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름다운 여정 속으로 - 도서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

글 입력 2020.04.13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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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쯤은 듣는 말이 있다. "왜 클래식을 좋아해?", "클래식의 어떤 점이 그걸 계속 찾아 듣게 만들어?", "그럼 가요는 안들어?"라는 아주 일상적인 질문들 말이다. 아마도 사람들은 클래식이 어렵다고 느끼기 때문에 첫 번째와 두 번째 질문을 할 것이고, 이른바 '교양 있는' 음악인 클래식을 듣는다면 세속적인 일반 가요는 안들을 것이라는 편견 때문에 세 번째 질문을 하는 듯하다. 이 모든 질문들을 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간과하는 것이 있다. 바로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음악'을 좋아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상한 것이기 때문에 선별적으로 클래식 음악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음악은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보다도 사람의 마음을 빠르게 휘어잡을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표현수단이다. 음악은 언어가 수반되지 않아도 사람을 움직이며, 선율이 시작되는 순간 빠르게 현실을 환기시키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낸다. 그런 의미에서 아트인사이트를 통해 만난 도서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는 제목을 보자마자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다. 음악은 알고 듣든 모르고 듣든 언제나 좋지만, 작품의 배경과 이면의 이야기들을 숙지하고 감상하면 확실히 감상의 폭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 책 소개 >

 

이 책은 클래식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해설서가 아니다. 인생의 굽이굽이를 돌아온 한 남자가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준 음악가들과의 만남, 그 축복의 순간들을 하나하나 정리한 글들이다. 


저자의 말대로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 음악 취향도 모두 다르다. 그중 클래식은 좀 유난스러운 면이 있어, 쉽게 다가가기도, 들으며 열광하기도, 듣고 난 후 이해하기도 어려운 장르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상은 클래식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것일까? 얼마 전 TV에서 한 외국인이 이렇게 얘기하는 걸 들었다. "한국에 와서 놀란 게, 슈퍼에서 음료수를 사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더니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더라고요!" 생각보다 클래식 음악은 우리 삶의 곳곳에, 무척 가깝게 존재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클래식을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미지의 영역으로 느끼는 이가 많다. '클래식과 좀 가까워지고 싶은데,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들어야 할까?' 이런 고민부터, '클래식 음악을 듣다 보면 음악가들의 이름과 복잡하기만 한 작품명들을 전부 외워야 할 것 같아.' 이런 부담감까지, 누군가의 도움 없이 클래식을 향해 첫발을 떼기란 쉽지 않다. 이런 우리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저자는 "많이 알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알고 싶어지는 것"이라 힘주어 말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까까머리 중학생 때 처음 클래식을 접하게 된 사연, 갑작스러웠던 누나의 죽음, 음악을 전공하고 싶었으나 끝내 좌절된 꿈 그리고 PD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다시 만나게 된 클래식 음악…. 그가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를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그곳엔 언제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네 이야기가, 자신의 영혼을 녹여 만들어낸 음악가들의 음악이 흐르고 있다.

 


 

 

