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 지나간 일들을 [음악]

글 입력 2020.04.01 0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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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은 인간에게 내려진 축복이고, 기억은 저주라고들 한다. '복기'가 우울증의 증상 중 하나라는 이야기도 들었던 것 같다. 계속해서 과거의 기억을 되새김질 하며 고통스러워 하는 것이다. 다 지나간 일들을 붙잡고, 계속 들춰보고 의심하며 과거의 잘못을 내 탓으로 돌리고 과거의 상처를 온전히 나의 것으로 흡수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많은 현대인이 복기라는 병을 앓고 있다. 복기는 완벽한 인생에 대한 희망에서 기인한 질병이라고도 볼 수 있다. 너무 잘 살아 보고 싶은 마음, 완벽하게 좋은 인생을 살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작은 흠집과 상처를 자꾸만 들여다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매끈한 표면의 인생을 갖고자 하는 마음, 그 마음 때문에 역설적으로 인생을 포기하게 된다. 마치 시험에서 100점을 받지 못 할 것을 알고 아예 시험 공부를 시작조차 안 하는 것처럼.


나도 요 근래 쉬이 잠 못드는 날들이 많아졌다. 자꾸만 어제가, 일주일 전이, 일년 전이 그리고 십년 전이 떠오른다. 내가 받은 상처를 곱씹으며 그 날의 상황을 떠올린다. 밤낮은 뒤죽박죽이 되고 매사에 의욕이 없다. 이런 자잘한 상처들을 안고 살아 가는 것이 나에게 뭐 그리 큰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아무리 지워보려 해도 과거의 기억들이 머리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도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나에게 친구가 추천해준 노래를 소개하고자 한다.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기에,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큰 힘이 되었으면 해서.

 


 

윤지영/다 지나간 일들을 (Holding On)



 

 

친구가 나에게 추천한 곡은 싱어송라이터 윤지영의 <다 지나간 일들을> 이다. 오묘하고도 맑은 음색의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윤지영이 이 곡의 뮤직 비디오를 가장 아낀다고 해서 영상까지도 찾아봤다. 음악만 듣을 때보다도 훨씬 더 큰 위로가 되었다.

 

뮤직비디오의 첫 시작 부분에서 세상은 빙글빙글 돌지만 그는 한 곳만을 바라보며 절규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화를 내는 것 같기도, 울분을 토하는 것 같기도 한 표정. 침대에 누워서도 멍한 듯한 표졍을 보이지만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이내 그 생각을 떨치려는 듯 마른 세수를 해보지만, 소용 없다. 무력한 듯 누워 계속 그의 마음 속 어딘가를 응시한다.


울듯 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인다. 뮤직비디오 속 남자는 계속해서 맴돌고, 뒤척이고, 뒤를 돌아보고, 하늘을 바라보고, 드러누워 담배를 핀다. 아무 생각 없이 유유자적 하는 듯 보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의 인생에 몰입해 있다. 생각을 참아보려는 듯한 고개 젓기와 또 다시 시작되는 고뇌. 우리가 과거를 복기할 때의 모습과도 같다.


 

1.jpg

윤지영 <다 지나간 일들은> MV 中

 

 

그의 앞에 놓인 두 개의 물잔, 한 입에 문 두 개비의 담배. 한 사람에게 주어진 두 개의 사물은 무엇을 의미할까? 나에게는 두 사물이 각각 현재와 과거를 의미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주인공은 물을 따라 마시던 컵을 두고 건너편에 있는 컵을 끌어 온다.


입에 문 담배 중 한 개비는 멀리 던져 버린다. 그가 택한 컵과 담배는 현재를 의미할 지도 모른다. 다 지나간 일들을 붙들고 사느라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상에 어지러워 할 겨를도 없던 그가 기억에서 좀 더 자유로워 지기를 선택한 것일 지도 모른다.


 

2.jpg

윤지영 <다 지나간 일들은> MV 中

 

 

높은 건물들을 바라보며 터널 앞 육교에서 고개를 숙이며 고통스러워 하던 그는, 터널로 들어간다. 간혹 뒤를 돌아보며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찾는 듯한 고갯짓도 보이지만 이내 앞을 보고 휘적 휘적 걸어나간다. 그렇게 터널 끝에서 끝까지, 무사히 걸어 나온다. 그가 택한 것은 현실이 맞다. 때로는 자신을 부르는 과거의 부름에 고개를 틀기도 하지만, 그의 발걸음은 앞을 향해 있다.

 

나는 행복하기 위해서는 '나'를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자꾸만 나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고민했다. 자꾸 나를 돌아보고, 돌아보고, 돌아 보았다. 돌아본 곳에는 기쁨보다 슬픔과 상처가 더 크게 남아 있다. 이내 우울해졌다. 나를 알아야 한다는 강박에 우울함은 당연한 것이 되었고, 행복한 기분이 드는 날에는 금세 불안해졌다. 모순적으로 나는 우울해야 행복할 수 있었다.

 

답은 당신 뒤에 있지 않다. 당신 앞에 있다. 당신의 발걸음은 당신의 뒤를 지나 당신이 있는 바로 그자리에 멈춰 있다. 당신은 당신이다. 당신은 당신이 고민하고, 되뇌고, 곱씹을 필요가 없는 존재다. 상처와 과거도, 사랑도 마찬가지다. 머물렀던 곳에 그들을 그대로 두고 당신의 길을 떠나는 것. 가끔 뒤돌아보게는 돼도 몸을 틀어 돌아가지는 않는 것. 그것이 살아가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모든 이가 터널을 무사히 빠져 나오길, 터널을 나와 또 다른 길을 걷기를 기원한다. 가끔은 서투르고 어설픈 길을 걷더라도 그 길에 묶여 있지 않기를 바란다. 다 지나간 일들을 지나 보내길 바란다.

     


다 지나간 일들을

또 오지 않을 날들을

기다리는 게

얼마나 바보 같은지

내가 좀 더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난 아마 한 달도 넘는 시간을 벌었을 거야

 

- 윤지영 <다 지나간 일들을>


 

 

 

아트인사이트황현정.jpg


 

[황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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