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와 모델] 조은샘

글 입력 2020.04.05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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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회 생활은 힘들었다. 남들보다 늦기도 했고, 완전히 낯선 분야기도 했고. 서툴어서 더 고역이었다. 물론 나중에는 적응하고 괜찮아졌지만.


회사에서 정말 힘든 시기를 보냈을 때, 같이 버티던 전우(?) 같은 동료가 있다. 서로 의지를 많이 하고 특히 도움을 많이 받아서 항상 고마웠다. 동료도 퇴사하고, 나도 퇴사하고 이제야 보게 되었다. 직장 생활도 처음, 회사 동료를 사적으로 따로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회사를 떠나서 사람으로도 친했지만 직장에서는 따로 볼 여유가 없었다. 이제야 보게 되었어.


항상 나를 좋아해주었다. 내 글과 그림 작업을 보고 항상 궁금해하고 또 많이 물어보았다. 그래서 이렇게 자리를 마련했지. 매번 대단하다고 말해서 고맙고 또 민망하고. 다양한 감정이 들지만 일단 그림을 시작했다.



조은샘1.jpg

 

 

역시 처음에는 느낌을 잡기가 어렵다. 하지만 용기내서 그렸다. 날카로운 눈과 짙은 눈썹. 계산하지 않고 긴장으로 얼어붙지 않고 그렸다. 원래 계산하면서 그리면 더 치밀한 그림이 나오지만 처음에는 가볍게 느낌을 잡는, 감을 잡는 정도로 시작을 한다.


눈이 왜 초록색이고 보라색인지, 눈썹은 왜 칠한 건지, 머리는 왜 주황색과 파란색 자주색이 섞여있는지, 코에 그린 녹색 선이 뭔지, 눈 끝에 파란 색은 뭔지.. 계속해서 물어봤다. 너무 많은 관심과 궁금증. 당황스러웠다. 왜냐니.. 그냥.. 그렇게 있는 걸 그렸는데.. 설명을 잘 못하겠어서 난감했다.


먼저 눈을 그렸다. 초록색과 자주색으로 코를 이어그렸다. 눈과 코를 그리고 자연스레 머리카락으로 그림이 넘어갔다. 자른 머리가 잘 어울렸다. 자주색부터 오일파스텔로 칠했다. 살짝 아쉬운 마음은 콩테로 선을 덧씌웠다.


"그림 마음에 들어. 내가 이렇게 날카로운 눈매였니? 나는 내 눈썹이 마음에 들거든. 문신 안해도 되고, 눈썹 산이 어느정도 있고."

 

*


그림은 철저하게 상대의 '외면'만을 그릴 수밖에 없다. 그 한계가 오히려더 매력적이기도 하고.

"내가 언니의 어떤 모습을 그려주면 좋겠어?"

"음.. 난 내 자세를 그려주면 좋겠어. 예전에는 다리도 두 번 꼬고, 허리도 구부정하게 굽힌 채로 앉아있었거든. 이게 디폴트 값이야. 본투비 이 모습. 그런데 이 자세가 허리도 나쁘고 안좋아지니까 이 자세를 안하려고 노력을 엄청 했거든. 허리도 긴장하고, 일할 때 사람다워 보이려고 코어 힘도 기르고, 지금도 계쏙 신경을 쓰고. 그래서 지금은 허리 핀 게 적응이 됐는데, 예전에는 이 자세가 제일 편하고 내 모습이었어."


몇 달을 함께 일했을 때 보던 자세가 아닌, 처음보는 자세를 취하는 데도 굉장히 자연스러워보였다. 어쩐지 너무 능숙하더라. 조금 멀리 떨어져 앉아서 그림을 그렸다. 오랜만에 전신을 그리네. 얼굴보다 그리기가 훨씬 편하다. 좀 더 물체에 가깝기 떄문에. 전체적인 모습이 더 잘보인다.



조은샘2.jpg

 

 

다리부터 그렸다. 올리브색 다리와 꼬고 있는 파란색 초록색 다리 선. 신발을 그리고 치마로 올라갔다. 파란색으로 치마를 그리고, 상체 베이지색 가디건은 보라색으로 했다. 반 엎드린 자세로 휴대폰을 하고 있었는데 뒤에 있는 팔은 초록색이었다. 그리고 제일 나중에 까만색 머리를 그렸다 파란 얼굴까지. 드로잉은 디테일이 생명이어서 전체적인 큰 그림을 그리고 나서 조금씩 추가했다.


