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도 '슬픈 빌라'에 살고 있나요 [도서]

글 입력 2020.04.12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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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릭 모디아노의 <슬픈 빌라>는 그의 여느 작품과 마찬가지로 조각난 과거의 기억 속에서 방황하는 불완전한 자아의 모습을 보여준다. <슬픈 빌라>의 ‘나’는 스스로를 ‘빅토르 슈마라 백작’이라고 부르는 무국적자이다. 왠지 모르게 자신을 옥조이는 불안감에 파리를 떠나 스위스와 가까운 오트 사부아 지방의 휴양 도시에 머무르며 이본느와 맹트를 만나게 된다. 인물 간의 대화와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통해 모디아노는 인간 존재에 근원적인 물음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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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것이 그녀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나’가 지속적으로 지니고 있는 감정은 호기심과 두려움이다. 그는 이본느와 함께 지내며 사랑을 느낀다. 이본느는 자신의 과거를 말하는 것을 꺼려하고 자신의 뿌리를 스스럼없이 끊어내는 사람이다. 무의식적으로 과거를 꺼내어 현실에 겹쳐보이는 무국적자인 ‘나’와 달리 이본느는 과거를 찾지 않는다.


오히려 과거의 기억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려는 듯 보인다. 이것은 뿌리가 있는 자와 없는 자가 지니는 과거에 대한 태도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자신에게 결핍된 것에 대한 과잉된 관심을 보인다. 동시에 이 관심으로 인해 자신의 결핍을 체감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렇기에 ‘나’는 자신의 근원의 미지를 두려워하면서도 끝없이 궁금해한다.

 

<슬픈 빌라>를 관통하는 테마는 ‘물음표’이다. 독자는 무언가 비어 있다는, 연결 고리가 끊어져 있다는 생각을 하며 빈 곳을 채울 수 있는 퍼즐 조각을 찾으며 책을 읽는다. 머릿속에 이해하기 힘든 큰 물음표 하나를 품은 채 책을 계속해서 읽어 나간다. 자신을 ‘빅토르 슈마라’라고 칭하는 ‘나’의 서사 또한 모두 가상의 것인지 확신하기 어려운 상태가 계속된다.


그가 이야기하는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믿어도 되는 것인지 의문을 가지는 독자는 금세 ‘나’와 같은 감정을 지니게 된다. 불완전함과 불안함. 대답없이 물음표만 계속해서 떠오르는 상태. 이 속에서 ‘나’는 현실 묘사 가운데 조각처럼 떠오르는 기억들을 툭툭 던져 놓기도 하고,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이야기를 서술하기도 한다. 이야기는 쪼개지고 갈라져 ‘나’의 주위를 부유한다. 무엇 하나 명료한, 분명한 것이 없는 <슬픈 빌라>의 전개는 이 자체가 기억을 뭉쳐 놓은 덩어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인간은 계속해서 불안과 불안정함을 좇는 존재이기에 미완성의 느낌으로부터 생존의 가치를 느낀다. ‘나’는 슬픈 빌라에서의 생활이 너무 단조롭다며 이본느에게 미국으로 떠나자고 말한다. 그는 가장 편안하고 두려움 없던 슬픈 빌라에서 장래를 생각한다. 변화를 원하는 것이다. 이본느는 결국 역에 등장하지 않았다. ‘나’는 결국 홀로 기차에 오른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인간이란 늘 불완전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라고 느꼈다.


임의의 완전함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든 자신의 결핍을 찾아내고, 그 결핍은 결국 인생의 동력이 된다. 종국에 모디아노가 그의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과거와 기억, 뿌리의 불완전이라는 근원적 결핍은 인간을 불안하고 두렵게도 만들지만, 이것들이 인간을 인간이라고 느끼게 한다는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슬픈’이라는 말 속에서 감미롭고도 투명한 그 어떤 것을 꿰뚫어볼 수 있게 되자 맹트의 생각이 옳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우리는 슬픔을 느껴야 슬픔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이해해야 느낄 수 있게 된다. ‘나’는 슬픈 빌라가 ‘슬픔’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슬픔의 기운을 느끼지 못했지만, 슬픔이라는 말 속에서 어떤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 ‘나’는 그제야 슬픈 빌라에서 슬픔과 서러움을 느낀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과거와 기억을 이해해야 그것들을 느낄 수 있다. 과거와 기억이 쏘아 대는 빛의 눈이 멀 듯한 아찔함, 두텁고 투명한 막으로 덮인 과거 너머의 것들을 이해해야 느낄 수 있다.

 

당신도 슬픈 빌라에 살고 있나요.

 

이러한 이해와 감각을 통해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의 결핍을 포용하고, 불완전함을 완전히 나의 일부로 인정하는 ‘인간’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모디아노는 이러한 삶을 살기 위해 책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 끊임없이 과거와 기억의 흔들림을 글로 써 내려가는 것, 어머니 이본느의 이름을 가진 주인공을 소설에 내보이는 것 등이 결핍과 전쟁 전후 상처입은 자들의 아득한 뿌리의 상처를 포용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모디아노가 묻는 듯 하다. 당신은 얼마나 온전한 기억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냐고. 당신은 당신만의 슬픈 빌라에서 계속 텅빈 여유를 즐기고 있느냐고. 당신은 언제쯤 그곳을 빠져나올 것이냐고. 슬픈 빌라에서 나온 당신은, 어디를 향해 갈 것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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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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