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문학에 빠져 죽지 않고, 즐기는 방법 -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를 읽고

글 입력 2020.04.01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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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발표한 장편소설 롤리타의 첫 문단은 다음과 같다.



롤리타, 내 삶의 빛이요, 내 생명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 롤-리-타.

세 번 입천장에서 이빨을 톡톡치며 세 단계의 여행을 하는 혀끝. 롤. 리.타.

그녀는 로, 아침에는 한쪽 양말을 신고 서 있는 사피트 십인치의 평범한 로.

그녀는 바지를 입으면 롤라였다. 학교에서는 돌리. 서류상으로는 돌로레스. 그러나 내 품 안에서는 언제나 롤리타였다.



롤리타에 대한 험버트의 강렬한 열망이 엿보이는 이 문단은 <롤리타> 그 본문보다 유명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강렬함 때문인지, 종종 이 문단을 로맨틱하게 사용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 작품의 내용이 미성년자 롤리타에 대한 험버트의 범죄행위와 성 착취라는 것을 고려할 때, 이는 엄청난 오독이자 오용이다.


이따금 이 첫 문단에 대한 잘못된 인상을 느끼고 책을 읽어내려가서, 텍스트의 성적인 묘사에만 집착하거나 전체 텍스트 자체를 롤리타와 험버트의 사랑 이야기로 읽게 되는 경우까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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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런 경우가 ‘문학에 빠져 죽’은 경우가 아닐까. 문학은 비유와 은유로 이루어진 예술이다. 이때 독자는 텍스트가 무엇을 말하기 위해 비유와 은유를 활용했는지 파악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또한, 그 텍스트가 지금 사회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 수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러한 과정 없이 그저 비유와 은유 그 자체에만 천착할 경우 문학은 그저 단어와 단어의 조합, 문장과 문장의 조합일 뿐이다.


물론, 문학이 주는 즐거움 중 ‘서사’의 즐거움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것이 과연 어떤 의미일지, 고민하면서 읽지 않아도 이야기 그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 문학에는 존재한다. 하지만 문학이 예술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독자가 문학을 읽는 과정에서 만들어내는 수많은 의미망 덕분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적어도 비유와 은유에 눈이 가려져 의미를 완전히 잘못 파악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본명인 이현우보다 인터넷 서평꾼 로쟈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저자의 책,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는 위에서 말했듯 문학의 비유와 은유에만 천착하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책은 러시아 문학부터 한국문학까지, 저자가 읽어온 책들의 서평을 담은 책이다. 각각의 서평에서 저자가 ‘문학에 빠져 죽’지 않고, 문학의 흐름에 자신의 몸을 맡기며 문학의 아름다움과 의미 모두를 탐구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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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첫 장은 ‘문학이 필요한 시간’이다. 이 장에서 저자는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소설가 소설가>, <나는 어떻게 번역가가 되었는가?>, 라는 책의 서평을 싫었다. 이 서평들에서 독자는 저자가 문학을 어떻게 분석하는지 알 수 있다.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의 서평에서는 문학이란 저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으며, <소설가 소설가>에서는 저자의 소설론에 대해서 막연하게나 살펴볼 수 있고, <나는 어떻게 번역가가 되었는가?>의 서평에서는 번역의 문제에 대해서 다룬다.


실제로 각각의 서평들에서 저자는 작품이 출간된 당시, 또 현재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살펴보고, 소설가는 어떤 사람인지, 번역은 어떻게 되었는지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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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문학의 의미를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지 가늠하게 되며, 문학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에 대해서 알게 된다.


<위대한 개츠비> 속 개츠비가 갈망하는 여인 데이지 뷰캐넌의 모델이 피츠제럴드의 첫사랑인 지네브라 킹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 <앵무새 죽이기>의 저자 하퍼 리가 자신은 ‘글쓰기 너무 좋아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이며 언제 어디서건 글을 쓸 거라고 고백’했음에도 불구하고 평생 두 권의 작품만을 발표했다는 것, 또 <로미오와 줄리엣>의 번역에 따라 둘의 키스 장면이 어떻게 바뀌는지 살펴보는 것은 그저 소설 그 자체를 읽었을 때와는 다른 해석을 가능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저자가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에 수록된 서평 속 책들을 읽었다면, 저자와 자신의 해석을 비교하는 즐거움 또한 더해지겠지만, 문학의 의미를 파악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갈 수 있고 수록된 작품과 관련한 지식을 알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
- 로쟈의 문학 읽기 2012-2020 -


지은이 : 이현우

출판사 : 교유서가

분야
인문

규격
140*210mm (무선)

쪽 수 : 468쪽

발행일
2020년 03월 03일

정가 : 20,000원

ISBN
979-11-90277-29-7 (03810)





저자 소개

  
이현우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로쟈'라는 필명을 가지고 매일 새롭게 출간되는 책들을 소개하는 서평가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렸다. 대학 안팎에서 러시아문학과 세계문학, 한국문학, 인문학을 강의하며 여러 매체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로쟈의 한국 현대문학 수업』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 『로쟈와 함께 읽는 문학 속의 철학』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 『책에 빠져 죽지 않기』 『아주 사적인 독서』 『로쟈의 인문학 서재』 『책을 읽을 자유』 등이 있다.



 

 

[권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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