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삶의 풍경, 그 안을 유영하는 인간 - 예술과 나날의 마음

글 입력 2020.05.07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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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풍경, 그 안을 유영하는 인간


 

책의 제목 아래 쓰여있는 벤야민의 구절을 보고 주저 없이 책을 들었다. 이는 벤야민의 구절과 전면에 드러난 그림의 결합이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책의 표지의 반은 한 풍경화가 차지하고 있는데, 그 풍경화 속에는 여러 인물들이 풍경의 일부처럼 앉아있다. 자연스러운 상황을 포착한 그림은, 이들을 하나의 인간이라기보다 자연 속에서 숨 쉬는 풀과 꽃처럼 보이게 한다. 책의 중간 즈음에 '예술과 나날의 마음'이라 적혀있고, 그 밑에는 조금 작은 글씨로 "가장 일상적인 것은 지구의 무게를 지닌다"라는 벤야민의 말이 적혀있다.

 

벤야민은 주체의 경험, 미적 경험으로서의 아우라가 대상과 주체 간의 교감과 상응에서 출발한다고 주장했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예술은 감상자를 권위적인 시선으로 평등하지 못한 관계를 맺어 왔었다. 하지만 자연은 다르다. 목적 없이 피어있는 한 송이의 꽃은 개인이 어떤 경험과 지식을 쌓아 올린 것과 상관없이 그 존재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대학생 시절 내가 받아들인 벤야민은 위압되지 않고 소외되지 않은 미적 경험을 사랑할 수 있는 철학가였다. 그런 벤야민이기에 흔하고 하찮게 느껴지는 모든 자연물과 일상에 지구의 무게를 부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저자가 옮겨놓은 한 줄의 글은, 잊고 있었던 짝사랑의 얼굴을 발견한 것처럼 반가움과 출처를 알 수 없는 약간의 부끄러움을 느끼게 했다. 책을 모두 읽은 지금, 다시 책을 덮고 이 책의 표지를 보니 정말 완벽한 표지였다는 생각이 든다. 예술을 존재하는 인간의 끊임없는 노력, 일상 풍경의 관조로 이야기하는 이 책의 표지는 그 자체로 완벽한 요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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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 - 고독, 비겐의 회상

 

 

 

우리를 둘러싼 고귀한 것들과 시선 나누기


 

책은 크게 4개의 섹션(문화와 야만사이, 평범한 것들의 고귀함, 시와 미와 철학, 사라진 낙원을 그리다)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 번째 섹션인 <문화와 야만사이>에서는 다비드, 고야, 루치지코바, 바이마르와 부헨발트를 중심으로 잔혹하고 비참한 현실에서 예술과 예술가의 삶에 대해 기술한다. 다비드의 그림에서는 생명이 아닌 진리를 추구한 소크라테스를 비추고, 고야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잔혹성과 그것을 바라보는 예술가의 시선에 대해서 기술한다.


저자는 예술가의 시선을 고야가 그린 개의 시선으로 이야기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에서는 최승자의 시구가 떠올랐다. 그녀는 존재하지도 않는 시간의 뼈를 삼킨 것이 시인이라 노래했다. 그처럼 예술가는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실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삼킬 수 있는 것이다. 저 너머를 보는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는 4번째 챕터에서 한 번 더 반복된다.

 

섹션의 마지막인 바이마르와 부헨발트 부분은 하버의 비윤리적 연구로부터 시작해 나치 독일 아래에 자행되었던 문화예술의 정치적 야만성에 대해 기술한다. 홀로코스트에 관한 이야기가 첫 번째 섹션에서 자주 등장하고, 또 아주 상세히 기술되는데, 이는 독문학을 전공하고 독일에서 박사를 딴 저자의 배경이 녹아든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이 마지막 글에서 충격받았던 부분은 인류를 굶주림에서 구한 화학자 하버가 국수주의자였다는 사실이다. 하버의 발견이 실로 인간의 역사에 많은 기여를 했기에 나는 그가 위대한 신념을 가진 과학자일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저자는 이 섹션에서는 인간의 탐욕과 권력 앞에서 학문과 예술의 책임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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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댕 - 가오리

 


두 번째 섹션인 <평범한 것들의 고귀함>에서는 호퍼, 카라바조, 페르메이르와 빛, 샤르댕, 제인오스틴이 등장한다. 소개된 예술가들은 모두 특별한 상황이나 영웅이 아닌 일상과 자연을 대상으로 작품을 완성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몇몇 철학가들은 현대사회의 기술이 빠른 속도로 시공간이 사라지게 만들었다고 이야기 했다. 그의 말대로, 현실과 현실의 틈에 머무르지 않고 곧바로 가상공간으로 뛰어드는 오늘날 '평범한 일상의 한 순간'은 손쉽게 무시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섹션에서 저자는 평범한 삶을 다시 고귀함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려고 한다. 그의 말대로, 가상공간에서 나와 찬찬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평범하게 영위하는 삶은 그 자체로 위대한 면이 있다. 현대 물리학은 우리가 쉽게 흘려보내는 시간이 사실은 실시간으로 우주의 공간이 확장되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 주장한다. 우주의 원리 속에서 쌓아 올려진 시간은 모든 존재에는 역사를 불어넣는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죽어가지만,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고 있다.