종아리에 에메랄드 색을, 그리고 다리에 자주색과 신발에는 콩테 선을, 치마 겹치는 부분은 강조하려고 까만색을 그렸다. 이 자세와 선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오랜만이기도 하고) 색을 칠하기가 겁이 났다. 이 선 느낌을 지키고 싶어서 색을 많이 칠하지는 않았다. 노란색 주황색 파란색 등 부분부분 색을 가미했다. 애매랄드 배경 같아서 엉덩이족 앉은 부분에는 에마랄드 색과 노란색, 머리 뒷쪽 배경에 있는 건 살구색으로 칠했다.


"오, 이건 진짜 나같아. 내가 이 자세를 편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랜만에 이렇게 앉아있으니까 자꾸 허리를 피고 싶더라고. 이제는 바른 자세가 습관이 됐나봐. 내가 이렇게 변하나봐."

 

*

 

"나는 너처럼 그림 잘 그리고 표현 잘하는 사람이 부러워. 나는 사실 굉장히 감각적인 사람인데, 이걸 표현하지 못해서 불편하거든. 익숙하지 않으니까. 나도 그림, 글을 취미로 하기는 해. 그래도 음- 육감이라고 해야하나? 난 그걸 많이 느끼거든. 주위 환경을 온 몸으로 받아들여서 체력 소모가 커."

"언니가 그래서 집순이구나. 많이 받아들이는 거에 비해 표현도 어렵고, 해소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되게 피곤했겠다. 같이 일할 때는 그렇게 안보였었는데. 티가 안날 정도로 그렇게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보이려면 얼마나 많은 긴장을 해야했을까? 정말 대단한 것 같아."


대화를 하면서, 그림에 대한 이야기, 함께 일했던 시간들, 그리고 각자 어떻게 보낼 건지 미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가 점차 깊어지면서 본연의 모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언니 오른쪽 눈가에 초록색이 보였다, 느껴졌다. 그 색을 리고 싶어서 다시 화지와 오일파스텔을 들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렸다.


초록색 눈가와 보라색 눈, 주황색 콧대와 초록색 눈을 그리니 "이건 왜 이 색이야?' 묻다가 '아, 이건 이유가 없지. 네 감각이지. 오키. 알았어.' 하고 입을 다물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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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은 아까 첫번째 그림이랑 똑같이 보라색, 초록색이네."


나도 몰랐었는데.역시 한 사람을 그리면 게속해서 통일된 색이 나오나보다. 이번에는 이목구비만 그리고 머리 조금., 그리고 목 옆에 머리카락을 그렸다. 그러게, 똑같이 파란 색이네. 파마한 머리가, 그리고 적당한 길이가 마음에 들었다. 헤어스타일이 마음에 들어서 콩테도 같이 조금 표현했다. 목을 에메랄드 색으로 하고 가디건니트를 알록다록하게 칠했다. 나는 역시 다양한 색이 좋으니까.


"이건 훨씬 나같아.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하고 네가 느낀 내 모습의 중간지점, 딱 겹친 것 같아. 아 정말 좋다.정말 힐링되는 시간이야. 우리가 그때 그렇게 같이 일을 하지 않았으면, 작년 이때쯤의 그 계기가 없었으면 이렇게 친해지지 않았을 텐데."


어디서 어떻게 만났든지 간에, 이렇게 서로를 잘 알고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고맙고 좋은 시간이었다. 아마 진행 사상 역대급으로 많은 시간이 되지 않았나 싶다. 내가 곧 내려갈 이야기와, 곧 엄마와 여행갈 이야기. 엄마와 딸의 이야기 등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를 하면서 너를 알아가고, 나를 알아가고, 차이로 인해 나를 알게 되고, 그 안에 나도 찾게 되고. 그래서 내가 이 맛에 하는 거지. 나중에 또 봐. 쿠바 여행 다녀와서.

 


[최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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