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블룸즈버리를 통해 본 버지니아 울프 [도서]

<블룸즈버리 일기>로 본 영화 <디 아워스>
글 입력 2020.05.08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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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을 어디서 만나고 또 어떤 분위기에서 만나는지에 따라서 그 첫인상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필자는 책을 배송시키는 것보다 직접 서점에 가거나 도서관에 가서 책을 고르고 읽고 구매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책은 오프라인에서 구하기 위해서는 영등포 교보문고에서만 찾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이번 책에 대한 첫인상은 날씨만큼이나 산뜻했다.

 



영국, 블룸즈버리, 그리고 일기


 

‘일기’라는 제목의 책을 보면서 안나의 친구 키티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가장 사사롭지만 그만큼 재미있는 게 또 다른 사람이 쓴 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읽어나갈수록, 내년 2월, 알바를 하며 차곡차곡 모아둔 돈으로 영국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은 여행을 앞둔 국문과 학생이 얻을 수 있는 최적의 여행 지침서라는 생각도 들었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해보자면 한없이 어렵고 대단하게만 느껴졌던 작가의 소소하지만 긴박했던 타국에서의 이야기들을 차분한 문체로 읽고 있자니 왠지 모를 친숙함에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영국에서의 소소한 생활 이야기도 좋았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영국의 박물관과 도서관 이야기들이었다. 미술 혹은 문학 등의 문화 예술 분야에 박학다식한 것은 아니지만 전시회 혹은 도서관을 다니면서 느낄 수 있는 그 장소만의 분위기와 차분한 공기들은 사람의 기분까지 한없이 차분하게 만들어 주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이른 아침, 시원한 커피 한 잔을 들고 정독도서관을 올라가는 기분을 아는 나는, 영국의 박물관과 도서관에 앉아 타국의 언어들이 잔잔하게 흐르는 것을 들으며 커피 향을 맡는 그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나마 상상하며 설렐 수 있었던 것 같다.

 

영국에서의 일상은 다 신선하고 흥미로웠지만 특히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있는 한국관은 신선한 충격을 안겨 준다. 한국 드라마로 시작해 이제는 BTS로까지 이어지는 일명, 한류는 영국에도 생각보다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전 세계에서 한국의 영향력은 굉장히 미미할 것이라는 편견과는 달리 많은 유물들이 있지는 않지만 ‘한국관’이라는 명확히 구분되어 있는 이름을 지니고 있는 전시관은 그 가치가 남다르게 느껴진다. 또한, 전시품들의 단순한 전시를 넘어서 ‘사랑방’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살리고자 노력한 공간의 재현은 누구나 손님으로 따뜻하게 모시고자 했던 옛 한국의 정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정식적인 허락과 교류로 완성된 한국관이라는 점에서 그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타국에 대한 이야기들을 듣고 있자니, 영국은 아니지만 생애 처음으로 외국으로 여행을 다녀오던 날이 생각난다. 프랑스의 대도시, 복잡한 거리, 바쁘게 다니는 수많은 파리의 사람들 속에서 내가 외국인이 되어 돌아다니던 경험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있다. 영국 런던은 특히 커피를 들고 바쁘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현대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서 영국을 떠올리면 ‘문학의 낭만’보다는 ‘도시의 세련미’ 가 느껴지는 곳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자욱한 안개, 흐릿한 날씨 속에서 글을 쓰고 있을 고전 소설의 작가들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으면 피터팬과 웬디가 자유롭게 날아다니던 낭만이 만연한 곳이 바로 영국이었다는 것을 여태껏 왜 떠올리지 못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울려 더욱더 환상적인 공간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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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디 아워스>


 

