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후 세계에 천국이 있다면, 그곳은 ‘굿 플레이스’ [드라마]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글 입력 2020.04.28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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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굿 플레이스'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드라마 ‘굿 플레이스’를 시청한 후, 드라마를 관통하는 의미 있는 질문 3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번 글에서는 이 3가지 질문에 대해 하나씩 다루어 보려고 한다.

 


        

‘사후 세계’가 존재한다면, 그 모습은 무엇이어야 할까?


 

나는 오래전부터 이 질문에 사로 잡혀 있었다. 인간은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 죽음 이후의 삶이 존재할까? 어쩌면 죽음 이후에 어떠한 다른 형태로든 삶을 이어 나간다는 것이 모순이라 생각해 사실 나는 사후 세계를 믿지 않았다.


‘굿 플레이스’를 보고 그 생각에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 나는 과학적 증명 없이 막연히 묘사된 사후 세계를 믿지 않는다. 하지만, 사후 세계가 존재해야 한다면, 그곳은 ‘굿 플레이스’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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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죽음이 무서웠다. 그것의 존재를 지각하기 시작한 지점은 언젠가는 내 주변 사람들이 더 이상 내 곁에 있어줄 수 없을 날을 생각하고 나서부터였다. 그 생각은 꼬리를 물고 언젠가는 나의 존재도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에 나를 떠밀어 놓았고, 두렵다 못해 허무감을 느끼는 날도 많았다.


그래서 사후 세계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다. 적어도 사후 세계가 있다면, 내 삶이 여기서 끝난다는 불안감과 두려움, 허무감이 아닌 사후 세계에서의 삶에 대한 기대감이나 올바른 삶에 대한 열정으로 살 수 있을 테니까.

 

드라마 ‘굿 플레이스’가 그려가는 사후 세계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그 곳이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열정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굿 플레이스와 배드 플레이스는 막연히 긍정적이고 환상적인 공간도 아니며, 죽기 전 살아온 삶에 값을 매기는 것이 아닌, 그 사람 자체의 값에 따라 굿 플레이스의 자격이 주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죽기 전 삶과 분리되어 사후의 새로운 삶에서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나는 현실에서 좋은 삶을 산 사람이 무조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삶은 그가 가지고 태어난 환경, 경험한 것에 따라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선천적으로 좋은 환경과 조건을 가지고 태어나 어려움 없이 자란 사람과 좋지 못한 환경에서 역경을 겪으며 살아온 사람에게 같은 '선한 행동'을 요구하는 것은 상당히 불공평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굿 플레이스’가 후반부에 제시하는 한 사람의 삶에 대한 가치를 매기는 방식이 인상깊었다.

 

 

 

나는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살았을까?


 

사실 살면서 이 질문을 되새기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지금 내 행동이 미래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려하지만, 나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나아가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고려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모두 어느 정도 이기심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때로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필수적인 방어막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하며 웅크리고 살다가 때때로 나 자신이 곪아 가거나 자신에게 있어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치는 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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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내가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보는 일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는 이타적인 행동으로 원만한 사회를 꾸려 가기 위해서는 필요한 미덕이다. 하지만, 드라마 ‘굿 플레이스’의 주인공들이 밝혀 낸 것처럼, 한 사람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의 파장은 매우 예측 불가능하고 때로는 그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여기, 마트에서 토마토 한줄을 산 사람이 있다. 그가 구매한 토마토는 사실 악덕 업주가 불법 노동력을 착취해 만들어낸 것이었다면, 그 사람이 토마토를 구입한 행위는 결과적으로 세상에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친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살아가면서 내가 한 행동의 영향을 일일히 신경 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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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굿 플레이스’를 통해 깨달은 점이 있다면, 그럼에도 그 행위의 의도에는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이다. 나의 행동 하나 하나의 영향력에 대해 일일히 고려할 수 없다면, 그 행동을 하게 된 의도만큼은 신중해야 한다.

 

다시 이전의 사례로 돌아가 보면, 그 사람이 토마토를 구입한 행동의 의도가 아픈 친구를 위해 요리를 해주기 위해서였다면, 그 행동의 영향은 비록 좋지 못했더라도 그사람의 행위를 비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 할 때, 죄책감이 들 때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결과 보다는 의도가 어땠는지 먼저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은 자세라는 생각이 든다.

 

 

 

남에 대한 것을 제외하고 ‘나’에 대해 정의한다면?


 

나는 이 질문만큼 어려운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나’를 정의할 때 남들과의 관계, 남들과의 소통에서 얻어낸 직위를 빼놓고 온전히 자기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나만 해도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일이 있을 때 친구, 가족 등 지인과 나와의 관계, 혹은 다니는 학교나 학과 등을 제외하고는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을 만큼 내 삶에서 ‘나’를 ‘남’을 배제하고 정의 내리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당연한 일이다. 세상을 혼자서 사는 사람은 없다. 얕고 넓은 관계를 선호하는 사람, 깊고 좁은 관계를 선호하는 사람 등등 다른 이들과 맺고 있는 관계는 저마다 다를지 몰라도, 그 누군가와의 관계도 맺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드라마 ‘굿 플레이스’속 주인공들이 배드 플레이스에서 서로를 괴롭히며 불행으로 이끌어 갈지 언정, 몇 번의 리플레이를 해도 지독히 얽히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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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굿 플레이스’의 주인공들은 함께 시너지를 발휘하며 결국은 각자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서로를 도왔다. 이들이 모든 기억을 잊고 죽기 이전으로 돌아갔을 때, 죽음의 충격으로 ‘선한 사람’이 되고자 했던 초기의 다짐과는 다르게, 다시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서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은 그렇다. 갑자기 모든 관계에 의심이 들고, 때론 혼자만의 굴속으로 파뭍히고 싶은 생각이 들어도, 나의 삶은 누군가와의 관계를 통해서 정의 내리고 이어갈 수 있으며, 그 관계를 통해 나를 발전 시킬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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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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