저자 이채훈은 책의 초반부에서, 자신이 어린 시절 누나를 떠나보내야 했던 사실을 담담히 풀어냈다. 문학을 읽고 음악감상 하는 걸 즐겼던 누나가 가족들에게조차 그 아픔을 말하지 못하고 떠났을 때, 저자에게 남겨진 것은 누나가 모았던 축음기와 LP 음반이었다. 어쩌면 처음에는 누나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을 음악 청취가, 저자 이채훈에게는 아주 강렬한 충격이었던 듯하다. 학창시절 내내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해왔던 그가 사회에 나와 MBC에서 PD로 일하며 한국사회의 현대상을 담아내는 수많은 다큐와 르포들로 수많은 언론상을 수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과거를 반추해보았을 때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은 음악 다큐를 만들 때였다고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이채훈과 클래식의 첫만남을 보니, 자연스럽게 나도 옛날 기억을 떠올렸다. 내가 가장 처음으로 접한 클래식은 어머니께서 틀어주시던 오디오 테이프 속의 음악이었다. 어머니께서는 합창곡과 피아노곡을 듣는 것을 항상 좋아하셨다. 그래서 TV에서 파리 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이나 빈 소년 합창단의 무대가 나오는 날엔 꼭 가족끼리 TV를 봤던 기억이 난다. 다른 기악곡보다 피아노 솔로 작품을 좋아하셔서, 아침에 가족들을 깨울 때면 항상 테이프를 재생시켜서 음악소리를 듣고 자연스럽게 잠을 깨도록 하셨다. 그 때 테이프에는 앞뒷면 총 12곡의 작품이 들어있었다. 전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쇼팽 에튀드 3번 이별의 곡, 슈베르트 소녀의 기도와 악흥의 순간 3번, 슈만 트로이메라이는 아주 명확하게 기억이 난다. 그 때 테이프에서 들었던 음악들 중에 가장 좋아했던 곡들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천방지축이었던 다섯살배기 내 손을 붙잡고, 어머니께서는 피아노 학원을 찾아가셨다. 어머니의 지인이 운영하던 그 피아노학원으로 가던 길이 아직도 생각난다. 새로운 어딘가를 간다는 것에 설렜던 내가 종종걸음으로 뛰다시피 걸었던 그 길이 그 때는 참 멀게 느껴졌는데, 지금 다시 가보면 그렇게 길이 멀지도 않다. 그러나 피아노를 배울 수 있다는 건 어린 내 마음에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기쁨이었다. 당연히 어렸기 때문에 가능했던 생각이지만, 나는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면 나도 집에서 듣던 피아니스트들의 연주처럼 해낼 수 있을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학원에서 피아노를 배우고 콩쿠르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세상에는 나보다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이 정말 많다는 걸 느끼고 10년 만에 피아노 배우기를 멈췄지만, 그 10년 간 배웠던 피아노는 내가 음악을 듣고 즐길 수 있는 기초 자양분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저자에게 좀 놀라기도 했다. 내가 과연 악기를 배우는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클래식을 좋아할 수 있었을까? 클래식은 아름다운 음악이지만 기악곡을 기준으로 했을 때 가사가 없고, 러닝타임이 길어서 가요에 비해 분명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높다. 가사에 하고 싶은 말이 다 담긴 가요와는 다르게 클래식 작품은 표제 음악이 아니면 해석의 여지가 있어 뭘 말하는지 와닿지 않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해석이 청취자의 몫임에도 불구하고 그 해석의 자유조차 부담스럽게 느끼는 경우들이 있다. 그래서 나조차도 내가 피아노를 배운 배경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꾸준히 듣기 어려웠을 거란 생각을 한다. 그에 비하면 저자는 정말 순수하게 온몸으로 음악을 흡수해왔던 것이다. 오로지 순수한 마음 그 자체로 음악을 마주했기 때문에 그 마음에 울림이 더 컸으리라 생각한다.


어린 시절의 나는, 장래희망이 예술분야와 전혀 무관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뭐든 잘하고 싶어하는 욕심 때문에 음악에서도 굉장히 욕심을 냈다. 콩쿠르가 열리면 떨리더라도 꼭 나가고 싶었고, 입상하고 싶었다. 그래서 사춘기에 접어들 때 즈음에는 오히려 음악을 즐기지 못하고 자책하기에 바빴다. 왜 나는 저렇게 자연스럽게 이 대목을 연주하지 못할까? 왜 나는 저 느낌을 살리지 못할까? 무수히 많은 '왜 나는...?'의 질문을 반복한 끝에, 나는 피아노 수업을 그만뒀다. 학업이라는 가장 그럴 듯한 핑계를 대며 물러섰지만 사실은 더 이상 마음으로 음악을 즐기지 못했기 때문에 그랬다. 그러나 학원을 그만두고 더 이상 악기를 잘 연주해야 한다는 압박이 사라지자, 나는 이전보다 더 자유로운 마음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


이채훈의 아름다운 음악 여정은 비발디부터 시작했다. 바로크 시대 하면 우리가 익히 아는 바흐, 헨델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비발디 역시 바로크 시대의 주역이다. 수많은 교회 음악을 남긴 그의 뒤를 이어 바흐와 헨델이 나오는데, 저자는 1장에서 페르골레시와 하이든까지 함께 다루고 있었다. 하이든보다는 조금 앞세대인 그는 오페라 부파의 선구자였다. 이 책을 통해서 처음으로 접한 음악가였는데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게 안타까울 정도로 인상적인 음악가였다. 그의 뒤를 잇는 하이든이야, 더 말해 무엇할까. 하이든의 음악은 더할 나위 없이 따스하다.


