 바로 이 ‘나아지려는 마음’이었다.


- 프롤로그 중

 


<예술과 나날의 마음>을 읽는 시간은 예술과 삶이 함께하는 모습이 어떤 것인지 사유하는 시간이었다. 책 속 글들은 아주 숭고하거나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아주 일상적이고 사소하기도 했다. 또한 그림과 문학, 미학을 중심에 두고 이어지는 에세이가 전하는 내용은 현실을 살아가며 어느 순간 잊힌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고요한 마음을 통해 관조하는 삶, 평범한 일상이 지닌 고귀함, 비참한 현실 속에서 삶을 지속하고 이를 예술로 승화하고자 했던 예술가들의 삶을 통해 사유하는 예술의 책임, 어느 순간부터 잊히기 시작한 일상적인 풍경의 가치와 아름다움, 자연 앞에서 경험하는 숭고함. 이러한 것을 가만히 생각하던 때가 있었는지 물어본다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쓸모 있게 여겨졌던 적도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질문과 주제를 그리는 영혼의 움직임이 더 나아지려는 마음이고, 더 나아지려는 나를 향한 것이라면 <예술과 나날의 마음>을 마음에 두고 읽을 이유가 확실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예술과 나날의 마음>은 '나아지려는' 나의 마음을 위해 만난 하나의 기회이기도 했다.


 

우리는 시적인 것을 나날의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가. 기존 현실과는 다른 삶의 시적 가능성을 우리는 가끔 떠올리고 기억하며 회상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실현시킬 수 있는가. 그 실현이 어렵다면, 실현의 예감이라도 가질 수 있는가. 그렇게 하기란 점점 어렵게 보인다.


- 4. 사라진 낙원을 그리다 : 풍경의 시 중

 

 

<예술과 나날의 마음>에 나온 작품 중 기억에 남는 작품을 하나 이야기하자면 코로의 풍경화들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여러 미술 작품을 배우고 보아왔지만 유독 풍경화는 더 배우고 기억하기 위해 머물었던 적이 없었기에 더 관심이 갔던 것 같다.

 

그림 속 대상 하나하나를 선명하고 완벽하게 화면에 재현하려 하지 않은 코로의 풍경화가 좋았다. 흐릿하나 그 안의 감성은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한 풍경은 꼭 꿈을 꾸는 듯한 장면같아 포근하게 느껴졌다. 추억처럼 간직하고 있는 풍경을 마음속으로 떠올리면 코로의 풍경화 같은 장면을 떠올리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꼭 풍경만을 담고 보여주기 위한 작품이 아닌, 마치 그 풍경 속에서 느꼈을 고요함과 어떤 숭고한 감정도 함께 조용히 일렁이고 있는 작품이었다. 풍경 속에 드리워진 빛과 그림자를 따라 가만히 존재하는 인물의 나를 대입하게 하는, 고요한 흡입력을 가진 작품들이었다.



(2)고독, 비겐의 회상.jpg

코로, <고독, 비겐의 회상>, 1866

 

 

한 그루의 나무 곁에서 여인은 물가를 바라본다

아름다움은 외부에 있기보다는

외부에서 무엇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마음의 내부에 있다. 사물의 고요는

마음의 고요에 상응한다.

이 어울림에서 회상은 자라나고,

생활은 깊이를 더해간다.


- 273p



코로의 풍경화는 모든 것이 멈춘 듯했다. 하지만 사진을 찍듯이 순간에 붙잡힌, 그저 고정되기만 한 멈춤이 아니었다. 미미한 자연의 요소로 여겨질 나뭇잎들이 꼭 속삭이듯이 일렁이고, 흐르는 물가 속에서 흐르는 무수한 물줄기가 고요히 숨 쉬는 흔적이 머물고 있는 멈춤이었다. 이런 코로의 작품을 보다 보니 이 풍경 속에 가만히 머무는 나를 그리게 된다. 그곳에서의 나는 아무 생각 하지 않을 것 같다. 조용히 피어오르는 회상만이, 눈에 담기는 자연을 향한 관조만이 나의 주변을 이룰 것만 같다. 모든 것이 멈추었으나 존재를 증명하는 미미하나 사소하지만은 않은 움직임이 일렁이는 순간, 코로의 작품은 그 순간을 내 상상 속에서도 그려보게 했다. 동시에 그런 풍경을 일상에서 얼마나 만났는지 떠올려보기도 했다.

