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라는 말은 한물 지나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 사태로 공동체를 위해 개인의 욕구를 자제하는 풍토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하나의 예의범절로까지 통용되는 코로나로 인한 공동체주의는 사회 전체가 구성원 개개인들만의 방식으로, 그러나 서로에게 피해가 될 행동은 자제하며 움직이는 한 팀이라도 된 듯한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착시는, 강하고 자연스럽게 보일수록 코로나 사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으로 보인다.
그런데 공동체란 무엇일까? 내 욕구를 억누를 가치가 있는 것이 맞을까?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2를 통해 공동체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공동체에 대한 생각을 위해 스토리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로켓이 아이샤로부터 배터리를 훔쳐 아이샤 패거리들로부터 쫓기는 절멸의 귀로에 서게 된 가디언즈들은 한 행성에 정박한다. 거기서 스타로드의 친부를 만나 스타로드, 가모라, 드랙스는 그의 행성 에고로 따라가게 되고 나머지 일행은 남게 된다. 내분이 일어난 스타로드의 양아버지 욘두 패거리에게 붙잡힌 나머지 일행 로켓과 그루트는 내분 때문에 세력이 사라진 욘두와 함께 비참한 신세가 된다.
한편 가모라는 아이샤의 행성에서부터 동행한 친동생과 화해하고 에고 행성의 넘쳐나는 백골에 위협을 느끼며 스타로드를 찾는다. 스타로드는 이미 모든 행성에 영생을 위해 자신의 자손을 남긴 친부 ‘에고’에게 힘을 빼앗기고 있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에고가 어머니를 죽인 사실을 알게 된 스타로드는 각성하고 욘두와 함께 있던 나머지 일행도 동참하여 힘을 모아 에고를 처단한다. 욘두는 하나밖에 없는 우주복을 스타로드에게 입혀주며 생을 마감한다.
초반의 갈등에서 공동체의 위기가 거론되고 심지어 분리되어 서로가 곤경에 처한지도 모른 채 우주를 부유하게 된다. 하지만 친자매, 양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관계가 순차적으로 다져짐에 따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가디언즈들의 관계 정의가 합당해진다. 진짜 가족, 애매한 가족, 혈족이 아닌 공동체 가족이 동일시되며 결국 공동체와 친가족은 동등할 만큼 그 친밀성이나 의존 정도가 비등하다는 등가공식이 완성된다. 이는 그룹 내 가시적으로 드러난 종족적 다양성이 포용되는 결정적 단계이다.
이들 가족 같은 공동체가 내분이 일어난 욘두의 공동체와 다른 것은 위계와 이익에 따른 질서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가디언즈들의 공동체 구성원 개개인은 무질서한 듯 보여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다. 가디언즈들은 개개인의 이익을 위해 무질서하게 행동하지 않고 탐욕스럽게 위계질서를 만들고 무너뜨리는 것을 반복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서로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 로켓이 배터리를 훔친 이유는 개인적 목적 때문이 아니라 우주선을 수리하기 위해서였다. 우주의 존재들을 거시적으로 본다면 이들도 마찬가지이다. 가디언즈들의 존재방식은 스타로드의 친부 에고가 자신만의 영생으로 파괴하려 했던 우주의 다른 많은 존재들이 존재하는 방식과 이 지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이렇듯 우주의 존재들은 서로에게 아무 피해를 끼치지 않는 것과 달리 자신의 입으로 신 중 한 부분, 즉 우주의 한 존재라고 말하는 에고는 다른 우주의 존재들에게 소멸이라는 악의적인 과업을 부여한다. 우주적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만을 중시하는 그는 부성애를 동반하는 자식을 낳는 행위를 부정하고 자식 낳기를 온전히 에고 퍼뜨리기로만 이용한다.
스타로드의 정체성이자 라디오 음악을 많이 알았던 어머니를 의미하는 워크맨을 부서뜨리는 것으로 그의 아버지로서의 자신 부정하기는 정점에 도달한다. 이렇듯 영화는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것은 원초적인 부자관계를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부정(父情)의 부정(不正)은 자신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욕망에의 부정 없는 믿음으로 귀결된다.
바꿔 말하면 계속된 그의 욕망이 모든 것을 시작했다고도 할 수 있다. 심지어 그가 우주의 시초였고 모든 것들의 탄생을 지켜봤으며 생명체를 설계했다는 설정이 그의 입을 통해 설명된다. 그러나 그런 그도 신의 일부라고 밖에 정의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는 모든 것의 창조를 관장했듯 자연스레 소멸을 관장하기를 욕망한다.
비정상적인 거대한 욕망 속에서 비춰지는 것은 그의 대척점에 있는 우주적 공동체와 가디언즈들의 공동체이다. 재해와도 같은 비대한 욕망에 대항하는 작은 힘처럼 보이는 그들은 여느 영화들이 그렇듯 공동체의 힘을 보여주며 막을 내린다.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보여지는 캐릭터들의 개성있는 특성이 이 힘을 뒷받침하는 것은 덤이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든 영화 속에서 힘없이 우주에 흩어져 있는 생명체들은 자신도 모르게 불특정 다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이들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런 절망의 상황에 자신들만의 유대감이라는 힘을 가진 가디언즈가 힘을 발휘해주었다. 코로나19라는 예측 불가능한 비대한 재해 속 사회는 불특정 다수의 우주 속 소멸 직전의 존재들처럼 위태로웠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라는 영화 속 가상의 공동체를 사회적 유대감의 상징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들에 의해 구출된 출신 행성이 다양한 우주의 시민들처럼 사회적 유대감을 통해 비정상적인 재해 속에서 사람들은 안정을 되찾아가도록 노력할 수 있었다. 공동체적 유대감을 약간은 지닌 채 이번 코로나 사태가 가디언즈들의 사회적 유대감을 통해 통쾌한 복수를 하듯 지나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