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초연결 사회’, ‘지구촌’, ‘디지털 노마드’.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았을 이 키워드들은 모두 기술의 발달 속에서 시공간의 경계를 뛰어넘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이상향을 그린다는 공통점이 있다. 세계화와 온라인 공간의 확장이 이동가능성을 증가시키고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만들면서 사람들은 물리적인 제약에서 벗어나 탈중심화된 세상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세계가 어디든 자유롭게 유랑하는 유목민의 삶의 환상에 젖어있는 것과 달리 우리는 현실 속에서 상상과는 모순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듯한 국제뉴스를 끊임 없이 전해 듣고 있다.
외부세계로부터 오는 정보를 차단하기 위한 방화벽을 세우는 중국, 국경에 ‘물리적으로 으리으리’하고 ‘오르기 불가능’한 장벽을 세우는 미국, 종교를 둘러싸고 팽팽히 대립하는 중동 지역 등 공간의 구획을 통해 정체성을 구분 짓고 경계를 허물지 못하도록 촉각을 곤두세우는 일련의 현상들을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공간을 좋아했다. 무리를 이루고, 수많은 외부자에 경계심을 느끼고, 인지된 위험에 반응을 보이는 것은 매우 인간적인 것이다. 우리는 생존만이 아니라 사회적 결속을 위해서도 중요한 유대관계를 형성한다. 우리는 집단 정체성을 발전시키는데, 이것은 종종 다른 집단과 갈등을 빚기도 한다. 우리 집단은 자원을 위해 경쟁하지만 정체성 갈등의 요소도 있다. ‘우리와 그들’의 서사가 그것이다.
p. 11
진시황은 전국을 통일할 수 있다는 자신의 능력을 확신했을 때 비로소 전국의 내부 장벽을 무너뜨렸다. 200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후에도 지도부의 권력, 그리고 한족과 나라의 통일은 여전히 우선순위이다. 그 통일이 중국을 나머지 세계로부터 분리하고 그 자신을 분열시키는 디지털 장벽을 통해서 달성된다고 해도 말이다.
p. 55
마찬가지로 중국과 대립적인 관계에 있는 미국에서도 ‘장벽’의 전략은 유효하게 작동한다. 트럼프의 보수 정책은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을 가르는 으리으리하고 거대한 장벽을 건설하는 것을 핵심 목표로 삼는다. 이때의 장벽은 단지 물리적 장애물일 뿐만 아니라 미국인과 비미국인을 가르고 미국을 침범하고 ‘미국적’인 문화를 약화시키는 타자성을 차단하고자 하는 결의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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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가 꿈꾸는 시공간의 구분 없이 평평한 디지털 유목민의 시대는 ‘우리’의 정체성이 ‘타자가 아닌 것’으로 구별되는 장벽의 논리를 극복하지 않고는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가 전 세계의 수많은 갈등을 목격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타협’이 가진 힘에 희망을 거는 것처럼 나 역시 이해와 합의를 통해 장벽을 극복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
장벽의 시대
- 장벽, 나누고 가르고 가두다 -
지은이
팀 마샬
옮긴이 : 이병철
출판사 : 바다출판사
분야
인문 교양
사회학일반
규격
152x224mm
쪽 수 : 360쪽
발행일
2020년 03월 20일
정가 : 16,500원
ISBN
979-11-89932-49-7 (03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