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롱지는 색채들의 숲 -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아름다운 심상을 찾아서
글 입력 2020.04.18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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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예술의전당에서 진행되는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에 다녀왔다.

 

실은 툴루즈 로트렉 전시회를 보고 난 뒤 곧바로 직행한 터라, 다리가 많이 아픈 상황이었다. 괜히 노트북이랑 책은 가져와가지곤, 어깨도 영 아픈 것이 아무래도 온전히 관람하기는 어려울 듯싶어, 벌써 이른 서글픔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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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전시관에 들어서자마자, 전시회를 다 구경하고 나오는 한 커플의 말이 들리어온다. “어 뭐야 이게 다야? 아잇, 되게 짧네.” 아쉬움이 역력히 벤 말이다. 오호라, 그렇게 짧단 말이지. 다리도 아팠는데 오히려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말이다.

 

우선, 공간 구성이 그리 넓지 않다. 대충 설명하자면 네 공간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 공간 분리에 어떠한 기준과 원칙이 있겠다는 인상은 못 받았다. 위와 같이 설명하는 구간을 지나서는 세 공간에 일러스트들이 배치되어 있다. 그냥 편안하게 다닥다닥 전시된 아기자기한 일러스트를 따라 걷기만 하면 되는, 간편한 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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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직전에 리뷰한 로트렉 전과는 달리, 이 전시회에는 분명한 목적을 안고 찾았다. 로트렉 전은 내가 미리 어떤 목적을 안고 찾을 수 있던 전시가 아닌 반면, 일러스트 전에서는 그것이 가능한 따름이다.

 

이번 일러스트 원화전은 ‘볼로냐 아동도서전’의 핵심 프로그램이라고 하는데, 그 영향인지 전시된 일러스트들의 프리뷰에서 뭐랄까… 동심이라는 공통된 테마를 포착했다. 그와 동시에, 저곳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물씬 차오른다. 어쩌면 저기서, 내 요즘 고갈되어가는 순수한 원형 심상들을 보충해올 수 있지 않을까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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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구간으로 가는 짧은 통로에는 위와 같이, 2018년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우승자인 Vendi Vernić 특별전이 구성되어 있다. 과연, 괜히 우승한 것이 아닌 걸까. 들어서자마자 바로 매료되는 감각을 획득함에 더불어, 역시 오길 잘하였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벌써 이 정도라면 내가 바랬던바, 심상의 재료인 아름다운 이미지들에 흠뻑 젖어 나릴 수 있겠거니. 기대감이 고조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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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rated by Vendi Vernić

 

 

그림에 아예 조예가 없는 나로서는, 이를 그럴듯하게 묘사할 자신이 없다. 이 그림도, 그리고 그에서 찾은 혹은 받은 나의 감상도. 그래도 미련이 남아 억지로 억지로 해내어 보자면…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는 부분은 저 부드러운 질감에 있었다.


전체적으로 선이 크게 돋보이지 않고, 보시다시피 그림 대부분을 차지하는 풀밭은 그야말로 보드랍다. 우측 상단의 구조물과 나무들의 몸체를 제외하곤 전반적으로 선이 최대한 절제되어 있다. 쭉쭉 뻗은 곧은 선분, 구획을 엄격히 나누는 그 선분들에서 자유로우니 나 또한 어떤 해방감을 연상하는 것일까. 알 수 없다.

 

잘 모르지만, 스케치를 최대한 적게 하고 곧바로 색을 입힌 것이 아닐까 싶다. 이제 이 충분히 눈을 사로잡는 녹빛의 배경에 뒤이어, 그 안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그냥, 뭉클하고도 그리운 감상을 받는다. 그 감상은 그 비슷한 감정을 이윽고 자아내고, 나는 이런 것들을 말로썬 설명할 자신이 없다. 그냥 느낀 것으로 실은, 내게 충분하고 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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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rated by Vendi Vernić

 

 

