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콘(icon), 그 화려하고 신성한 세계로 [시각예술]

글 입력 2020.05.02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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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러시아 예술의 정수, 이콘


 

우리가 알고 있는 러시아 예술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다음과 같은 것들이 생각날지 모른다. 백조의 호수, 샤갈, 칸딘스키, 차이코프스키,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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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 말한 것들은 다 19세기 이후의 작품 또는 인물들이다. 국가로서 고대 러시아가 처음 세워진, 루시(고대 러시아 도시국가를 가리키는 말) 건국을 기준으로 잡아도 천 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는 러시아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예술은 최근 2백년 사이의 것들이다. 그리고 앞서 말한 것들은 유럽의 예술사적 흐름을 따르고 있는 것들이다. 유럽의 발레, 유럽의 화풍, 유럽의 소설 형식…. 즉, 이것들은 러시아가 유럽 문화 받아들인 이후에 생긴 것들인 셈이다.


러시아는 18세기를 전후한 표트르 대제의 서구화 정책 이전, 러시아는 유럽의 가톨릭과는 구분되는 정교 문화권 아래 있었다. 이때까지 러시아는 ‘유럽 국가’로서의 정체성이 적었고, 따라서 그래서 유럽과는 별개로 독자적인 역사 및 문화 발전을 해오고 있었다.


루시가 시작되고 초창기 988년 블라디미르 대공이 그리스 정교를 받아들이고 난 후부터 표트르 대제의 서구화 정책 이전의 칠백여 년동안, 러시아 문화의 주축이 되었던 것은 바로 정교이다. 그러한 러시아 정교의 토대 위에서 형성된 러시아 문화예술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정교의 성상화, 이콘(икона, ico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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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카잔의 성모>, 제작시기 불분명 / 안드레이 루블료프, <성삼위일체>, 1411 혹은 1425-27 / <블라디미르의 성모>, 12세기 / 시몬 우샤코프, <최후의 만찬>, 1685




2. 이콘이란?


 

이콘은 동방 정교의 성상화를 가리킨다. 러시아의 이콘은 대개 캔버스 위에 금박을 입히고 템페라 화법에 의해 판화로 제작하며, 성경 속 이야기, 성모, 그리스도, 선지자들 등을 그린다. 예수가 살아있던 당시 그리스에서 최초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존 최고 이콘은 6세기 제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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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원근법의 기본 원리

 

 

이콘의 기본적인 표현 기법은 우리에게 익숙한 근대의 회화 기법과는 조금 다르다. 이콘은 기본적으로 성스러운 세계를 담아야 했고, 당시 사람들은 신성한 세계의 원리는 인간 세계의 원리와 전혀 달라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따라서 이콘은 속세와 다른 시간, 공간, 행동이 지배하는 신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그림 속 대상이 우리를 쳐다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역원근법(reverse perspective)과 정적인 상태에서 대상의 모든 면이 다 보이는 등축 추상법(axonometric projection)을 기초로 하고 있다.

 

 

 

3. 보다 화려하고 인간적인 러시아 이콘


 

비잔틴 이콘이 무채색톤의 어두운 톤을 특징으로 하고 금욕적이고 절제된 정조를 띠고 있었다면, 러시아 이콘은 보다 밝고 화려한 색채를 쓰며, 대상의 형상에 있어 보다 인간적인 모습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인물의 형상이 이상적인 비율이라기보다는 위아래로 다소 잡아 늘린 듯 길쭉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도 특징적이다. 비잔틴 이콘과 구분되는 러시아 이콘의 이러한  화려하고 인간적인 특징들이 강화되고 독자적인 화풍을 형성하여 근대 이전 러시아 예술사의 정점을 찍는 과정이 바로 러시아 이콘 발전의 흐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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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 두 작품-비잔틴 이콘) <Икона Богоматери Кардиотисса>, 15세기 / <Икона Богоматери с Младенцем с Распятием на обороте>, 14세기/ (우측 두 작품-러시아 이콘) <티흐빈의 성모, 14세기 / <예수의 변모>, 1403

 

 

러시아의 이콘은 그리스 정교의 수용과 더불어 11세기를 전후하여 비잔틴 제국에서 유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12~13세기부터 러시아 이콘은 독자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며, 부드러운 그림체와 조화로운 색채를 특징으로 하는 블라디미르-수즈달 화파를 형성하게 된다.


