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혼밥 레벨 높여주는 학원이 있다? '1인용 식탁'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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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부터 티브이를 켜면 죄다 음식 이미지들이었다. 각종 요리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쉴 새 없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내가 최근에 봤던 영상 콘텐츠를 떠올려보면 전부 이런 것들이다. 여행지를 방문해서 맛보는 지역 특산물, 요즘 날씨에 먹어야 할 봄나물, 면역력 높이는 식재료들, 우리 농수산물로 시도하는 새로운 요리 개발, 집에서 간편하고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요리. 유튜브에는 티브이에 비해 좀 더 다양한 감각을 자극하는 음식 콘텐츠들이 즐비하게 들어섰다.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을 자극하고, 더 나아가 후각과 촉각도 자극하는 듯하다.
‘먹방’, ‘혼밥’ 등의 단어는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하던 것처럼 익숙하다. ‘먹방’이 처음 등장했을 때에는 ‘도대체 다른 사람이 먹는 걸 왜 보느냐’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먹는다는 행위’와 ‘음식’은 오로지 ‘나’를 통해, ‘나의 미각’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때로 타인의 이미지를 바라보는 것으로 충족되었고 ‘보는 것’으로, ‘듣는 것’으로 확장되었다. SNS가 발달하면서 특히 음식의 이미지가 중요해졌고, 내가 먹기로 선택한 음식은 곧 나를 나타내는 이미지가 되었다.
당신이 먹는 것이 바로 당신이다.
(You are what you eat.)
- 루드비히 포이어바흐
Ludwig Feuerbach
나의 경우 채식을 시작하면서 삶을 이루는 여러 부분이 바뀌었다. 내가 만들어내는 나의 이미지는 새롭게 재정비되었다. 나는 때로 소수자로 불리기도 했다. 내가 먹는 음식은 곧 내 정체성을 뜻했다.
인간에게 먹는다는 행위는 먹는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산업이 발달하면서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을 찍어냈고, (상품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방대한 양의 음식은 그냥 버려졌다. 산업혁명과 동시에 우리 삶에 침투한 자본주의는 상품의 가치, 곧 상품의 이미지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수많은 광고들이 음식에 새로운 이미지를 덧씌웠다. 멸치와 우유는 칼슘의 상징, 고기는 단백질의 상징이 되었다. 그것들은 영양학적 프레임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프레임으로도 작용했다.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일종의 치유였을 것이다. 상품의 이미지를 걷어내고, 땅과 물에서 자라난 이들의 숨을 보게 한다. 자라나고, 열매 맺는, 오롯이 나를 위한 노동이 결합된 먹는 행위를 봄으로써 본디 먹는다는 의미와 생명이라는 단어의 연결점을 느끼게 된다.
직장생활 9개월 차, 갓 신입사원 딱지를 뗀 인용은 회사에서 이유 없이 따돌림을 당한다.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어서 나름 노력을 하지만 아무도 인용과 밥을 먹으려 하지 않는다. 의기소침해진 채 매일 꾸역꾸역 혼자 밥을 먹던 인용은 결국 ‘혼자 밥 먹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는 학원에 등록하기에 이른다.
짜장면, 파스타, 한정식까지는 혼자 먹겠는데… 고깃집에서 고기를 혼자 구워 먹기는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런 인용 앞에 혼자 먹기의 달인이 나타난다.
‘혼밥’이라는 단어는 이제 신조어가 아닌 듯하다. 어느새 등장한 이 단어는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것처럼 익숙하다. 취업이나 학업 등의 이유로 혼자 밥을 먹는 학생들이 많다는 이야기는 뉴스 인터뷰나 기사로 종종 등장하곤 했지만, 이제는 그리 특이한 일도 아닌 것 같다. ‘혼밥’에는 단순히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것 너머의 의미가 있다. 이 단어가 처음 등장했을 때에는 이들이 시간, 인간관계, 경제적 여유가 부족하다는 이미지가 있었다. 그래서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것은 연민의 눈길을 받기도 했다.