모차르트의 삶은 그와 아버지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았다. 특히나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이 그의 아버지와의 화해를 담고 있었다는 건 여태 몰랐던 사실이었다. 그런가 하면 베토벤은 인상적인 교향곡 5번이 아니라 6번을 가장 먼저 다루며 이야기를 끌어나갔다. 베토벤의 삶에서 이채훈이 조명했던 것 중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루돌프 대공과의 우정을 짚는 대목이었다. 베토벤의 작품 중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피아노 3중주 <대공>, 피아노 협주곡 <황제>, 피아노 소나타 <함머 클라비어>가 모두 루돌프 대공에게 헌정된 것인데, 그런 대공과의 관계를 살펴보는 건 다시금 이 작품들의 선율과 감정들이 더욱 선명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짧은 인생동안 내면으로 침잠하는 삶을 살았던 슈베르트, 그와는 반대로 아주 부유한 엘리트 출신이었던 멘델스존, 타국에서 숨을 거두면서까지도 조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작품활동을 했던 쇼팽을 살펴보는 것 역시 즐거웠다. 베를리오즈는,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여태 한 번도 작품을 찾아들은 적이 없는 음악가였다. 그러나 뒤에 나오는 슈만과 리스트, 바그너와 브람스를 만나기 위해 베를리오즈의 음악도 기꺼이 들었다.


후기 낭만에 이어 국민악파와 현대 음악가들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은 길면서도 짧았다. 저자가 각 음악가들의 삶을 애정을 가지고 살펴봤다는 것이 한 글자 한 글자마다 묻어나서, 읽어가는 동안에도 마음이 참 따뜻했다. 물론 개인적으로 보고 싶었던 음악가들이 없어서 조금은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왜 라벨은 없을까. 베르디가 나온다면 비제도 다뤄볼 수 있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음악가들을 저자가 다뤄줬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이내 마음을 바꿨다. 이것은 내몫인가보다, 하고 말이다.


*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음악가, 브람스의 이야기는 이 책에서 너무 짧아서 아쉬울 정도였다. 그런데 저자가 다루는 브람스의 대목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브람스의 육성이 녹음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가 짧은 육성과 함께 헝가리 무곡 1번을 연주한 녹음파일이 세상에 존재했다니!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를 읽지 않았더라면 앞으로도 모르고 살았을 법한 소식이었다. 저자가 글로만 남긴 게 아니라 QR코드를 남겨주어서 따라가서 들어볼 수 있는 것은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이다. 당연히 브람스의 육성을 들어보고 싶어서 링크를 들어가보았다. 녹음 기술이 아직은 완전하지 않았던 옛날이기에 그의 목소리나 연주소리보다는 노이즈가 더 크게 들리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람스의 목소리와 그의 실제 연주를 듣는 건 굉장히 신기한 기분이었다.


브람스는 평생을 홀로 살았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겠지만, 그의 음악을 두고 우수에 찼다고 하거나 고독하다고 하는 표현들을 많이들 쓰는 것 같다. 일견 맞는 말이다. 브람스는 화려하고 멋지게 만들어서 그것을 바깥으로 분출하기보다는 다소 정갈하고 담백하면서 내면으로 침잠하는 듯한 정서를 잘 표현해내는 음악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점이 내가 브람스의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브람스가 내성적이었고 말하기보다는 침묵하는 성향이었다는 일반적인 인식에 비해, 저자 이채훈이 보여주는 짧은 일화들은 그가 자유분방하고 개방적인 성격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완벽주의자인 브람스의 성격이 꽉 막혔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인식을 달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브람스의 그런 면모가, 그의 음악 중간 중간에 느껴지는 따스함으로 드러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브람스의 교향곡은 항상 베토벤과 함께 거론되곤 한다. 브람스 교향곡 1번을 두고 베토벤 교향곡 10번이라고 말했다는 일화를 저자 역시 소개하고 있었다. 낭만시대의 고전주의자이자 보수주의자인 브람스니, 그의 작품 속에 베토벤의 발자취가 느껴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할 것이다. 그런 맥락이 이어지는 브람스의 교향곡 1~3번은 각기 나름의 매력이 있다. 그러나 역시, 브람스를 가장 브람스답게 하는 것은 교향곡 4번이다. 가장 브람스다운 음악. 모든 곡식과 과실의 수확이 끝나고 남은 늦가을 빈들녘에 점차 겨울의 기운이 스며드는 듯한 이 작품은 도입부의 B-G-E-C에서 이미 모든 게 끝난다. 듣고 있노라면 온 세상의 멜랑꼴리를 응축해서, 이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느낌이 든다. 이 어마어마하고 아름다운 작품을 저자가 놓치지 않고 언급해주어서 너무 기뻤다. 물론 엄청난 명곡이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었겠지만 말이다.


