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성실한 쓰기의 힘 - 이슬아 작가에 대해 [도서]

글 입력 2020.04.14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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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의 이름으로 백수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아침 식사 시간이 여유로워졌다. 급하게 퍼먹고 일하러 나가야 하는 게 아니다 보니 느긋하게 휴대폰이라도 들여다보면서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휴대폰으로 뭘 보느냐 하면 보통 포털 메인의 인터넷 기사를 보거나, 아니면 구독 중인 뉴스레터를 열어 본다. 아무 일도 주어지지 않던 인턴 시절에 뭐라도 알차게 시간을 때울 것이 필요해 구독했던 것들이다. 의외로 무료에, 양질의 콘텐츠를 꾸준히 날라다 주는 곳들이 많았다.

 

대체로 내가 보는 것들은 시사나 경제 쪽이었지만 최근 들어 구독리스트에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연재 소식이 뜨자마자 구독을 신청한 ‘일간 이슬아 봄호’가 그것이다.

 

아침마다 뉴스레터 사이에서 그의 메일을 터치할 때면 두근거린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싶다. 가끔은 메일함을 따로 분리해 둘까 싶다가도 경제, 시사라는 지극히 현실적 주제 사이에 은근슬쩍 끼어들어가 있는 일상의 수필이 부조화인 듯 조화를 이루는 게 좋다. 가끔은 이런 글을 고작 한 달에 만 원 주고 읽어도 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는 서점에서 그의 수필집을 구매한 이후로 남몰래(?) 꾸준히 팬심을 쌓아온 작가다.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보여지는 쿨하고 힙한 모습이나, 수필에서 묻어나는 진솔함 모두 독자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하지만, 정말로 멋있는 건 바로 그의 성실함이다. 매일 글을 쓰고 매일 글을 발송하는 ‘마감 인생’ 속에 자신을 몰아넣다니. 보통 자기관리 역량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한 달에 고작 두 번 있는 마감도 버거워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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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예술하는 습관>에 등장하는 수많은 여성 작가들이 떠오른다. 취미가 아니라 생업으로써의 글쓰기를 하면서 (대체로) 가정까지 돌봐야 하는 그들은 어떻게 일상을 꾸려나갈까? 누군가는 글 쓸 마음이든 아니든 무조건 매일 글을 쓰고, 누군가는 술을 마시고 쓰고, 누군가는 매일 정확한 일정을 엄수하면서 쓴다.

 

예전에는 예술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굉장히 천편일률적이었다. 광기나 즉흥성, 자신을 극한으로 내몰고 일상 따위에 관심을 두지 않는 예술혼, 뭐 그런 것들 말이다. 어쩌면 이건 천재 예술가 몇몇의 위인화된 사례를 접한 게 우리가 겪은 예술가의 전부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지금 와서 보니 내가 사랑하는 작가나 뮤지션 중엔 오히려 극도로 규칙적인 삶을 살면서 일상과 자기 자신을 차분히 돌볼 줄 아는 이들이 많았다.

 


“아무도 청탁하지 않은 글을 셀프로 연재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슬아슬한 일이지만 가능한 한 오래오래 계속하고 싶다. 누가 나를 고용해주기를 기다리지 않고도 독립적으로 작가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니 다행스럽다. 계속하기 위해서라도 몸도 마음도 튼튼하고 싶다. 튼튼하고 싶어서 매일 달리기를 하고 물구나무를 서고 뭔가를 읽고 뭐라도 쓴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것을 쓸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날마다 용기를 낸다.”


– 일간 이슬아 중에서


 

이슬아 역시 그런 작가에 속하는 것 같다. 매일매일의 글쓰기를 해내기 위해 일상을 다듬는 끈기와 성실함은 존경스럽다. 그의 자기연민 없이 담백한 문체만큼이나 멋지다.

 

그리고 글쓰기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나는 막힘없이 술술 읽히는 글을 지향하는 사람이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장황하다 느껴질 정도의 만연체로 깊은 내면의 심리묘사를 의식의 흐름대로 해나가는 그런 글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좋은 글은 잘 읽히면서도 가슴에 와닿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문장이 짧고 표현이 쉽다고 해서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읽기는 쉬워도 쓰는 사람도 쉽게 쓰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쉽게 쓰는 작가가 멋있는 것이다. 읽히기 위한 글. 청자를 배려하며 말하는 화자처럼 따스함이 느껴진다. 자아도취를 벗어난 글, 언제쯤 나도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그 때가 언제가 될 진 모르지만, 지금의 나는 이슬아의 글을 매일 받아볼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한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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