간단히,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영화 <디 아워스(The Hours, 2002)>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Mrs. Dalloway, 1925)>을 새롭게 구성한 마이클 커닝햄의 동명 원작 소설 <세월(The Hours, 1998)>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책 <블룸즈버리 일기>는 세 작품을 관통하는 공통점과 차이점, 상징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영화 <디 아워스>는 관계에 있어서 일방적인 희생과 배려가 얼마나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인간의 삶과 죽음, 인생의 가치와 무가치함,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은 물론 남성중심주의와 동성애 문제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광범위하고 다양한 주제들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또한, 버지니아에서 리처드로 이어지는 죽음을 통해 ‘삶-죽음-삶’이라는 생명의 연속성을 보여주며, 그 외에 등장인물과 주변인물 간의 배치를 통해 인간관계의 수많은 문제들을 간결하면서도 핵심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영화 속 세 인물은 꽃, 파티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이들의 상징성에 좀 더 알아보고자 한다. 세 인물은 영화의 처음, 서로 다른 색의 꽃과 함께 등장한다. 이 외에도 버지니아는 새의 죽음을 기리며 노란 장미를, 로라는 푸른 장미와 노란 장미로 케이크를 장식한다. 그뿐만 아니라 여성 인물들은 꽃으로 장식된 옷을 다수 입고 나온다. 처음에 이는 흔히 꽃이 여성성(여성을 상징하는 요소)을 나타내는 고전적인 상징물로 사용되기 때문에 사용된 물건일 것이라 추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여성’을 상징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특히 ‘여성’으로서의 삶에 얽매여 살아가야 했고 이에 큰 환멸감을 느꼈던 세 인물들의 괴로움을 오히려 고정적인 상징물을 사용하면서, 그 벗어날 수 없는 고리를 강하게 표현한 것 같기도 하다.

 

여기서 ‘꽃’은 ‘죽음’과도 연결되는 것 같이 보인다. 본 책에서도 언급되었듯 ‘죽음’에 큰 계기는 없다. 커다란 사고나 충격으로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지만 천천히 젖어 들어가는 심리적 압박과 스트레스는 인간을 우울증으로 이끌고 결국 죽음까지 도달하도록 만든다. 이 모습은 마치 꽃이 지는 것과 비슷하다. 시간의 지남에 따라 천천히 죽음에 도달하는 꽃은 점차 생명력을 잃어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특히나 ‘노란 장미’와 ‘파란 장미’를 사용하면서 모습은 아름답지만,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은 꽃말들이 영화 속 인물들과 겹쳐 보인다. 파란장미는 일어날 수 없는 일, 노란 장미는 이별. 어쩌면 이들은 겉으로 보이는 찬란한 일상과는 대비되는, 자신들이 꿈꿔왔던 자유가 큰 희생과 죽음, 이별과 외로움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꽃을 통해, 은연중에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여성이 마련하는 파티의 음식이 자아의 확장을 보여주듯, 파티 그 자체에서도 인물들의 상황이 명확히 드러난다. 본 책에서는 ‘파티’를 분열된 내면 의식을 연결하고 소통시키는 상징적 소재가 된다고 이야기한다. 더 나아가 파티는 한 인물 속에서 일어나는 내면 의식의 소통은 이루어지고 있지만 인물 외의 타인과는 점차 더 거리를 벌리고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욕망이 대비되어 오히려 강렬하게 드러난다. 세 여성이 준비하는 파티는 ‘타인을 위한’ 축제를 준비한다는 점에서도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 같다.


<디 아워스>를 이야기하며 페미니즘적 요소를 이야기 안 할 수 없는데 이러한 파티는 사회, 가정에서 여성들이 전통적으로 안고 살아야했던 ‘희생적인 위치’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세 여성의 삶은 파티와 마찬가지로 결국 그녀들의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삶과 정면으로 맞서....’ 라고 이야기 한 인물의 대사를 통해 죽음이 곧 스스로가 살아있는 진정한 ‘삶’을 위해 하는 행위라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증명이 된다는 해석과 맥을 이어간다. 이 책 (블룸즈버리 일기) 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바로 죽음을 회피가 아닌 능동적인 자기 결정에 의한 문제 해결로 해석하여 ‘삶’을 바라본다는 점이다. 이는 여성이 당면한 문제에 대해 ‘감성적, 감정적’인 방법의 표현으로, 지닌 의미를 폄하하지 않으면서도 이 외의 방법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없었던 세 인물들의 잔잔하지만 긴박했던 상황을 더욱 이해해 주는 듯싶어 더욱 인상적이다.