 

중산층 가정의 평범한 삶과 생활 도구를 즐겨 그린 샤르댕의 <가오리>는 벽에 걸린 가오리의 넓적한 몸과 식탁 위에 어지러이 놓인 굴과 생선, 이를 응시하는 고양이, 그리고 보자기와 칼과 항아리를 표현한다. 저자는 이를 어느 장소에서나 살아남으려는 안간힘의 표현이라 표현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샤르댕의 작품은 조용하고 침착하다. 하지만 이러한 침묵은 견고한 침묵으로서,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거의 눈에 띄지 않는 표현이다. 치열한 삶의 중간 점에서 발견되는 평범한 일상의 침착함과 과묵함은 아름다움을 넘어 고귀함마저 느끼게 한다. 저자는 관조의 가치에 대해 강조한다. 그의 말대로 우리가 한 포기의 풀, 사랑하는 사람이 내는 소리에서 아름다운 음계를 들을 수 있다면, 때로 냉소하고 야만적으로 느껴진 삶조차도 영원토록 아름다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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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흐 - 슈바드리바흐 폭포

 


세 번째 섹션은 <시와 미와 철학>이다. 이 섹션에서는 '형상', '알레고리', '변용', '승화'등의 개념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시인이 반성적 관계에 그치지 않고 구성적 관계로 나아간다고 주장하였다. 시인이란 언어를 통해 단순히 삶을 되비추고 돌아보는 데 그치지 않고, 이 돌아봄 속에서 작고 사소한 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통해 현실을 기존과는 다르게 조작해나가는 것이다. 자유로운 존재는 이성을 사용하고 비판을 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실에 직면하여 이 현실이 무엇이고 현실 속 자신은 누구인지 묻는 일이며 나아가 이 물음 속에서 자기를 만들고 조직하여 변형하는 일을 자발적으로 떠맡는다.

 

저자는 멈추고 돌아보고, 잊고 외면해왔던 것들을 다시 발견하는 행위를 통해자신의 삶에서 구원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근본에는 앞서 강조한 관조의 행위가 있다. 관조적 성찰 속에서 시적 이미지가 탄생한다. 이는 상상의 공간, 예술의 세계이기도 하다. 이어 저자는 숭고의 개념에 대해 설명한다. 숭고란 압도적 규모와 크기로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고 변화시키는 힘을 지닌다. 기존과는 다른 충격 속에서 우리는 잃어버린 자아를 만나고, 이와 같은 고독한 한계체험 속에서 자아의 해방을 맞이한다.

 

네 번째 섹션 <사라진 낙원을 그리다>에서는 실낙원의 상실감을 표현한 작품을 통해 좀 더 나은 사회에 대한 꿈과 시적 비전이 인류를 어떻게 움직여 왔는지를 기술한다. 저자는 세 양치기와 여신이 오래된 석관의 글자를 살피는 푸생의 그림을 통해 유토피아의 흔적을 쫓아가면서 재구성하는 인간의 삶을 조명한다. 비단 예술가와 철학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이상화된 낙원을 꿈꾼다. 꿈꾼다는 것은 새로운 무엇을 발견하려는 갈망으로, 그 과정은 비극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행위 자체가 우리의 영혼을 충만하게 한다.

 


 

예술을 통해 지금보다 나은 내일을 희망한 미학 에세이


 

출판사는 이 책을 "예술을 통해 지금보다 나은 내일을 희망한 미학 에세이"라 정리하였다. 적절한 요약이다. 이보다 더 적절하게 요약할 문장이 생각나지 않아 리뷰의 마지막 부제목으로 설정하였다. 책의 각 섹션은 저자가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한마디, "삶은 비극적이지만, 예술과 함께라면 삶을 관조하고 나아가 변형할 수 있다."를 위해 치밀하게 쌓아 올린 것이다.

 

글 자체에 대해 개인적인 소감을 조금 보태보자면, 구성면에서나 그 발상과 표현으로서나, 탁월한 글 솜씨로써 나에게 놀라움을 준 글이다. 꼼꼼하게 짜인 아름다운 직물천을 본 것처럼, 전체적인 논리와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저자만의 아름다운 언어로 작품을 소개한다. 저자의 주장은 일관성 있게 기술 될뿐만 아니라, 각 장에서 중요시되는 어려운 철학적 개념도 어렵지 않게 녹여낸다. 가볍게 읽히지만 진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저자 문광훈이 예술을 바라보는 방식이, 그의 글에도 잘 녹아들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책은 모범적인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좋은 에세이를 만나게 되어서 기뻤다.

 

나는 에세이라는 장르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 중 하나다. 이는 오리지널리티를 상실하고 무한생산되는 에세이 장르에 대한 은근한 반발심 때문이기도 하고, 진지한 성찰 없이 남발되는 희망의 메시지가 일종의 세뇌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자신을 예술가로 지칭하고 출판하는 현상에 대해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현상에 대해서는 하나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다만, 진지한 성찰없이 남발되는 거짓된 치유의 물결에 거부감을 느낀다. '에세이'라는 것이 가볍게 읽힌다 해서, 무책임하게 쓰인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찰과 치유'라는 이름을 단 책의 내용은 결코 마음 속에서 소통될 수 없다. 내가 이토록 에세이 열풍에 예민하게 구는 것은, 이러한 현상이 마치 현대사회에서 반복되는 불통의 구조와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열풍 속에서 오리지널리티를 유지한 작품을 발견하는 것은 참 반가운 일이다. 나는 좋은 에세이를 오리지널리티의 유무로 본다. 본 도서는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한 이해와 지식과 저자 문광훈의 감수성, 즉 오리지널리티를 유지하면서도, 매우 읽기 쉽고 논리적이다. 이런 에세이의 열풍이라면,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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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나날의 마음

- 예술로 삶을 사랑하는 방식 -

 

 

지은이 : 문광훈

 

출판사 : 한길사

 

분야

인문

미학/예술철학

 

규격

148*210mm 양장

 

쪽 수 : 344쪽

 

발행일

2020년 02월 28일

 

정가 : 19,000원

 

ISBN

978-89-356-6338-5 (03600)

 

 



[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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