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행에서 남긴 사람의 흔적 [여행]

글 입력 2020.05.1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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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란 새로운 장소에 가는 것이라기 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2013년 여름, 프랑스 파리 룩셈부르크 공원이었다.


혼자 공원 벤치에서 바게트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사람 구경중이었다. '유럽답게' 돗자리 없이 잔디에 큰 개와 같이 누워 있는 사람, 조깅하는 검정색 머리 한가닥도 없어보이는 할아버지, 그리고 인생샷 찍는 여행객으로 보이는 커플 등이 눈 앞에 펼쳐졌다.


그러다가 내 옆에 한 머리두건을 쓴 수녀님을 마주치게 되어 이야기를 하게 시작되었다. 여행하면 이렇게 낯선 사람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대화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알고보니, 그녀는 나처럼 잠시 파리 여행 중이었다. 나는 스페인 일정을 며칠 앞두고 있었고 난 파리지앵(Parisien)들을 구경하며 파리의 정오의 따스한 햇살을 마음껏 누리고 있었다.

그 수녀님은 슬로베니아에서 왔으며 다음 일정이 아프리카에 한 작은 나라라고 했다. 아프리카에 가서 선교 활동을 하러 간다는 그녀의 눈은 마치 놀이동산을 앞두고 설레는 아이의 눈빛 같이 빛났으며, 의열단만큼이나 굳은 의지와 사명감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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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이었던 나는 이해를 못했다.


 

아니 그보다 오히려 인생을 충분히 '재미나게' 못살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왜 굳이 열악한 환경에 가서 고생하는지, 왜 수녀의 길을 택해 물질적 풍요와 명성을 포기해야만 했는지. 그 당시 수녀님과 각자의 삶에 대해 나눈 1시간 가량의 대화에서 난 절반 이상을 불평과 불만만 쏟아냈었다.


여행 비용을 거의 부모님이 도와주셨고, 난 누군가를 책임지어야할 가장도 아니었고, 직장인도 아닌 한량한 어느 한 대학생의 여름방학이었는데 뭐가 그렇게 불만이 많았는지 모르겠다. 반면, 그녀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해야겠다는 커다란 꿈 이야기가 전부였다. 테레사 수녀와 같은 사람이 내 앞에 있기에 연예인 보듯 신기하게 쳐다봤을뿐이었다.

 


 

"언젠간 꼭 수녀님 뵈러 슬로베니아 갈거예요!"


 

한시간가량 대화 끝에 이제 샌드위치를 다 먹었고, 그녀는 이제 가봐야한다고 했었다. 뭔지 모를 좋은 느낌이 들어서 막연히 친해지고 싶었다. 그녀가 직접 만들었다는 묵주 팔찌를 받고서는 나는 "언젠간 슬로베니아 꼭 가겠다"며 외쳤다. 그녀는 그저 옅은 미소를 짓고 대답도 안하고 자신이 갈길을 갔다. 마치 다시 만날 일이 없다는 듯이 말이다.


지금도 아프리카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을지, 아니면 다시 유럽으로 돌아갔을지 궁금하다가도 그녀가 실재한 인물이었는지도 의문이 날 때가 있다. 그날의 사진도, 기록도 없기 때문이다.


그저 그가 마지막으로 준 묵주팔찌만이 유일하게 그녀가 존재했다는 증거가 된다. 애니메이션 영화 <폴러 익스트레스(Polar Express)>에 보면 소년 주인공은 북극에서 산타 클로스와 환상적인 세계에서 꿈 같은 밤을 보낸다. 그는 다음날 그는 산타클로스가 준 선물을 보면서, 그 밤이 ‘한 겨울 밤의 꿈’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누군가와 추억은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희미해진다. 미화되기도 하고 과장되어 해석이 된다. 잊혀지고 싶지 않은 추억을 붙잡고 싶을 때, 다행히 서로 주고 받던 물건이라도 갖고 있으면 안심이 된다. 꿈이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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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남긴 기억


 

지금도 그녀는 그런 삶을 살고 있을까? 그럴 것 같다. 그 때 이후, 무언가 나의 욕심으로 인한 꿈을 좇을 때마다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의 욕심과 욕망을 거두고, 다시 한번 '이게 정말 나와 내 주변과 세상을 위한 선택일까?'라고 다시 되묻기 시작하였다.


그녀를 만난 것은 고작 한시간이었지만, 타인과 함께, 그리고 타인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 굉장히 가치있는 삶이 될 수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다. 그 삶이란, 나를 버리고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만족을 위해서나 보여주기식의 베풀기보다 훨씬 높은 차원이다.


여행의 기억은 사람뿐인것 같다. 그 장소는 잊혀지지만, 사람이 남긴 마음속의 자취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녀의 눈빛은 지금도 눈 앞에 아른거린다. 다음 여행 갈 때, 어떤 사람을 마주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만나게 되면 나도 은은한 향을 남길 수 있는 자취를 꾹 도장 찍고 돌아오고 싶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나도 작은 선물 하나 건네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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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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