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에디터의 일상을 채우는 '체크 리스트'

글 입력 2020.04.17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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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사이클 속으로


 

매거진 에디터로 입사한 지 벌써 두 달, 이제는 몸이 출퇴근 시간의 바이오리듬으로 완벽히 맞춰진 듯하다. 오랜 기간 새벽 2~3시에 잠들곤 했던 내가 요즘에는 주말마저 8시 전에 눈이 떠진다.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평생을 살던 내가 ‘에디터님!’으로 불려도 보고, 누구든 만나면 명함을 주고받는 일부터 시작한다.


에디터라는 직업은 많은 일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난다. 어느 직업이든지 그렇겠지만, 내가 가진 직업은 기본 전제가 다양한 콘텐츠의 영역을 동시에 다루며 일을 하는 것이다. 매거진 지면 작업을 하는 와중에도, 웹에 나갈 기사를 신경 쓰고, 그러다 오후에는 외부로 취재를 나간다. 나름 기록광을 자처하고 있는 나는 메모지가 없었더라면 할 일 하나는 분명 빠트렸을 터.


직장인에게 자기 관리가 필수임을 알게 됐다. 머릿속은 누구보다 부지런히 생각하지만 실상 몸은 빈둥거리며 게으르기도 했던 나.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입사한 뒤, 선물 받은 다이어리를 체크 리스트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 참, 체크 리스트를 꾸준히 써나가니 일의 능률이 오를 뿐만 아니라 신기하게도 생활 전체가 정돈이 되는 듯하다.


동시다발적으로 일을 해내는 것이 직장인의 숙명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깔끔하고 상쾌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나는 이것이 체크 리스트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비타민 알약을 챙겨 먹는 사소한 일마저도 적어 놓고 줄을 쫙쫙 긋는다. 나의 이런 일상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체크 리스트의 힘에 대해 나누고자 에세이로 이야기를 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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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이 복잡한 사람



생각이 너무 많다고 들으며 살았다. 도대체 남들은 어떻게 살기에 이런 말을 듣는 건지. 그래도 그 덕분에 글로 표현하는 행위를 지속하고 밥벌이도 하게 됐다.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다짐들이 너무 많았다. 글도 쓰고,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해야 해. 이거는 오늘 사고, 저기에 내일 가봐야지. 이런 사소한 생각들마저 뇌 안에 가득 찼으니, 머릿속은 엉킨 실타래 마냥 총체적 난국의 상태가 자주 되었다.


생각이 많고, 머릿속에서 문장이 엉키면 행동하기가 쉽지 않다. 단순하고, 명료하게! 그럴 땐 글로 보이게 만들어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포스트잇 하나를 떼어내 카테고리를 나눠 메모를 했다. 살 것, 공부할 것, 가볼 곳, 오늘 당장 해결할 일. 이렇게 체크 리스트를 만들어서 분류해놓고 하나씩 없애곤 했었다.


이런 식으로 살다가 어느 날 직장인이 된 것이다. 포스트잇 메모지로는 담아낼 수 없는, 시간과 관계가 얽힌 ‘진짜’ 일들. 하루치 네모 칸에 <회사 업무>, <개인 생활>를 적어 두 가지 영역으로 나누고, 매일 체크 리스트를 만들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이것부터 확인하고, 정리해서 일을 해나간다.


나같이 생각하느라 에너지를 소진해버리는 사람에게 쓰고 지우는 것은 명쾌한 생활 속 해법이었다. 자칫 생각의 나래 속으로 두둥실 떠다니기 쉬운데, 그럴 때마다 체크 리스트를 펼쳐 당장 제거할 일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일을 시작한다. 이것을 오늘 해치우지 않으면 내일까지 지우지 못하고 남게 될 거야.


사실 모든 일이 마냥 수월하게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일들은 몇 분 만에 해결돼 속 시원하게 줄을 그어버리지만, 어떤 일은 몇 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관여되고, 며칠씩 골머리를 앓기도 한다. 그럴 때 체크 리스트 없이 머릿속에만 할 일을 간직했더라면 밥을 먹는 순간에도, 휴식을 취하는 순간도 내내 그 생각을 달고 다녔을 것이다. 체크리스트를 활용한 뒤로는, 당장 해결하지 못하는 일은 다음에 해결하려 내버려 두고, 눈으로 그 일의 존재를 확인만 한다.


그렇게 일주일 단위로 체크 리스트를 돌아보면서 이번 주에 해낸 일은 뭔지, 다음 주까지 해결을 봐야 하는 일은 뭔지 주간 체크를 하면서 업무 사이클을 돌보고 있다. 며칠씩 걸리는 일이 많은 취재 기사에 가장 알맞은 패턴을 찾아낸 것이다. 할 일을 적어놓고 하나씩 제거하는 일은 업무를 즐겁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하나씩 지워가는 성취감의 힘



많은 책에서 내면의 성장을 북돋기 위해 작은 목표를 쪼개 적거나, 매일 한 개씩이라도 적어 성취하기를 추천한다. 내 경험으로 비춰봐도 이것 확실한 성장의 양분이 된다. 무언가 해내고 있다는 뿌듯함 속에서 일상을 지속하는 것이, 하루를 힘차게 보내도록 도와준다. 특히 무기력에 빠지거나,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어지는 날들에서 특효약이다.


일단 생각보다 하나씩 지워나가는 것이 즐겁다. 내가 스스로 목표로 한 일이 완벽히 성취되고, 더 이상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심적으로 뿌듯함을 가져다 준다. 또 내가 무언가 진행하고 있다는 표식도 된다. 경험상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는 일상의 힘도 자연스럽게 길러지게 된다. 자칫 미루게 되더라도, 내일도 못할 거야가 아니라 내일은 할 수 있을 거야! 이렇게 마인드가 변화된다.


이때 주의해야 할 사항은 완벽주의 성향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하루에 하나라도 못하게 되면 다음날 좌절감을 맛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기 때문에, 그 좌절과 분노의 섞임, 어제의 나를 미워하는 마음을 이해하지만 그렇게 연연해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후회에 에너지가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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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주의 체크 리스트>

 


어제 하지 못한 일이 있다면 오늘 해치워버리고 줄을 쫘악-! 그으며 마음의 엉킨 실타래를 풀어보자. 매일 반복되는 일이라면, 일주일에 0번을 해내는 것보다는 1번을 해내는 것이 더 잘한 일. 그렇게 하지 못한 것보다 한 것에 집중하면서 매일 매일 달라지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작은 것을 쪼개 적고, 못한 일은 내일 하고, 지금부터 시작해서 뭐라도 행동하는 경험들이 나의 일상을 즐겁게 만들어주고 있다. 직장인이 처음이라 걱정되는 마음에 매일 체크 리스트라고 명명하며 확인하고 있지만 이것 비단 살면서 한 두 번 해본 것도 아닌 일.


학생 때는 공부 계획을, 여행 때는 맛집 리스트를, 부모님의 생신에는 준비물을 적으며 하나 씩 지워나가던 지난 날들이 생각난다. 체크 리스트는 이렇게 중요한 일들에 꼭 함께하며 일상을 더 멋지게 만들 수 있도록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었다. 일 년이 지나면 체크 리스트 다이어리가 얼마나 큰 흔적이 되어줄까. 그 시기가 너무나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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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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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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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weo23
    •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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