이 그림에서도 전반적으로 유사한 감상을 받았다. 그러나 또한 무언가 다른 감상이 드는 까닭이란, 지금 찬찬히 살펴보니 뚫린 공간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이 공간 너머가 뵈질 않으니, 공간이 닫혀 있다는 직감을 가진다. 언제까지고 네버랜드에 머물 수는 없는 노릇인가 보다 나는. 너무도 필요한 휴식이지만 휴식은 분명 잠깐의 일이고, 언제나 그 너머의 하늘을 나도 몰래 나는 바라고 있는 것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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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일러스트레이터 전시에 선정될 수 있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A : 여러 자질이 있지만, 나에게 중요한 것은 이미지가 ‘열려 있는지’ 여부입니다. 독자가 그림에 몰입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 있는지, 이미지가 보는 이를 자극하여 자신의 상상력을 사용하게 하는지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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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rated by Yuke 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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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rated by Yuke Li

 

 

앞서 Vendi Vernić의 그림과는 또 다르다. 앞의 그림에는 선분이 적고 물감의 양감과 질감으로 그림이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면, 이번 그림에서는 그와 정반대의 인상을 받는다.


수채화 특유의 풍만한 색채들이 배제되어 그림의 전반적인 공간이 투명하게 비어 있다. 색색 볼펜들로 하늘하늘 터치된 것이 이것 참 산뜻한 맛이 있다. 그러나 아주 선분이라고 표현하기는 꺼려지는 것이, 그 선들이 형체의 윤곽을 이루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곧게 뻗어 쭈욱 이어진 뒤 구획을 나누는 그 선분이 아닌, 가느다랗고 짤따란 털들. 그 털들이 모이어 하나의 그림은 이루어지고 있다. 여우의 털 올 올들이 표현 되되 사이사이 빈 공간이 아주 많다. 감동한 내가 그 위에 여우를 그리어 마음속에 소환한다. 그림은 엄밀히 말하자면, 다만 숯 적은 털 뭉치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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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하나 조예 없는 나로서는 이 정도로 표현해내는 것으로도 기진맥진하다. 이 외에도 너무 아름다워 사진으로 남긴 그림들이 많지만, 그것을 애써 다 표현해 본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안에 잔상으로 남은, 이 그림들이 선사한 어떤 감각과 감상, 감정들은 애초 표현해내는 것이 불가한 것일 터인데. 그냥 보고, 느끼는 것. 그것만큼 분명하고 확실한 방법이 없을 것이다. 복잡하지 않은 구조, 단순한 표현, 그리고 짙고도 편안한 파스텔 톤의 색감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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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길지 않은 전시회, 그러나 체류하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300여 개의 일러스트, 그 안에 담긴 색채 낱낱을 조목조목 따져가면서 전시회를 읽고 있으면 절대 짧은 시간이 필요치는 않을 것이다. 그림 300개는 분명 많다. 그 안에서 우리는 스스로께 꼭 맞는 이미지 하나를 반드시처럼 찾게 되면, 심상 속에 고이 담곤 가벼이 길을 나설 수 있지 않을까.

 

찍은 사진은 많지만, 여기에 전부 실을 수가 없다. 만약 어떤 심상의 이미지, 파스텔 톤의 색감과 그 안에서 피어나는 따듯하고 포근한, 휴식의 감각을 찾고 있다면 직접 가보는 것이 좋겠다. 사진기 화소가 아무리 많은들 직접 보는 것에 못 미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일 테니까.


규명할 수가 없어 미리 상정해볼 수 없는, 내게 꼭 맞는 모종의 이미지를 찾고 그 안에서 뭉클한 감상과 감동을 느끼고 난 다음에는, 저 색색들이 속에서 꽤 오래 머물고 싶어질 것이다.

 

아름다운 이미지들을 많이 얻었다. 그것들은 곧 쉬이 잊힐 줄로 알지만, 그렇다고 아쉬운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아예 이 이미지들을 접하기 전의 때와 또 비교하자면, 무언가는 이 안에 남아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명백히 관측해내고 손으로 짚어내고 설명하기가 어려울 따름인 것이다.


그것들은 아마, 이 안 어딘가에서 해체되어 색으로 어른거리고 있을 것이고, 또 이 기억들은 앞으로의 심미적 감상의 하나 전형으로, 혹은 원형으로 둥지를 틀어 올리고 있을 것이며, 좋은 추억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전시회를 두바퀴 돌았다. 원형으로 삼을만 한 심상들을 충분히 탁본하고서 나는 길을 나선다. 파스텔 색채의 숲에서 호흡하며 알게 된 어떤 평안함의 체험은 예상치 못한 것, 고로 덤이다. 내년, 또다른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상상이 벌써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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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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