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에게 음악이란 무엇인가 [음악]

음악은 잔잔하게 나의 삶을 적신다
글 입력 2020.05.05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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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음악과 그닥 밀접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어렸을 적 여느 부모님들의 믿음처럼, 음악이 정서 발달에 좋다고 생각하신 부모님이 보낸 피아노 학원에서 나는 개인 연습 시간에 항상 피아노보다 피아노 건반 아래 처박힌 동전에 더 큰 관심을 뒀던 것 같다.


레슨 교재 위에 어지럽게 흩날린 음표들도, 달걀을 쥔 것 같은 모양을 유지해야 하는 손모양도 전부 지루했다. 어린 나이에도 악기연주와 나는 맞지 않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을 만큼, 나는 악기를 연주하고 다루는데 확실히 소질이 없었다. 내가 아직 동요 100선 등을 치고 있을 때 나보다 늦게 학원에 들어온 친구가 체르니를 치기 시작한 날,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초등학교 음악 시간은 언제나 내게 고역이었다. 특히 신학기가 시작된 후 첫 음악시간엔 손끝이 차가워질 정도로 긴장을 했다. 보통 그 시기에 음악 선생님은 가장 자신 있는 악기 한가지를 정해 음악 연주를 시키겠다는 발표를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자신 있는 악기가 한가지도 없었다. 피아노는 말할 것도 없었고, 리코더나 오카리나 등등 다른 아이들은 한가지씩은 척척 해내는 걸 나는 아무리 연습을 해도 실력이 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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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러한 유년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음악을 싫어하거나 음악과 접점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직접 연주하는 것을 좋아하진 않지만 오히려 나에게 없는 연주 소질을 가진 사람들을 동경한다. 매년 학예회에서는 수준급의 피아노 실력을 자랑하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이전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가도 그 친구가 정말 멋있다고 생각할 만큼, 연주에 능한 사람은 정말 반짝 반짝 빛나는 것 같다. 물론 연주를 듣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악기를 다루는 데는 흥미가 없지만, 노래를 부르는 것은 좋아한다. K-pop, 인디, 시티팝, 뮤지컬 넘버 등 장르 구분 없이 듣고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아르바이트에서 진상 손님을 만났다거나, 친구와 다툰 날 등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은 항상 노래방을 가서 스트레스를 풀만큼 소질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노래를 부르는 것은 내게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자 내 감정을 표출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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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나의 삶의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내게 외출 필수품은 단연 휴대폰과 에어팟이다. 거리를 걸을 때도, 작업을 할 때도 귀에 에어팟을 꼽지 않고 있을 때가 거의 없을 만큼, 나는 음악을 습관적으로 듣는다.


음악은 나의 상상력과 감정을 증폭시켜준다. 나는 버스를 타서 아무 생각 없이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음악을 듣는 순간을 가장 사랑한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내 눈에 담은 풍경과 귓가의 노래를 재료로 하여 상상을 한다. 나라는 사람의 일상을 떠나 잠시 다른 삶을 상상해보는 것은 언제나 꿈처럼 즐거운 일이다.

 

대학에 들어가고 바뀐 것이 있다면, 뮤지컬을 좋아하게 됐다는 사실인 것 같다. 나는 이전에는 주로 발라드나 K-pop위주의 노래를 들었다. 그 시절 나는 막연히 뮤지컬 노래는 어렵고 고급스러운 것이라는 편견을 은연중에 가지고 있었다. 중학교 시절 봤던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이 내게 어렵고 지루했었던 기억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우연한 계기로 실제로 접하게 된 뮤지컬은 생각보다 더 대중적이고 나의 취향에 맞았다. 뮤지컬 넘버에는 캐릭터의 감정이 함께 들어있다. 노래만 잘 부른다고 해서 좋은 뮤지컬 배우가 아닌 것처럼, 감정을 담아 부르는 넘버는 정말 심금을 울린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 넘버는 키다리아저씨의 ‘남들처럼’, 그리고 차미의 ‘이해해’이다.


 

 

 

키다리 아저씨의 주인공 저루샤가 처음 대학 생활을 시작하던 때의 감정을 노래한 넘버이다. 겉으로는 씩씩한 척해도 내면에 쌓아 둔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살아온 자신의 모습에 대한 실망감과 다른 아이들의 삶에 대한 부러움의 감정이 잔뜩 묻어 있는 넘버는 듣는 이로 하여금 저루샤의 삶에 이입해 보게끔 한다.


나는 이 넘버를 들을 때면 나의 신입생 시절이 생각난다. 그때의 나도 저루샤처럼 새로운 환경 앞에 초라한 내 모습에 우울감을 느끼곤 했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전부로 여겨졌던 중고등학생 시절과 달리 대학교의 동기들은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안에서 나만 길을 잃고 떠도는 신세 같았다. 그래서 뮤지컬을 좋아하게 되고 이 넘버를 처음 들었을 때 저루샤의 감정을 알 것 같았다.

 

 

 

 

뮤지컬 차미의 주인공 차미호가 자신의 SNS속 차미를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의 넘버이다. 모든 것이 완벽하고 매력적인 차미는 미호에게 자신이 대신 차미호의 삶을 살 것을 제시한다. 이 넘버에서는 초라한 자신의 모습과 눈앞의 기회 사이에서 갈등하는 미호의 감정이 잘 드러난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을 마음에 품고 살아갈 것이다. 그 모습과 실제 자신의 모습 사이의 간극에서 느끼는 실망감과 우울감은 누구나 겪어보았을 것이다. 차미의 ‘이해해’ 넘버는 그래서 내게 공감 가고 인상적이었다.

 

음악은 이렇게 나의 삶을 잔잔히 적셔가고 있다. 삶 전체를 바꾸어 버리거나 영감을 주지는 못해도, 일상을 조금 더 생기 있게 살아가기 위해서, 지루한 작업을 견뎌내기 위해서 나는 항상 음악을 찾고 그럴때마다 음악은 내 곁에 존재해왔다. 가랑비처럼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음악은 내 삶을 적시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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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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