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배달의 민족 탈출하기 [문화 전반]

자발적 불편함을 즐겨야 할 때
글 입력 2020.04.22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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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여행 온 사람들 중 대부분은 며칠만 지나고 나면 이렇게 말한다. "한국은 정말 살기 편한 곳이야."


무엇이든 손쉽게 얻고 가장 빨리 얻을 수 있는 곳, 대한민국의 중심인 서울의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하고 누구든지 한 번 길들여지면 쉽게 떠날 수 없는 곳이다. 어디야 안 그렇겠냐마는 돈만 있으면 한국처럼 살기 좋은 나라가 없다고들 한다.


어느 정도 돈만 있다면 (물론 상대적이지만) 아주 적은 노력으로도 갖고 싶은 것의 대부분을 얻을 수 있다. 오히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게 될 정도로 온갖 물건들과 각종 서비스가 넘쳐흐르는 곳에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매일매일 새로운 것들이 생겨나는 곳.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소비와 생산의 무한 사이클 궤도에 들어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곳에서는 우리가 숨 쉬며 하는 모든 행위들이 어쩔 수 없이 자본주의적 소비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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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onluu

 

 

편한 것은 너무나도 쉽게 익숙해진다. 더구나 큰돈 들이지 않고 편리함을 누릴 수 있는 상황이라면 누구든지 그 익숙함에 길들여진다. 하지만 아쉽게도 무엇이든지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편리함으로 인한 유익은 정말 달콤하지만 그 부작용은 생각보다 파괴적이다. 나에게 있어서 가장 궁극의 편리함은 바로 '배달의 민족'이었다. 대략 고등학생 때부터 생겼던 습관 중 하나가 주마다 최소 한 번 이상 배달음식을 시켜 먹는 것이었는데 편하다는 이유로 가끔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습관이 돼서 몇 년째 지속되고 있었다. 그치만 주변을 보면 배달의 민족이 나만의 고질적인 습관은 아닌 것이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몇 번의 손가락질이 가져다주는 편리함이 도리어 불쾌함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배달 음식을 자주 먹다 보니 자극적인 음식에 길들여져서 점점 몸이 병드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더구나 딱히 배고프지 않은데도 습관처럼 배달을 시키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문제를 느낀 것은 바로 배달 포장으로 인한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이 상당히 많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면서부터였다.


일주일 동안 쌓인 쓰레기들을 분리수거하면서 나는 그 양이 도저히 3인 가정에서 배출된 것이라고 하기 민망할 만큼 많다고 느꼈다. 그렇게 하나하나 쓰레기들을 떨쳐냄과 동시에 말로 할 수 없는 찝찝함과 일종의 죄책감을 느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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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위크

 

 

실제로 우리나라는 플라스틱 배출량이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한다. 연간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이 98.2kg나 된다. (2016년 기준) 미국, 프랑스, 일본보다도 높은 수치다. 배달 앱 시장이 발달한 만큼 발생하는 일회용품 쓰레기들도 증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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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위크

 

 

이런 현실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이 사실에 대해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알고 있더라도 크게 경각심을 갖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어쩌면 이런 현실적인 결과들보다 가장 소름 끼치는 사실은, 바로 우리가 소비하는 것들이 어디에서 어떤 식으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전혀 관심도 없고, 무지하다는 사실 그 자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너무나 편하고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편리함은 우리를 눈멀게 한다.

 

당신이 오늘 저녁으로 시켜 먹은 치킨이 어느 나라에서 언제 도축된 닭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혹은 방금 국을 먹은 플라스틱 용기에서 검출되는 환경호르몬에 대해서, 비 오는 날 저녁 내가 시킨 소중한 햄버거를 제시간에 전달하기 위해 배달원이 신호위반을 해야만 하는 사실에 대해 전혀 아무런 의문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은 소비자로서 우리가 상당히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증거다.


우리가 소비하고 경험하는 물질들의 배경을 이해하게 된다면 더 이상 배달의 민족이 편리함으로만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무심코 얻는 (그것도 아주 싼값에)  편리함 속에 어마어마한 희생과 노동이 따른다는 것을 안다면, 더 이상 예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소비할 수 없게 된다.


배달 문화를 아예 불매하자거나 편리함을 배척하자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편리함을 가장 현명하게 사용하는 것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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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뉴스

 

   

그렇게 나는 배달의 민족을 삭제하는 것을 시작으로, 조금씩 일상 속의 자발적 불편함을 즐기고 있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생각보다 나는 이 민트색 앱에 아주 잘 길들여져 있었다고 느낀다.


가끔 정말 충동적으로 앱을 다운받고 오늘 하루만 시켜 먹자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충동적 한 끼를 위해 들이는 많은 사람들의 노동과 희생,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자원들을 떠올리면 그냥 집에서 밥해 먹는 게 속 편하다. 그렇게 직접 밥을 차려 먹고 나면 무척이나 뿌듯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항상 느끼는 거지만 집밥이 더 맛있다.

 

편리한 것들이 현재 우리 삶을 병들게 하는 습관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시작하면, 내가 무심코 누리고 있던 것들에 대해 조금은 불편한 시각을 갖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자발적 불편함이 아주 사소한 것으로 시작될 수도 있다.


나에게는 그것이 배달의 민족에서 탈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만의 자발적 불편함을 꽤나 오랫동안 즐기고 있다.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다들 자기만의 자발적 불편함이 가져다주는 매력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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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laceforcreation

 

 

참고 기사

한국일보, 분식 3인분에 20개… 일회용품 중독된 ‘배달왕국’

시사위크, [배달공화국의 그늘] 배달음식 5번 시켰더니… 일회용품 쓰레기 ‘한가득’

 


[김지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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