 

파티 음식의 상징성 등에 대해서는 지난 에세이를 통해 배우고 정리해 보았기에 영화 속에 언급되는 ‘동성애’에 대해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위의 인물들은 모두 ‘동성애’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여성 동성애에 대한 기존의 정신 분석학 관점을 살펴보면, 프로이드에게는 레즈비언적 욕망이 남성적 용어를 벗어나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주제이자 현상이다. 프로이트론에서 여아의 첫 번째 사랑의 대상의 대상은 어머니이지만 자신의 거세를 인정하면서 어머니에 대한 욕망을 아버지로 향하게 된다. 즉 동성애는 사랑에 대한 근본이라고 일컬어 질 수 있는데 등장인물들의 동성애적 성향은 결국 사랑이라는 근본을 보고자 하는 인물들의 상황을 상징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영화 속에서 각기 다르게 변주되는 동성과의 키스 장면은 고정된 성 정체성을 거부하고 자유를 열망하는 주인공들의 내면 의식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일반적인 시각으로는 『디 아워스』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성의 차이를 이성애와 비이성애 비이성애자(non-heterosexual) 라는 이분법적 논리에서 바라보기 쉽다. 하지만 퀴어 이론의 적용으로 등장인물들의 이해에 있어서 보다 폭넓은 시야에서 접근하여 이분법적 경계를 허물 수 있다. 즉, 일반적인 퀴어 문학 혹은 영화들은 비이성애자들이 남모르게 겪어야 하는 비애와 고통에 주목한다. 하지만 『디 아워스』는 그들의 슬픔은 표출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이것은 다원주의 입장에서 바라본 시각으로써 작가는 작품 속에서 성적 소수자들을 긍정적으로 다루고자 하였다. 결국, 동성을 사랑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그리는 것은, 사회 속에서 같은 처지에 놓인 인물을 사랑하면서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을 투영하여 스스로를아끼고 사랑하고자 했던 인물의 노력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 속 인물을 통해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 입장이라고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님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사랑도 누군가에게는 억압이 되고, 원치 않은 타인과의 관계가 이어지는 고통의 원천이 된다. 이는 인물들이 진정 원했던 사랑의 형태는 누군가에게 ‘받아야 하는’ 수동적인 사랑이 아닌 자신이 주체적으로 행할 수 있고 상대방을 선택할 수 있는 ‘능동적인 모습’ 의 사랑이 아니었을까 한다.


결국, 책 <블룸즈버리 일기>와 영화에서 주목하는 내용들은 관계와 소통에 대한 고민과 반성까지 이어진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는 ‘자기희생에서 오는 혼자만의 감내’는 단기적으로는 이상적인 소통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결국은 모두를 파괴한다. 하지만 이는 이러한 개인의 문제로만 한정할 수는 없다. ‘관계, 역할’이라는 명목하에 누군가에게 은연중에 부여했던 구조적 압박과 희생의 태도는 이들이 삶에서 찾을 수 없던 자유를 죽음을 통해 갈구하게 내몰았기 때문이다. 영화 <디 아워스>를 중심으로 한 비평을 담고 있는 이 책은 꼭 "서두를 필요는 없다. 반짝일 필요도 없다.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도 될 필요가 없다"라고 이야기했던 버지니아 울프의 삶을 이해하는 듯하다. 이러한 작가의 시선에서 영화의 처음과 끝을 이어주는 버지니아 울프의 죽음은 자기 자신이 되고자 했던 여성의 용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글을 마치며


 

“걸작이란 혼자서 외톨이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것은 오랜 세월에 걸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공동으로 생각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다수의 경험이 하나의 목소리 이면에 존재하는 것이지요.” -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中

 

그녀가 걸작에 관해 언급한 이야기를 떠올리며 소설 <댈러웨이 부인>과 영화 <디 아워스>의 가치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블룸즈버리 일기>를 거쳐서 본 버지니아 울프의 삶은 결국 다수의 경험을 그녀의 목소리로, 소설 속 인물의 삶으로 외치고 있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의 삶을 본인은 ‘자기만의 방’으라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2020년을 살고 있는 여성으로서의 ‘나’라는 사람의 공감을, <블룸즈버리 일기>의 작가의 이해를, 버지니아 울프가 살기 이전부터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모든 사람들의 경험을 대변하고자 하는 걸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장미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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