브람스의 클라리넷 소나타 작품번호 120 역시 뛰어난 선곡이다. 저자는 브람스를 다루며 헝가리무곡 1번, 교향곡 1번, 교향곡 4번, 클라리넷 소나타 내림E장조,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협주곡 A단조 이렇게 5곡의 QR코드 링크를 소개했다. 다른 곡들이 매우 유명하고 인지도가 높은 데에 비해 클라리넷 소나타는 주목받기 어려운 작품일 수도 있었다. 브람스의 다른 작품들 중 무엇이 저자의 선택에 들었다 하더라도 놀랍지 않겠지만, 이 클라리넷 소나타가 포함되어 있어서 정말 놀랐다. 거진 5년 전에 클라리넷 리사이틀에서 이 작품을 처음으로 들은 이후부터 꾸준히 들었던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알레그로 아마빌레라는 빠르기 지시처럼 따스하고 사랑스러운 정감이 느껴지는 곡이다. 저자 이채훈의 선곡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기 때문에, 브람스의 삶이 조금 더 궁금한 마음이 든다면 꼭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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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는 읽는 내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저자 이채훈이 각 음악가를 사랑하고 그 작품을 사랑하는 마음이 절절히 느껴져서 그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비단 그뿐만은 아니다. 음악에는 그만큼,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힘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이미 클래식을 즐겨 듣는 사람이라면,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를 통해 만나는 새로운 배경과 일화들이 당신을 즐겁게 해줄 것이다. 아끼는 음악가의 이야기를 보면서 그 음악가를 더욱 생생히 만나고 그 작품을 더욱 실감나게 음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리고 클래식을 아직 어렵게 느끼는 사람에게도, 이 책은 분명 클래식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높여주는 가교 역할을 충실히 행하리라 생각한다.


*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불편해했던 음악가, 말러에 대해 이야기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나에게 말러의 음악은, 찾아 듣고 싶은 마음이 단 한 번도 든 적이 없는 곡이었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가 중에 항상 말러가 들던데, 나는 그럼 한국인이 아닌가 하는 우스운 생각이 들 정도로 말러는 단 한 번도 좋아한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말러의 음악은 너무 대편성이고 사운드가 엄청나서 듣는 나를 너무 예민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음악을 듣다 보면 어느새 신경이 곤두서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그게 너무 불편했다. 그 불편함을 감수해가며 그의 음악을 듣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말러의 교향곡 1번과 2번을 듣고, 나는 크게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딱 한 곡만 더 들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 때 내가 선택했던 게 5번이었다. 5번도 그렇게까지 썩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랬다. 3악장까지는 아니었다. 그런 상태에서 아다지에토를 만나는 순간, 나는 말러를 향해 세웠던 모든 마음의 벽이 허물어져 내리는 걸 느꼈다.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말러가 이럴 수 있는 사람이란 말인가.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쓰는 사람이었단 말인가. 아다지에토의 일렁이는 한 음 한 음이 물결치듯 내 마음으로 들어와 길고 긴 파문을 남겼다. 그렇게 나의 세계는 다시 한 번 깨지고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그리고 저자는 그 아다지에토를, 콕 집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혹시 클래식이 궁금하면서도 다소 부담스럽기도 해서 망설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를 먼저 듣기를 권하고 싶다. 그런 다음 이채훈의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를 펴 300쪽부터 시작되는 아다지에토에 대한 글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그리고 나면 자연스럽게, 당신은 저자가 이끄는 대로 비발디부터 로린 마젤까지의 여정을 떠나게 되고 당신의 취향을 조금씩 찾아갈 힘이 생길 것이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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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지지
    • 책도 그렇지만 이 글도 음악에 대한 사랑과 역사가 깃들어 있어 너무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브람스의 음악은 익숙하지 않았는데 오늘 저녁에는 꼭 천천히 음미해보고싶어요.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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