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이란: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전시]

우리 모두는 한때 '어린이'였다.
글 입력 2020.04.15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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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냐’는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도시다. 볼로냐라는 도시를 알게 된 건 불과 얼마 전이다. ‘헤즈’라는 디자인 스튜디오가 출판한 <컬러풀 볼로냐>라는 사진집 때문이었다.


사진으로 만난 볼로냐는 여유로운 분위기가 인상적이었고 붉은 벽돌 건물이 아름다운 도시였다. 이탈리아를 떠올리면 보통 로마, 피렌체 등의 도시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볼로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볼로냐 대학이 있는 곳이자 미식의 도시이며 2000년엔 유럽 문화수도로 지정되기도 한 역사 깊은 도시다.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은 1967년에 처음 시작되어 2019년 53회를 맞이했다. 이 전시는 매년 볼로냐에서 개최되는 <볼로냐 아동 도서전>의 핵심 프로그램으로, 80여 개의 국가에서 3천여 명의 아티스트가 매년 지원서를 제출하고 있다. 올해는 한국에서도 전시를 만나볼 수 있었다.

 

아동도서를 위한 그림이라고 해서 담아낸 메시지까지 단순할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작품은 삶의 다양한 이면을 담아내며 깊이 있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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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의 가장 큰 매력은 전 세계에서 모인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마음에 드는 그림 앞에선 오래도록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다. 깊이 바라볼수록 더 많은 것이 보였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히 드러났다. 반갑게도 한국 작가의 작품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번 전시회에서 만난 그림 중 특히나 좋았던 작가의 작품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마음을 움직이는 따뜻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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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들어서자 초록 빛깔의 배경에 쓰인 흰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As a graphic designer, I consider a book as a three-demensional object offering many possibilities-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나는, 책이란 수많은 가능성을 제시하는 3차원의 물체라고 생각한다.”

 

이는 2018년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에서 최고 상을 수상한 크로아티아 출신 작가 벤디 베르니치의 말이다. 그녀의 말대로 책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공간이 될 수 있었다. 그녀의 그림엔 동물과 사람, 그리고 푸르른 자연이 주를 이뤘다. 자연 속에서 사람과 동물은 모두 자유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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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Once Upon a Time, Imagine, Animal Story, Nature, Life 총 5가지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섹션은 Animal Story와 Life였다.

 

Animal Story에선 동물이 등장하는 귀여운 일러스트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림 속 동물은 마치 우리의 모습과 꼭 닮아 있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라 방황하던 토끼는 우연히 어느 서점에 방문하면서 책을 읽으며 자신의 꿈을 찾아나가게 되고, 장난꾸러기 여우는 무지갯빛 바람에 이끌려 환상의 세계로 걸어간다.


한국 작가 김슬기는 <모모와 토토>작품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원숭이와 토끼의 모습을 그려냈다.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전시를 방문한 아이들은 그림 하나하나가 신기한 듯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작품을 감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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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마음을 울린 그림은 타나카 야스히로의 <꽃이 몇 개 있다>라는 4컷 장면으로 구성된 작품이었다. 첫 장면에서 도마뱀은 황량한 회색빛 마을을 보며 ‘난 이곳이 싫어요’라고 읊조린다. 흐리고 어둡고 지루한 거리를 도마뱀은 터덜터덜 걸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도마뱀은 동네의 풍경을 배경으로 알록달록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동물 친구들은 여기저기서 모여와 ‘이곳엔 꽃이 없어요’ 하고 말하지만, 도마뱀은 ‘알아, 그래도 나는 볼 수 있어’라고 대답한다.

 

마지막 장면에선 도마뱀과 동네 친구들이 한데 모여 동네를 배경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러자 어둡기만 했던 잿빛 세상이 점점 밝은 빛으로 선명하게 물들기 시작한다. 희망의 빛으로 밝아지는 도시가 너무 아름다워 한참을 그림 앞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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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작가가 담아낸 제주도의 풍경.

 

 

전시의 마지막 섹션 에서는 '삶'이 주제인 만큼 소소한 일상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캐롤리나 셀라스의 작품은 부드럽고 섬세한 표현이 아름다워 자꾸 들여다보게 되었고, 제주도에 잠시 거주하며 평소의 풍경을 담아낸 대만 작가의 그림도 인상적이었다. 외국인의 눈으로 바라본 한국은 이런 모습일까, 하고 상상하게 되었다. 삐뚤빼뚤한 글씨의 한국어 간판조차 귀엽게 보였다.

 

미국으로 이주한 어느 러시아 가족의 모습을 담은 작품에선 작가의 애정 어린 시선이 느껴졌다. 노르웨이 출신의 작가의 작품 <모두의 수>는 생김새도 표정도 모두 다른 수백 명의 사람을 담아내 각 개인이 지닌 고유한 삶의 중요성과 존재의 소중함을 표현했다.

 

 


좋은 작가란, 좋은 그림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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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묻는다. 일러스트레이터가 지녀야 할 자질은 무엇이냐고. 이번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의 심사위원은 ‘일러스트’는 보는 이에게 놀라움을 통찰력을 주고 우리에게 감동을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뛰어난 그림 기술 역시 일러스트레이터로써 지녀야 할 중요한 능력이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개성 있는 표현 능력과 상상력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그는 ‘보는 것’에 대해 풍부한 경험을 강조했다. 일러스트레이터라면 더 넓은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만 좋은 작품을 그려낼 수 있다고 말했다. 열린 마음과 시선으로 담아낸 작품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조금씩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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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의 작품은 일상의 풍경을 담아 소소한 공감을 이끌어냈고, 때로는 상상의 세계를 펼쳐내며 우리를 꿈꾸게 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기도 하고 고정관념을 깨트리기도 했다.

 

그림에 담긴 예리하고 색다른 시선을 통해 우리는 현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아이는 상상의 나라로, 어른은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각 작가의 그림 속엔 고유한 이야기가 있었고 각양각색의 이야기는 모두 우리의 삶과 닮아있었다. 아동을 위해 그려진 그림이었지만 어른의 맘을 움직이기에도 충분했다.

 

우리 모두는 한때 '어린이'였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던 귀여운 아이들이었다. 따뜻한 위로를 품고 있는 그림은 빛바랜 마음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었고 단조로운 하루하루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좋은 그림이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이 아닐까?

 

*

 

전시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마치 커다란 선물을 받은 듯한 기분이었다. 함께 전시를 감상한 친구는 기대 이상으로 정말 좋았던 전시였다며 미소를 지었다. 흐릿하기만 하던 회색빛 하늘도 어느덧 맑게 개어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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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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