물론 이제는 여러 이유로 혼밥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부정적인 눈길도 줄어든 것 같다. 그렇지만 아무리 익숙해진 단어라 해도, 여전히 어딘가 주위를 살피게 될 때가 있다. 혼밥이 가능한 장소와 불가능한 장소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주눅이 드는 장소가 있다. 혼밥에는 소위 레벨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다. '인용'도 그런 이유로 학원을 등록했을 것이다. 학원에서 '인용'이 이루고자 하는 건 뭘까? '혼밥'의 노하우일까,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것일까, 아니면 진정한 맛의 즐거움을 찾는 일일까? '인용'은 그가 바라는 대로 결국 '혼밥'의 달인으로 재탄생할 수 있을까?
<1인용 식탁>은 윤고은의 동명 단편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2010년 원작 발표 당시 생소했던 ‘혼밥’을 가르쳐 주는 학원이라는 기발한 소재로 주목을 받았다. 원작이 발표된 지 10년이 지난 2020년 현재 ‘혼밥’은 평범한 식문화로 자리 잡고 있으나 무리와 떨어져 홀로 하는 식사를 유별나게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따라 다닌다.
<1인용 식탁>은 혼자하는 식사와 함께하는 식사가 동등한 식탁으로 공존할 수 있을지 묻는다. 한 식탁에서 여럿이 함께 하는 것만이 아니라 수 없이 많은 한 사람의 식탁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공존이 아닌지 질문한다.
각색은 2009년 대산대학문학상 희곡부문을 수상하며 등단 후 여성과 청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써 내려가는 극작가 이오진이 맡았다. 연극, 뮤지컬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두각을 나타내는 연출가 이기쁨이 연출로 참여해 복싱 움직임을 소재로 특유의 역동성과 리듬감을 살린 리드미컬한 무대를 보여줄 것이다.
두산아트센터는 <두산인문극장 2020> 주제를 ‘푸드(FOOD)’로 선정했다. 두산아트센터가 2013년부터 시작해 8년째 진행하는 ‘두산인문극장’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과학적, 인문학적, 예술적 상상력이 만나는 자리다. 2013년부터 빅 히스토리: 빅뱅에서 빅데이터까지, 불신시대, 예외, 모험, 갈등, 이타주의자, 아파트까지 매년 다른 주제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현상에 대해 근원적 질문을 던지며 함께 고민해왔다. 2020년에는 ‘푸드 FOOD’를 주제로 5월부터 7월까지 사회학과 인문학, 과학 등 각 분야에서 강연자를 초청하는 강연 8회 및 공연 3편을 진행한다.
공연개요
두산인문극장 2020: 푸드 FOOD
연극 <1인용 식탁>
일시 2020.5.6(수) ~ 5.23(토)
화수목금 8시 / 토일 3시
*5.20(수) 4시, 8시(2회 공연)
장소 두산아트센터 Space111
기획제작 두산아트센터
각색 이오진
연출 이기쁨
출연 김시영 윤성원 이새롬 류혜린 이화정 허영손 김연우
원작 윤고은 「1인용 식탁」, 『1인용 식탁』(문학과지성사, 2010)
창작자 소개
각색 이오진 (극작가•번역가•연출가/ 페미니스트극작가모임 호랑이기운 대표)
"누구나 혼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라 모두가 떠나고 어쩔 수 없이 혼자 남겨지는 일 말이다. 누구에게나 제 몫의 식탁이 있다. 함부로 당신의 식탁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드문드문 당신의 안부를 물으며 살고 싶다. 소설 「1인용 식탁」은 나와 멀지 않은 이야기라 작업을 하는 동안 즐거웠다.연극 <1인용 식탁>을 보는 관객들도 즐거우셨으면 좋겠다."
연출 이기쁨 (연출가/ 창작집단 LAS 대표)
"요즘은 100세 시대라니, 삼시세끼 밥을 먹는 인간은 약 109,500번의 식사를 하게 된다. 십만 번의 밥을 먹을 땐 가족과 함께, 애인과 함께, 친구와 함께, 때로는 혼자서도 먹는다. 아니, 1인 가구의 비율이 29%가 넘어간다는 통계를 보면 혼자 하는 식사가 더 많아지는 시대일지도 모르겠다. ‘혼밥’을 하는 사람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이 존재하는 건 왜일까?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것. 과연 외로움의 상징일까, 아니면 독립된 인간의 상징일까? <1인용 식탁>은 그 질문에서부터 출발한다."
[장소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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