 

그렇게 마음에 쌓여있던 풍경을 하나씩 찾아보자면 코로의 풍경은 현대적인 삶 속에서는 얼마나 찾기 어려운 순간이고 마음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러기에 코로가 풍경화 앞에서 보고 느끼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의미가 있는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마음의 고요를 찾는 일, 빠른 속도의 일상에 잠시 벗어나 만나는 코로의 작품은 마음의 안식처였다. 그 고요 속에서 나를 찾고, 잊고 있었던 나의 평온함을 느낄 수 있는 안식처.


외부 세계가 부여하는 정의와 기준에서 벗어나 조용한 풍경 안에서 가만히 머물며 관조하는 순간은 나 자신만 남은 나를 잠시 찾아가는 시간이었다. 꼭 코로의 작품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문득 어느 풍경이나 장면 앞에서 머물며 아무 이유 없이 바라보는 순간도 그러한 시간일 것이다. 아무 이유없이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일. 외부 세계가 요구하는 논리적인 이유와 타당성이라는 틀 안에는 절대 가둘 수 없는, 그 어떠한 ‘이유’도 없이 명확하지 않아도 분명히 존재하는 영혼의 상태가 목격한 순간과 장면에 가만히 머물고 관조하는 순간은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코로의 작품 세계를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가 풍경화에서 보는 것은 그림에 담긴 자연이지만, 이 자연은 나와 무관한 물리적 현상에 그치는 게 아니다. 그것은 깊은 의미에서 나의 느낌과 정서에 ‘조응하는’ 무엇이다. 그림이 주는 인상이 깊으면 깊을수록, 화가의 그림과 독자의 감정 사이의 조응 정도는 증가한다. 내가 어떤 그림에 감동을 받는다면, 그것은 그림의 풍경이 내 마음에 알 수 없는 감정의 파문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 4. 사라진 낙원을 그리다 : 풍경의 시 중

 


이렇게 이해하자니 사람으로서 누릴 수 있는 가치가 현실 세계에만 존재하는가 질문하게 된다. 동시에 이 질문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장면을 구현하는 예술 세계가 사람에게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모든 삶에 있어, 살아가는 데에 있어 의미와 가치라는 것이 꼭 외부 세계에서만 발견돼야 하는 것인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을 코로의 작품 앞에서 느끼고 사색하는 시간은 ‘논리적인 이유’와 같은 것이 설명할 수 없는 순간과 감정의 어떤 충만함을 경험케 한다. 문득 그렇다면 예술 작품과 소통하며 일어나는 사유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인간다운 경험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여기서의 ‘인간다움’은 사람으로서 분명히 지닌 영혼이라는 것의 독립적인 움직임을 감각하고 경험하며 그를 기억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에서 꿈꿀 수 있는 것만을 쫓고 사회의 틀이 요구하는 이유와 가치만을 추구하니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일 테다. 그리고 ‘현실적인’이라는 말은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한 올바른 방식이라는 의미로 통용되는 듯하다. 그 반대의 척도에 위치한 것으로 여겨지는 예술은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어떤 프레임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어떤 기준으로 좋고 나쁘고를 따질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맥락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그 ‘현실적’이라는 의미에만 머물기에는 사람으로서 꿈꾸고 그릴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세계’와 ‘가시적으로 실존하지 않으나 분명히 느낄 수 있는 세계’가 너무도 무수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 백년의 시간을 거치며 어느 한 단어로는 묶을 수 없는 다채로움에 이른 예술 세계는 그러한 세계의 존재를 우리에게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다. 예술의 이러한 가치는 어떤 천재성이나 재능, 혁신, 학문적인 의의라는 단어가 소유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가만히 바라볼 때 일어나는 ‘아름다움’을 향한 마음, 더 나은 삶과 나를 꿈꾸는 일, 사소하나 일상에서의 힘을 일으키는 기쁨 같은 것은 그런 단어에 가두기에는 우리 모두가 기꺼이 경험하고 누려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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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에 제목과 함께 쓰여있던 발터 베냐민의 “가장 일상적인 것은 지구의 무게를 지닌다”라는 문장이 다시 보인다. <예술과 나날의 마음>을 읽으며 보아온 예술의 풍경에서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일상의 풍경에서 그럴 수 있는 것과 전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이 두 가지 풍경은 모두 ‘더 나은 삶과 자기 자신’을 꿈꾸고 있다는 것에서 한 사람, 그러니까 내가 살아가는 하나의 삶을 이루고 있었다. 현실 속일상에서 더 나은 삶을 쫓으며 잊어버린 더 나아지려는 영혼의 움직임을 예술 세계는 우리에게 알려준다. 사람을 중심에 둔 예술과 일상이 이러한 관계라면 이 둘이 만나며 이루어지는 삶은 더 온전하고 풍요로운 삶이 아닐까.

