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를 알아가는 법 [사람]

가장 중요한 것은, 꾸준한 경험들
글 입력 2020.04.30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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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피지기 백전백승, 나를 알고 그를 알면 백번 싸워도 백번 이긴다. ≪손자≫에서 유래한 말이다. 사실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고, 원래는 '지피지기 백전불태'라고 한다. 어찌 되었든 그 의미는 변하지 않는데, 나는 이 말의 중심이 '나를 알다'라는 것에 있다고 본다.

 

적을 알아야 이기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 내가 아닌 타인을 관찰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그러나 '나'를 안다? 나 자신을 타인을 관찰하고 알아내듯 하는 것은 말만큼 간단하지 않은 일이다. 나 자신을 판단하는 일에는 그 누구를 판단하는 일보다 주관적인 의견을 개입하기 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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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몇 년 전부터 성격 유형 검사(마이어-브릭스 유형지표, 이하 mbti), 퍼스널 컬러 테스트, 애착 유형 진단 등 여러 주제의 유형과 진단 테스트가 유행이다. 심지어 요즘은 나와 어울리는 식물, 나와 성향이 비슷한 대통령 등을 알려주는 심리 테스트들도 대거 등장했다. 이렇게 다양한 진단 테스트가 등장한 이후로, 과연 우리는 정말 우리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된 걸까?


각종 진단 테스트들은 짧게는 5분, 길게는 1시간 이상도 소요되지만 대부분이 주어진 문제에 대해 답을 고르는 것으로 10-20분 정도 걸리는 것이 가장 보통적이다. 그렇게 진행된 진단 테스트들은 명료하게 검사자의 유형을 어떠한 지표 중 하나로 나타낸다. 원래 시험이라는 것이 다 그런 것이지만, 이것은 단순히 얼마간 공부한 수학시험의 문제를 풀고 점수를 받는 것과는 다르다.

 

20년 이상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경험을 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온 '나'라는 사람을, 20분 남짓의 시간으로 진행한 테스트가 정확히 짚어낼 수 있을까? mbti의 경우, 해당 유형 성격의 특징을 알려주면서 심지어는 그에 맞는 직업까지도 추천을 한다. 그렇다면 특정 직업군에 있는 사람들의 mbti 유형은 비슷하거나 일치한다는 것이 되는 것일까.


사람은 일관적일 수도 있지만, 시시때때로 변할 수도 있다. 누구를 만나고 어떤 일을 겪느냐에 따라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누군가 나에 대해 한마디로 정의할 때에도, 그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나는 다른 사람으로 묘사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나'를 정확히 정의할 수 있는 개념은 없다. 내가 어디서 어떤 면을 가지고 있어도 나는 그저 내 이름 석 자로 존재하는 '나'자체일 뿐이다.


물론 mbti(혹은 기타 유형 검사)에 대해 비판하거나 쓸모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나도 mbti 검사를 해보고 유형에 대해 진단받은 결과, 나의 유형에 해당하는 특징들에 공감하는 것이 적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유명인의 mbti 유형을 보았을 때, 멋지다고 생각하거나 닮고 싶다고 생각했던 인물의 유형이 나와 같았을 때는 은근한 동질감이 느껴졌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동기부여가 되어 주었다.

 

그렇지만, 내가 동경하는 이의 mbti 유형이 다르다고 해서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자기 계발서가 알려주는 것을 그대로 시행할 필요가 없듯이,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지향점에 맞춰 행동하고 노력하면 된다. mbti의 유형을 내가 가진 속성 중 하나로 이해하면 되는 것이지, 나를 그 틀 안에 맞추어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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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 인사이드>라는 이름의 영화와 드라마가 있다. 주인공은 어떠한 이유로 불규칙하게 자신의 본래 외모와는 전혀 다른 이로 변한다. 각각 영화와 드라마의 주인공인 우진과 세계는 누구로 변하든 자기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고 성격도 그대로이며 같은 이를 사랑한다. 비록 외모가 달라질지라도, 그 본체의 본성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진'은 우진대로, '세계'는 세계대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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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수상이었던 마거릿 대처의 일대기를 그린 <철의 여인>. '철의 여인'이라는 마거릿 대처가 정치 활동에서 드러낸 특징이자 별명을 제목으로 하고 있지만, 영화는 그가 정치적으로 일으켰던 이슈뿐만이 아니라 그의 일생과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기록한다.

 

영화 <잡스>역시 세상을 바꾼 천재인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세상에 일으킨 혁신과 이외의 그의 일생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한 인물의 일대기를 그린 비슷한 유형의 영화이지만, <잡스>는 그의 특징으로 잘 알려진 혁신 혹은 애플을 제목에 두기보다는 그의 이름 그 자체를 제목으로 하고 있다. 결국 한 사람을 잘 알려진 특성과 누구도 몰랐을 이면까지 포괄적이면서도 정확히 표현할 방법은 그 자신이 가진 이름뿐이라는 것이다.


어떤 이가 검사를 진행하든지 한 유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결과를 이끄는 각종 유형 검사. 스티브 잡스도, 마거릿 대처도, 가상의 인물인 우진 혹은 세계도 유형 검사를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특정 지어지는 하나의 특징이 그 사람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나 자신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래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는 더더욱 쉽지 않다. 어쩌면 나에 대해 정확히 정의 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좋아하는 노래나 영화가 시시각각 바뀌는 것처럼, 나 자체도 미묘하게, 때로는 과감하게 계속해서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꾸 변화하는 나를 알아가려면 꾸준한 경험이 필요하다. 어떤 경험을 하든 나를 정확히 정의하기란 쉽지 않겠지만, 꾸준한 경험이 있다면 나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 중 하나가 위에서 언급했던 유형 검사가 될 수도 있고, 지금 하는 일이 될 수도 있고, 가끔 즐겼던 취미일 수도 있다.

 

이중 그 어떤 한 가지만으로 정의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내가 가진 것 중 하나임은 틀림없다. 결국 '지기'를 위한 방법은 더 많이, 꾸준히 경험을 하는 것이다. 어쩌면 ≪손자≫도 '지피지기 백전불태'라는 말 안에, 이런 뜻까지 함의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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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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