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러시아 문학에 대한 편견을 깨다, 소설 '티끌 같은 나'

글 입력 2020.04.17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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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인터넷에서 한 러시아 소설의 등장인물 이름을 정리해놓은 글을 본 적이 있다. 제목은 ‘러시아 문학이 어려운 이유’였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나라에 비해 상당히 긴 이름과 인물마다 있는 별칭까지 합한다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등장인물이 나올 때마다 필기해가며 읽어야 할 정도였다. 가볍게 웃어넘긴 글이었지만 그때 이후로 러시아 문학에 무의식적인 거부감이 생겼던 것 같다. 지금까지 읽으려는 시도조차 해본 적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 나에게 이번 작품은 읽기로 마음먹는 것부터가 새로운 도전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편견을 깨고 싶었다. 살짝 긴장된 마음으로 첫 장을 펼쳤고, 긴장했었다는 게 민망할 만큼 기분 좋게 마지막 장을 덮었다.


이 책은 러시아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빅토리아 토카레바의 중단편 모음집으로, 표제작 〈티끌 같은 나〉부터  〈이유〉, 〈첫 번째 시도〉, 〈남이 우리랑 무슨 상관이죠〉, 〈어느 한가한 저녁〉까지 총 다섯 편이 수록되어 있다.

 

 

킬리만자로의 눈이 흐릿해지고 조금 녹았지만 아직 늦지 않았으니 자신에게 오라며 손짓하고 있었다.


- 〈티끌 같은 나〉 p.174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자란 안젤라는 가수가 되기 위해 모스크바로 떠난다. 열정만으로도 충분할 거라는 믿음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작곡가에게 곡을 받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결국 안젤라는 러시아 대부호인 니콜라이와 레나 부부의 집에서 가정부 일을 시작하게 된다.
 
〈티끌 같은 나〉에서는 안젤라의 꿈을 ‘킬리만자로의 눈’으로 비유한다. 그녀가 꿈을 이뤘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그저 ‘킬리만자로의 눈’을 바라보며 한 발 더 내딛는 과정만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주인공이 꿈과 자신이 처한 상황 사이에서 갈등하는 과정도 현실적으로 그려진다. 그 과정에서 모두가 납득할만한 방식만을 선택하지는 않지만, 결국 그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꿈을 향해 나아간다.
 

 

“미움은 사랑과 마찬가지로 운명적인데, 단지 차이가 있다면 부정적인 감정이라는 것이다.미움은 전염병과도 같다. 모든 공간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어디로든 퍼질 수 있었다.”

- 〈이유〉 p.227

 

 
두 번째 작품 <이유>에서는 주인공 마리나의 삶을 통해 러시아의 현대사를 엿볼 수 있었다.

소련의 다민족 도시 바쿠에서 태어나 평범한 생활을 이어가던 마리나는 사회주의 개혁 정책인 페레스트로이카를 겪는다. 그녀는 출신 지역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영문도 모른 채 위협에 대한 공포를 느끼고, 죄책감에 시달린다. 저자는 갑작스러운 소련의 해체로 하루아침에 난민이 된 주인공의 혼란스러운 심리를 자세하게 묘사한다.
 
작가 빅토리아 토카레바가 1937년생이라 그런지 5개의 소설 모두 주로 1900년대 중후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전쟁과 이데올로기 개혁을 겪은 당시 러시아 여성들의 다양한 생활상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 매체에서 자주 접할 수 없는 소재라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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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의 도입부에 나오는 "그녀의 삶은 한편으론 단순하고 또 한편으론 복잡하다. 그런 점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삶과 다르지 않다."라는 문장이 다섯 편의 소설 전체를 대변하는 듯이 느껴졌다.

행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고 평생을 함께하는 삶. 이 책에는 이런 이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인물은 나오지 않는다. 완벽하지 않기에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이야기의 흐름이 대체로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고, 전개가 빨라 막힘없이 읽어 나갈 수 있었다. 주인공을 비롯해 주변 인물의 감정과 상황까지 상세하게 표현되어있지만, 문장이 간결해 직접적인 표현도 차분한 어조로 느껴졌다. 흑백 단편영화를 보듯 편안하게 읽은 책이다.

막연한 두려움에 러시아 문학을 시도하지 못하고 있었다면 『티끌 같은 나』로 한번 시작해보기를 추천한다.





<책 소개>
 
 
시대를 앞선
페미니스트(pre-feminist)
러시아 현대문학의 거장
빅토리아 토카레바 중단편 선집
 
《티끌 같은 나》는 현존하는 러시아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꼽히는 빅토리아 토카레바의 중단편 선집이다. 표제작 <티끌 같은 나>부터 <이유> <첫 번째 시도> <남이 우리랑 무슨 상관이죠> <어느 한가한 저녁>까지 다섯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섯 편 모두 자신의 방식으로 미래를 꿈꾸는 평범한 여성이 주인공인데, 우리에게 익숙한 러시아 고전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며 현실적 야망과 사랑을 쫓는 인물을 만날 수 있다. 지금은 가진 것 하나 없지만 미래의 성공을 위해 도전하고 실패하는 한편, 영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도 기회를 잡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사랑에 흔들리며 울고 웃는 감정을 숨김없이 표현했다. 차마 꺼내지 못하고 꼭꼭 숨겨 둔 우리 마음 어느 한편과 꼭 닮은, 쉽사리 주변에 동요되어 흔들리는 감정을.
 
*
 
가수가 되기 위해 모스크바로 향한 안젤라. 그녀에게 방을 내어 준 키라 세르게예브나의 도움으로 스타를 발굴하는 오디션에 참가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심사가 공평하지 못했지만 그녀로서는 결과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그녀는 좌절하지 않고 또다시 키라 세르게예브나의 소개로 미래 스타를 발굴해 내는 유능한 프로듀서를 찾아간다. 그는 스타가 되려면 좋은 목소리뿐만 아니라 가사와 작곡, 녹음을 위한 돈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맨몸으로 모스크바에 온 그녀에게 그런 큰돈이 있을 리 없다. 그저 해변의 수많은 모래 알갱이 중 하나일 뿐이다. 얼마 후 안젤라는 키라 세르게예브나의 소개로 작곡가 이고리의 집을 찾아간다. 다음 날 있을 파티에 일손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녀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다. 꿈을 이루어 줄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그리고 그 집에서 레나와 그녀의 남편 니콜라이를 만나는데…….
 
 
*

티끌 같은 나
- One of many -


지은이
빅토리아 토카레바
(Виктория С. Токарева)
 
옮긴이 : 승주연

출판사 : 도서출판 잔

분야
러시아 소설

규격
130×195(mm) / 페이퍼백

쪽 수 : 432쪽

발행일
2020년 03월 30일

정가 : 14,500원

ISBN
979-11-90234-05-4 (03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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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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