 

삶의 대부분의 시간이 특별한 것이 될 수 없다. 대부분의 우리의 일상은 우울하기도 하며 놀라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무미건조한 반복에서 흘러간다. 하지만 그 일상이 모여 삶을 이룬다는,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말 명백한 그 관계를 기억하자면 밋밋한 일상은 결코 사소한 것만이 될 수 없다. 그러한 일상이 삶을 이루는 것처럼, 살아가며 느끼고 감상하는 여러 경험과 감정도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잦은 리듬으로 순간순간 일어나는 소소한 기쁨, 짧은 감흥들과 사유, 그저 가만히 머무는 마음들이 모여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을 이룬다고 생각하면 그 사소한 감정들도 결코 사소한 것만이 되지 않는다. 발터 베냐민의 문장은 그렇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예술은 그렇게 한 사람마다의 영혼이 독립적으로 생동할 수 있는 힘을 더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예술의 풍경과 일상의 풍경은 맞닿아 독립적으로 움직이며 삶을 살아가는 나의 영혼을, 더 나아진 나를 꿈꾸는 영혼을 이끌어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살아있는 한 계속 이어질 것이다.

 


예술은 나날의 생활 속에 자리하고 있고, 또 나날의 마음속에 자리해야한다. 그것은 더 높은 현실에 대한 갈망이고,이 갈망의 바탕은 아마도 사랑일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을 향한 마음은 곧 사랑의 마음이다. 그것은 선에 대한 갈망이기 때문이다. 더 넓고 깊은 삶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도 무의미할 것이다. 선으로부터 멀어진다면, ‘영혼’이나 ‘영원’도 아마 의미 없을 것이다. 아름다움보다 중요한 것은 이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선의 의지, 즉 사랑의 마음인 것이다.

 

- <예술과 나날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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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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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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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몬
    • 나는 예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고민하던 중에 오예찬님의 글을 읽게 되었어요. 저는 여전히 예술이란 단어가 막연하게 느껴지곤 했던 것 같아요. 그것이 지칭하고 품어내는 게 너무 다채로워서 입에 담으려 할 때마다 붕 뜨는 것 같아 망설여지곤 했거든요.

      “영혼의 독립적인 움직임”이라는 책의 저자의 말이 너무 인상 깊었어요. 그보다 더 예술이 인간에게 주는 ‘무엇인가’를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질문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그리고 그러한 책을, 예술을 ‘휴식처’라 표현한 오예찬님의 표현이 인상 깊었어요. 누군가에겐 예술에 대해 사유하는 것이 숲과 같은 휴식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일상을 살아가며 잊었던 것의 이야기, 더 나아지려는 마음. 그것이 예술이라 생각하니 어쩌면 정말 예술은 우리의 삶과 가까이 있는 것 같아요. 거기에 발터 베냐민의 말까지 함께하며 일상적이고 소소한 것들에서 예술의 의미를 찾아가는 오예찬님의 문장들이 인상 깊었어요. 글을 읽으며 예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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