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소설 읽는 마음 -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

글 입력 2020.03.31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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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라는 필명으로 잘 알려진 이현우 서평가의 문학 서평집이다. '책에 빠져 죽지 않기'(2018, 교유서가)라는 서평집의 문학 파트로 포함될 예정이었던 글들과, 후에 기고에 문학 관련 글들을 모아 만들었다. 2012년부터 2020년까지, 8년간 그가 읽은 소설에 대한 생각을 단정한 문체로 소개한다. 종합 서평집인 '책에 빠져 죽기'와 함께 곁들어 읽기 좋다.



"책은 각자 존재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거나, 그게 아니면 존재를 견딜 방법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데이비드 실즈의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속 인용구로 책은 시작한다. 목차는 총 10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시작인 1부는 문학의 필요성, 문학 전반을 아우르는 주제의 글 4편이 실려 있다. 문학은 왜 필요한가, 소설가는 어떤 사람이며, 세계문학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의 인생은 소설을 통해 어떻게 새로 시작하는가. 본격적으로 문학 작품 서평을 읽기 전에 소설에 대한 애정과 설렘으로 두근거린다.

 

각 목차별 구성에는 흐름이 있어 읽기가 편안하다. 2,3부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부터 토마스 하디 등 고전 영미 문학에서 이언 매큐언, 주제 사라마구 등 현대 영문학 작가들까지 차례로 훑는다. 느슨하게 살펴보면 나라별, 연대순으로 구성돼 있는데, 덕분에 각 국의 문학을 구석구석 알아가는 느낌이라 재밌다.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남미, 일본 등 세계를 거쳐 마지막에는 한국 문학을 살펴본다. '전쟁과 평화', '위대한 개츠비' 같은 경우는 동일 책에 대한 다른 서평을 함께 실어 작품에 대한 저자 생각의 변화나 관점의 차이 등을 느낄 수 있어 흥미롭다.


서평을 어디에 기고했느냐에 따라 글의 분량이나 성격이 조금씩 다른데, 평론이나 학술지에 게재한 글은 더 길고, 전문적이다. 두세 페이지의 간결한 서평에 익숙해졌다 싶을 때 적절하게 '백치' 팜플렛 글, '롤리타' 해제 등을 배치해 해이해진 집중력을 다시 사로잡는다. 읽다보면 서평가로서 거의 십 년간 활동해온 저자의 내공이 느껴진다. 독자에게 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서평의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작품에 대한 생각이 적절히 들어가 있다. 작품이 쓰인 배경, 작가의 삶, 관련 논의들과, 번역의 문제 등 흥미로운 정보로 짧지만 강한 서평이 책장을 훌훌 넘어가게 하는 힘이다.

 

특히 번역의 차이를 말하는 서평이 좋았다. 작품 이해에 중요하면서도 독자로서 아예 모르거나, 쉽게 간과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을 저자가 세심하게 고찰하는 글을 통해 나 역시도 읽었던 작품의 숨은 뜻을 새로 알게 되었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의 초판 제목이 '베니스의 유대인'이었으며 작품 속 유대인은 누구인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글처럼, 저자는 번역이나 알려지지 않은 정보를 토대로 작품을 새롭게 바라볼 방법을 제시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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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서평과 독후감의 차이가 확실하단 걸 알았다. 둘 다 책에 대한 이야기지만, 독후감이 내밀한 감정, 생각, 사고의 변화 등을 보여준다면 서평은 아직 읽지 않은 독자에게 책을 읽을 이유를 소개하고 권하는 것이다. 후자를 지양하면서도 항상 독후감의 궤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저자의 가벼운 듯 내실 있는 태도가 부럽고 반가웠다.


아쉬운 점은 책의 대부분이 (이미 권위 있는)남성 작가이며, 중국, 베트남 등 일본이 아닌 타 아시아 국가의 문학이 거의 소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계의 일부 문학만 주목을 받는 현실에 대해 '나는 어떻게 소설가가 되었는가?'라는 글을 통해 저자 역시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동시에 노벨상, 세계문학 속 자리를 원하는 한국 내의 현실을 자주 언급하고 있기도 하다. 절제되고 객관적인 저자의 시선이 다양한 여성 문학, 소수 문학 등을 소개하는 글도 궁금하기는 하나, 서평 문화에 더 낮은 자리를 주시하는 목소리가 생기기도 희망한다.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를 읽으며 추후 독서 리스트에 추가한 책은 사실상 목차에 있는 전부이나, 저자의 통찰력이 인상 깊은 대목이 몇몇 있었다. 두 부분만 옮겨 적어 보겠다.

 


"(...) 실제 역사에서는 반란의 경과도, 진압 과정도, 그리고 최후의 처분도 모두 참혹했다. '대위의 딸'에서 푸시킨은 참혹했던 실제 역사를 최소화하는 대신에 가상의 환대와 자비를 집어넣는다. 미적 가상으로서 문학적 진실이란 냉혹한 역사적 진실을 회피하지 않으면서도 역사와 화해하려는 시도라는 것을 '대위의 딸'은 보여준다."


_ '대위의 딸' 서평 267p.

 


"문학의 역할은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다. 사회주의나 사회민주주의 체제를 만드는 게 아니라 인간의 심장을 가볍게 만드는 것,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문학의 역할이다."


_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인터뷰 354p.


 

두 번째 인용은 저자의 말은 아니고,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한 말이지만 두 구절 모두 문학이란 무엇인가 말하고 있다. 문학 작품은 이야기를 통해 인간을 세속의 중력에서 해방시킨다. 굽은 허리를 펴게 하고 숨통을 트이게 하는 힘. 작가들은 몇백 페이지의 글을 통해 그 일을 한다. 이런 사명감으로 쏟아진 책들이 얼마나 많은가.


인간의 고독만큼이나 깊고 광대한 그 바다에서 서평가는 보석같은 인용구와 책에 대한 애정으로 배를 띄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멀리까지 쉽게 나아갈 수 있도록. 그러니 빠져 죽지 않는 건 중요한 일이다. 속을 들여다 볼 정도로 가까이 있으면서도 빠져 죽지 않기, 저자의 노련한 솜씨가 돋보이는 책이다.

 

 

[김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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