14세기 무렵 비잔틴 제국의 쇠퇴함에 따라 러시아가 이전의 비잔틴 제국이 차지하던 정교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어느정도 획득하게 되면서, 러시아 이콘은 비로소 독자적 양식을 확립하게 된다. 러시아 이콘의 전성기, 모스크바 화파이다. 14세기에서 17세기에 이르는 이 시기 동안 모스크바 화파에서는 페오판 그레크, 안드레이 루블료프, 시몬 우샤코프 등 최고의 러시아 이콘 화가들이 나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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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이 루블료프, <성삼위일체>, 1411 혹은 1425-27, 목판에 템페라, 142x114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러시아 이콘 화가는 안드레이 루블료프(1360?~1428)이다. 그는 모스크바 화파의 전성기를 이룩한 화가이며, 그의 대표적인 이콘에는 <성삼위일체>가 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이제는 빛이 바래 원래의 화려하고 생생한 색채를 그대로 느낄 수는 없겠지만, 기막힌 구도로 마치 세 천사가 우리 위에 쏟아지는 것만 같은 웅장함을 표현하고, 뛰어난 상징들을 배치하여 러시아 이콘의 교과서격인 작품으로 여겨진다.


루블료프의 <성삼위일체>는 그림 속에 나타난 상징들을 읽으면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다. <성삼위일체>는 창세기의 한 장면, 어느 날 밤, 아브라함에게 잉태 사실을 알려주고자 하나님이 세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가장 먼저 세 천사가 보이고, 세 천사의 뒤로 아브라함의 집과 상수리 나무, 산이 보인다. 우리 쪽에서 가장 왼편에 있는 천사가 바로 성부이다. 이들은 마치 위아래로 잡아늘인 것 같은 길쭉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바로 러시아 이콘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나머지 두 천사가 그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아브라함이 자신들을 찾아온 천사를 대접했다는 사실은 세 천사의 테이블 위에 놓여진 하나의 잔으로써 설명되며, 이 잔은 동시에 그리스도의 희생을 의미하기도 한다. 뒤편의 상수리나무는 십자가와 생명수를 의미하고, 상수리 나무 뒤편의 산은 영적 고양과 환희 등을 상징한다. 금방이라도 쏟길 것 같은 물 하며 테이블의 이상한 모양하며, 현대 원근법의 시각에서는 이 그림을 엉터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앞서 말했듯 이콘은 성스러운 세계를 그리기 위한 이콘 만의 화법, 표현 기법을 가지고 있었다.

 

 

 

4. 러시아 문화 속에 깊이 뿌리내린 이콘


 

이콘은 그저 상류층이 즐기기 위해 제작된 고급 예술이 아니다. 이콘은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민중들에게도, 귀족들에게도 모두 매우 성스러운 의미를 지닌 성물이자 성경의 역할을 해왔다.


러시아 정교에서 이콘은 그림 그 자체로 성령의 영이 깃든 매우 신성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이콘은 러시아 정교 교회 만이 가지는 매우 특징적인 실내 양식을 낳았다. 아무리 작은 교회라 하더라도 러시아 정교 교회의 벽면은 대부분 이콘들로써 채워져 있으며, 신자들은 그 이콘들 앞에 향초를 피워놓고 기도를 드린다.


또한 지성소와 회중석을 구분하기 위해 이코노스타스를 세워놓는다. 지성소는 매우 신성한 공간이기에 평신도들은 지성소에 출입을 할 수 없다. 비잔틴 같은 경우 이 지성소와 회중석 사이를 단지 턱으로써 구분을 해 두지만, 러시아는 안드레이 루블료프 시기 쯤에 와서는 이콘을 마치 하나의 벽처럼 쌓아올리는 이코노스타스를 통해 완전히 분리를 시켜놓는다. 이콘들로 채워진 벽과 이코노스타스는 러시아 정교 건축의 화려함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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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이코노스타스 / (우) 성스러운 구석

 


또한 이콘은 신자들의 실생활에도 깊이 뿌리내린다. 정교 신자들에게는 현재까지도 ‘성스러운 구석’이라고 하여 집 안 벽면의 한 귀통이에 이콘을 걸어놓는다. 또한 평상시나 먼 길을 떠날 때에 이콘을 들고 가 매일 그것 앞에 기도하는 것을 예배드리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이렇듯 이콘은 일상의 영역에 까지 깊이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러시아 정교 신자들의 신앙 생활 속에서 떼어낼 수 없는 하나의 예술이다. 이러한 이콘의 신성성과 보편성 때문에 러시아에서는 문학 쪽에서도 이콘과 이콘 화가를 다루는 작품들도 많이 탄생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선한 이콘 화가의 타락을 그리는 고골의 <초상화>와 빼앗긴 이콘을 되찾아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레스코프의 <봉인된 천사>가 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이콘, 심지어 이콘 화가가 가진 신성성과 러시아인들이 그에 대해 가지는 정서, 러시아인의 삶 속에서 갖게 된 필수성 같은 것들을 문학 작품으로서 또다시 아름답게 그려내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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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고골, <초상화> 러시아판 표지 / (우) 레스코프, <봉인된 천사> 러시아판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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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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