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멍청이의 황금시대를 맞이하며 - 내 주위에는 왜 멍청이가 많을까 [도서]

글 입력 2020.04.15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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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땐 어른들은 전부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면 모든 일을 척척 해내고, 모르는 게 없어질 거라고 막연한 기대를 품었다. 기대와 달리 법적으로 어엿한 성인의 나이가 된 지금의 나는 아직도 못하는 게 많고 멍청하다. 그리고 어린이의 시선에서 봤던 어른들과는 달리 내 주변의 어른이라는 사람들은 다 멍청한 것만 같다.


비단 내 주변뿐만이 아니다. 스마트폰의 보급 이후 SNS 등을 통해 타인의 모습을 손쉽게 볼 수 있는 요즘은 세상의 온갖 멍청이들을 매 시간 접하고 있다. 다들 한 번쯤 세상에 멍청이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건지 자문해 봤으리라 믿는다. 안 그런 사람이 있다고? 믿을 수 없다. 이건 내가 생각했던 성숙한 어른들의 세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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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이런 의문을 풀어줄 책을 찾았다. 바로 장 프랑수아 마르미옹의 <내 주위에는 왜 멍청이가 많을까>이다. 29인의 학자들이 연구한 멍청함과 멍청이에 대한 연구를 모은 이 책이 궁금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니, 멍청함과 멍청이를 연구했다니, 이거야말로 정말 멍청한 짓 아닐까? 싶지만 솔직히 너무나 궁금하고 흥미로웠다. 멍청함의 종류와 멍청함의 메커니즘 그리고 멍청함과 공존하는 법까지, 목차만으로 당장 읽어보고 싶어진다.

 

 

 

멍청이란?


 

멍청함이란 도대체 뭘까? 심리학자 세르주 시코티가 내린 멍청함 정의는 간단히 말해 '비꼬는 불신'이다. 멍청한 인간은 부정적이고 남을 잘 믿지 못하는 성향이 있고, 인간의 본성과 동기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사회와 정치를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회적인 사건이나 현상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명쾌한 답을 내리기 어렵다. 하지만 언제나 자신은 답을 알고 있다는 듯이 단정 지으며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장이라도 뉴스의 댓글을 보면 알 수 있다. 심지어 그러한 댓글에는 수백 명의 동의가 따라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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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교수이자 <멍청한 놈들>의 저자 에런 제임스는 멍청한 짓이 사회적인 행동과 관계된 문제라고 말한다.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며 남들이 자신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멍청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계속해서 자만심에 빠지면 충분히 멍청이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자신은 소중하게 여겨야 할 존재가 맞지만, 그것이 타인에게 피해를 줄 정도에 이르면 이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게 된다. 이러한 멍청이들의 비위를 맞춰주는 주변인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중요한 지점으로 보인다. 멍청이도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존재라는 것이다.

 

장 프랑수아 도르티에에 따르면 칠푼이, 속 좁은 멍청이, 집단적인 멍청이, 지능이 떨어지는 멍청이 등 멍청이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아마 이 멍청이의 종류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그중 어리숙한 멍청이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남들의 말을 잘 믿고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호구'가 바로 나였다.

 

 

 

멍청함을 치유하는 해독제 '의심'


 

책에서 가장 공감하며 자신을 돌아보게 했던 부분은 작가인 장 클로드 카리에트와의 대담이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지식, 생각, 감정, 세계관,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 느낌이 끊임없이 변합니다. 그런데 "원래 그래"라고 하면서 무엇이든지 일반화시키고 단정하려는 태도야말로 어리석음입니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니까요."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그럴수록 인간은 더욱더 단순한 진리를 좇게 된다. 복잡하고 불안정한 이 세상을 견딜 힘을 찾기를 바란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종교를 믿는다. 신이라는 절대적이고 의심해서는 안 되는 존재를 믿음으로써 안정감을 얻는다. 종교는 개인의 믿음이니 의논할 문제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맹목적인 믿음을 사회의 실제적인 문제에 대입하는 것은 문제를 발생시킨다.


인간은 습관적으로 자신이 파악한 모든 것을 범주화시키고 일반화한다. 하지만 '원래' 그런 것은 어디에도 없다. 적어도 문제가 발생했다면 설사 '원래' 그렇다고 할지라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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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클로드 카리에트는 우리의 이런 어리석음과 멍청함을 치유하는 해독제가 바로 '의심'이라고 말한다. 물론 고민하고 의심하며 생각을 다듬어 나가는 과정에는 시간과 노력이 든다. 그러나 자신의 어리석음과 멍청함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우리는 의심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한국의 주입식 교육의 폐해로 질문하는 법조차 잊은 우리는 어리석음으로 향하는 길에 놓여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민하고, 생각해야 한다.

 

지금 당신이 "원래 그래"라며 단정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멍청함을 경계하고 멍청이에 관대하기


 

결국 우리는 멍청함에서 벗어날 수 없고, 멍청함과 공존하며 살아야 한다. 심리 치료학 교수인 스타세 칼라앙은 '멍청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멍청한 인간'이라고 낙인찍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한다.


누구나 하루에도 수십 번씩 멍청한 짓을 저지르며 살고 있고, 우리는 대부분 비슷한 지능을 가진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내가 멍청하다고 생각한 사람만큼 나도 멍청할 것이다.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의 멍청한 행동을 가지고 '저 인간은 멍청해'라고 낙인찍는다면 우리는 모두 멍청이가 되고 말 것이다.

 

스타세는 멍청함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으로 '자신에 대한 자비'와 '사과'를 제시한다. 멍청한 짓을 저지르더라도 그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잘못에 사과를 한다면 멍청함의 덫에서 빠르게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신은 멍청하지 않다고 확신할 누군가에게 장 프랑수아 마르미옹의 경고의 글을 전한다.

 

 

"이 책은 당신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당신이 아직 눈치를 못 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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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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